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꿈(2)_매미에게 자신을 인간이라고 속인 꿈틀이

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2

by 시골뜨기

어슴푸레한 닭울녘, 동녘이 희부옇다. 꿈틀이는 잠자는 애벌레를 다시 만났다. 말을 걸고 싶었으나 대답 안 할 거니 그냥 지나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애벌레가 움찔거렸다.


‘호, 이제 잠에서 깨나 보다!’

호기심 많은 꿈틀이는 애벌레를 지켜보기로 했다. 조금씩 움직이던 애벌레는 흙을 비집고 나와 상수리나무에 올랐다. 나무 가슴께 기어오른 애벌레는 날카로운 발로 나무를 붙잡고 섰다. 숨고르기를 하는가 싶더니 목덜미가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뭔가가 꼬물꼬물 나왔다. 그 모양은 애벌레와 비슷하지만 날개가 달렸으며 앞발의 모양과 색깔도 조금 달랐다. 마지막 잠을 깨고 성충으로 거듭난 매미였다.


힘겹게 허물 벗은 매미는 젖은 날개를 말리더니 첫울음을 울었다. 어설프게 찌륵찌륵 거리더니 이윽고 시동 걸린 오토바이처럼 찌르릉찌르릉거렸다. 목청 가다듬은 성악가가 가곡을 제대로 부르듯이 날개 말린 매미는 쩌렁쩌렁 소리 내었다. 잔잔한 숲에 매미 소리가 퍼졌다. 한바탕 신나게 소리 낸 매미는 나무 밑동의 꿈틀이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말을 걸었다.


“안녕, 넌 내가 어른 된 후 처음 본 친구구나. 난 매민데 넌 누구니?”

“······.”

꿈틀이는 생각했다. ‘글쎄, 내가 누구지? 지렁이? 아니야, 난 지렁이가 아냐.’


“넌 누구지?”

매미는 다시 물었다. 꿈틀이는 예전에 매미 애벌레가 말 없었듯 말을 잊었다가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으응, 난······ 인간이야. 그래, 난 인간이라고 해.”


꿈틀이는 꿈속에 들었던 인간을 떠올렸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지상에서 살면서 하늘도 날고 물도 건넌다고 들었다.

“인간?”


매미는 의아한 듯 무엇인가를 다시 물으려 했으나 꿈틀이는 얼른 흙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죽은 것처럼 잠만 자던 애벌레가 껍데기를 벗더니 완벽한 모양으로 탈바꿈을 하는 것을 보니, 전에 그 애벌레를 하찮게 여겼던 꿈틀이는 몸 둘 바를 몰라 그 자리를 피했던 것이다.


꿈틀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는 ‘창문’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맘먹었다. 잘난 체하는 쥐며느리를 보는 것이 마뜩잖으나 거기 가면 자기의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쥐며느리는 몸을 둥글게 한 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있었다. 또 명상을 방해한다고 혼날까 봐 머뭇했지만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큰 꿈틀이는 핀잔 들을 각오를 하고 쥐며느리를 건드렸다. 그러나 쥐며느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여기던 공 모양을 한 채 고대로 죽었다.


‘왜 죽었을까? 하긴, 밥도 먹지 않고 저 꼴로 있었으니 굶어죽을 수밖에 없지. 이젠 누구한테 물어보지? 엄마 아빠는 어디 있나. 친구라도 만나면 좋으련만….’

꿈틀이는 두더지에게 먹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존재에 대한 회의 때문에 그곳에서 한탄하며 깊은 시름에 빠졌다.


‘삶의 희열은 잠깐이고 삶의 고뇌는 계속인가? 흙을 먹는 것이 처음엔 즐거웠는데 점점 비참하게 여겨지는구나. 나는 왜 흙을 먹는가? 나는 왜 흙을 파고 다녀야 하는가? 나는 조물주로부터 천형을 받은 버림받은 존재인가? 나는 왜 몸이 둔하고 손도 없고 다리도 없고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는가! 난 햇빛도 볼 수 없다. 이 칙칙하고 깜깜한 흙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운명인가? 나는 퇴화된 동물인가! 도태되어 버린 존재인가! 과연 나는 어떤 존재인가?’


꿈틀이는 눈뜨기 전에 흙으로부터 많은 얘기들을 들었었다. 인간에 대해, 동물에 대해, 자연에 대해, 흙에 대해. 그러나 그 기억들은 가물가물하고 희미하다. 인간은 위대하고 이 세상을 지배하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를 뿐이다.


“아, 인간이고 싶다!”

꿈틀이는 혼자 중얼거렸다.


molting-2438059_1920.jpg 허물 벗는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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