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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글리 Jan 13. 2019

찰칵, 찰칵, 또 찰칵

아빠는 핸드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아빠, 눈에도 담고 있는거지?

엄마아빠와 여행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아빠의 경보걸음과 촬영본능이었다.


아빠는 걸음이 빠르다. 빨리 걷는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귀가 잘 들리지 않다 보니 아빠를 멈춰 세우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아빠는 어디든 자신감있게 걸어간다. 길을 알 때도, 모를 때에도. 일단 직진하고 보는 직진본능의 아빠를 멈춰 세우려면 일단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창피하다. 이미 이런 아빠의 경보걸음에 익숙해진 엄마는 언젠가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볼거라고 포기한 모양이지만 이 여행의 가이드인 나는 잘못된 방향으로 마냥 걸어가고 있는 아빠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아빠를 따라 뛰어야 한다. 뛰어가서 아빠를 멈춰 세우고 다시 방향을 잡아주면 아빠는 또 돌아볼 것 없이 마구 직진한다.


아빠의 직진본능을 막을 수는 없다. 발 안보이게 걷고 있는 아빠를 힘겹게 쫓아가는 엄마


두 번째는 아빠의 촬영본능이었는데, 이건 사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아빠는 평소에도 기록에 대해 집요한 데가 있었다. 평소 아침마다 신문을 보는데 그 안에서 다시 읽어보고 싶거나 저장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기사들은 꼭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둔다. 그리고는 나중에 지하철에서나 버스에서 이동 중에 시간이 남으면 핸드폰 갤러리를 열어 그 기사들을 읽는다. 얼마 전에는 아빠가 생일선물로 외장하드를 사달라고 했다는 말에 '생일선물로 외장하드?'라고 생각했는데 엄마 말로는 아빠가 지금 가지고 있는 외장하드가 혹시나 고장나서 그 안에 든 사진과 기록이 날아갈까봐 백업용 외장하드를 하나 더 가지고 싶어한다고. 그만큼 아빠는 기록하고 그 기록들을 저장하는데 있어서는 철저한 면이 있다.


이런 기록 본능은 여행을 와서도 여전했는데, 여행을 다니는 내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나중에 읽어봐야겠다 싶은 활자가 있는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는 사진을 찍느라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그 추억을 간직하는 것은 여느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이므로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눈에 직접 무엇을 담는 것보다 핸드폰 속에 담아놓는 것이 훨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음악분수를 보러간 밤, 아빠는 핸드폰 배터리가 나갈 정도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그런 아빠를 말리지도 못하고 지켜보면서 '아빠, 그러면 과연 저 음악분수와 이 풍경들을 다 기억할 수 있을까?', '아빠, 나중에 시간이 지나 잊어버리더라도 지금 이걸 나랑 나란히 서서 눈으로 보며, 잠시라도 감동을 함께 느끼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혹은 말이 머리를 스쳤다.


어떻게든 잘 찍어보려는 아빠의 쭉 뻗은 팔


아빠가 워낙 기록하는 걸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자료를 모아둔다는 걸 알고 있다. 점점 지나가는 시간들이, 그 순간들이 소중해지고 나중에 꼭 열어보고 싶어질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에 이렇게 핸드폰 카메라를 손에 놓지 못한다는 것도. 아빠를 이해하기 때문에 더 이상 구박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아빠가 내가 구박한다고 변하지 않을 것이고 습관은 무섭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한 것도 있다. 나는 대신 계속해서 아빠에게 잠시 내려놓고 같이 보는거 어떠냐고, 바쁘게 사진을 찍는 대신 이야기도 하고 천천히 시간을 갖자고 은근슬쩍 제안해보기로 했다. 또 아빠가 사진 찍는 동안 기다려주고, 아빠가 사진을 찍는 동안 나라도 찍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내 눈에 담아보려 노력하기로 했다. 가족 셋이 여행을 하는데 둘이 사진만 찍고 있다면 너무 비효율적인데다 한편으로는 서글플테니까. 아빠가 가족의 대표 사진작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 무거운 DSLR을 내려놓았다.


핸드폰 카메라를 손에 놓지 않았던 아빠. 다음에는 정말 좋은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을 사드리고 싶다


아빠를 가족 공식 지정 포토그래퍼로 임명했다. 사진 좀 그만 찍으라고 핀잔을 주기보다 다음 여행을 위해 더 좋은 카메라를 사드리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엄마아빠도 내가 강박적으로 하는 어떤 행동에 불만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아빠가 나를 참아주듯이 나 또한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데에 구박 대신 응원을 보내기로 했다. 나와 엄마는 아빠의 좋은 모델이 되어주고, 아빠가 카메라로 기록하는 시간 동안 주변을 좀 더 천천히 둘러볼 수 있고, 다시 생각하니 나쁠 것이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난 후 사진을 정리하는 아빠를 보면서 퇴직하고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빠에게 핸드폰 갤러리를 가득 채울만한 추억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에 뿌듯해졌다. 그 기록들은 우리는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기록할만한 좋은 추억들을 많이 남겼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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