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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글리 Jan 13. 2019

엄마의 스웨덴, 아빠의 스페인,
그리고 나의 프랑스

여행의 끝자락, 각자의 감회


길었다면 길었던 유럽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그러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닮아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엄마아빠를 닮은 부분은 어디일까 궁금했는데 이제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가 어떤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또 어떤 것들을 공통적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고 있다. 엄마아빠와 함께 살았던 때에는 내가 엄마아빠와 비슷하다는 걸 크게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함께 살다 보니 서로의 존재가 당연했고 그러다 보니 서로를 세심한 눈으로 바라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며 우리가 얼마나 비슷한지, 내가 얼마나 엄마아빠를 닮아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의 끝자락, 나는 오랜 기간 붙어 다녔던 우리가 같은 경험을 하며 어느덧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감상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았던 것은 엄마아빠도 좋았을 것이라, 그렇게 지레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아빠에게 물었다. 어디가 제일 좋았느냐고. 그런데 내 짐작과는 달리 엄마와 아빠, 나의 대답은 모두 달랐다.




엄마의 스웨덴

엄마의 대답이 가장 의외였다. 

여행 출발 전에는 바르셀로나를 가장 기대했고 파리에서 가장 즐거워 보였던 엄마는 어쩐지 스톡홀름이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왜인지 물으니 가장 깨끗하고 사방이 탁 트여있어 풍경이 시원했다고. 스톡홀름에는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 많지만 그런 것들조차 마치 새 것처럼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거리가 깨끗한 것은 물론 지하철도 한국처럼 깔끔하다. 

여행을 하면서 엄마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엄마는 오래되고 화려한 건물보다 오히려 현대적이고 깔끔한 건물과 거리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시골에 살고 싶어 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항상 농담으로 엄마는 '도시인'이라고 놀리듯 얘기했었는데 알고 보니 엄마는 정말 자신이 평생 살아왔던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스톡홀름을 좋아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탁 트인 시내 풍경과 바다 위를 달리는 작은 페리에서의 추억이었다. 사실 페리를 타기 전 엄마가 너무 춥지는 않을까 싶어 선내에 앉아있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엄마는 배가 달리는 내내 밖의 자리에 앉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날씨도 좋았고 바람도 좋았다고. 그 얘기를 듣는데 엄마가 아팠던 꽤 오랜 기간 동안 이 탁 트인 풍경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삼가라는 의사의 말에 몸이 많이 나아진 후에도 엄마는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스톡홀름에서, 배 위에서 오랜만에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페리를 기다리는 엄마


아빠의 스페인

아빠는 스페인이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나 또한 아빠가 스페인을 제일 좋아했을 거라 생각했다. 와인을 좋아하는 아빠에게 스페인의 슈퍼마켓은 천국이었을 테니. 물론 와인만 좋았던 건 아니다. 아빠는 전에도 스페인을 와본 적이 있었다. 배에서 일할 때 잠깐 항구에 내려 스페인 밤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의 스페인은 우리와 함께 한 스페인과는 달랐다. 아빠는 먼바다 위에서 일하면서 늘 가족을 그리워했고 육지에 발이 닿으면 항상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스페인의 밤거리에서 아빠는 분명 우리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또 무뚝뚝한 말투로 '잘 지내느냐'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전화를 끊었겠지만 분명 마음만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때 이후 오랜만에 다시 온 스페인에서 아빠는 우리와 어느 때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밤마다 와인을 마시며,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으며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낮에는 주로 내가 말을 많이 했고 밤에는 아빠가 말을 더 많이 했다. 어쩌면 술에 취해 그 대화들을 다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대화 내용보다는 맛있게 먹었던 안주나 와인 이름을 더 잘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시간들이 아빠가 스페인이 좋았다고 말했던 가장 큰 이유였음을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강렬한 색감의 바르셀로나


나의 프랑스

나는 프랑스 파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파리를 좋아했다. 골목골목 돌아다니는 것도 좋고 숨어있는 가게들을 찾아내면 나만의 아지트가 생긴 것 같아 즐거웠다. 오래된 것들이 즐비한 도시에서 숨어있는 새로운 가게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파리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엄마아빠와 함께 한 파리 여행이 특별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엄마가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수십 번 보았을 에펠탑을 함께 손잡고 올라가 보고 이름도 어려운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나란히 파리를 내려다보았다. 또 엄마가 좋아했다는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 나오는 별로 멋지지는 않은 퐁네트다리도 지나 보았다. 이런 기억들은 내게 파리를 좀 더 다르게 기억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살아가며 이번 여행에서 갔던 여느 도시보다 파리를 더 많이, 자주 가게 될 것이다. 또한 갈 때마다 엄마아빠와 함께 만든 추억들을 곱씹으며 잊지 않으려 마음에 담아두게 될 것 같다.


이제는 '우리의' 몽마르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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