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3
“왜 인간이 되고 싶은 거지?”
갑작스러운 소리에 꿈틀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난 팽나무야. 흙 속 친구들은 내 안의 이곳을 ‘창문’이라고 부르지. 여길 통해 바깥세상을 볼 수 있거든.”
꿈틀이는 전에 쥐며느리가 이곳을 창문이라고 했으며,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 옳다구나. 꿈틀이는 팽나무에게 물었다.
“인간에 대해 아세요?”
“내가 이곳에 뿌리내리고 백 년이 지나는 동안 비록 한 번도 다른 곳은 가보지 않았지만 난 세상일을 다 알고 있어. 내 잎사귀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과, 내 몸에 흐르던 물방울과, 내 가지에 둥지를 틀었던 새들과, 많은 곤충들을 통해 세상을 엿볼 수 있었지. 그리고 산을 찾았던 사람들이 내 그늘에 쉬어가며 한 말들을 기억하고 있어. 난 사냥꾼도 만났고, 농부도 만났고, 교수도 만났고, 어린애도 만났지.”
“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어요. 그리고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어요. 좀 가르쳐 주세요.”
꿈틀이는 어른 앞에서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팽나무에게 매달렸다.
“태어나기 전에 흙으로부터 들었을 텐데?”
“네, 하지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고 기억도 가물거려요”
“꿈틀아, 내가 지금 말해 줘도 이해 못할 거야. 직접 겪어야 제대로 알 수 있지. 네 스스로 깨닫는 방법을 알려줄게. 쉽지 않은데 할 수 있겠니?”
꿈틀이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앎이 더 중요했다.
“팽님, 알려 주세요.”
“어딘가에 ‘슬기곶’이 있어. 거길 가보렴. 요정들이 네 길라잡이가 되어 줄 거야.”
꿈틀이는 한 가닥 불빛을 보는 것 같아 힘이 솟았다.
“근데, 저 쥐며느리는 왜 죽었죠?”
팽나무는 죽어버린 쥐며느리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가 터득한 것은 삶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었어. 몸을 둥글게 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나 더 오래 사는 것이 목적인데,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일찍 죽어버렸구나. 자신이 터득한 한 가지만 인정하고 다른 것을 부정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거야.”
팽나무는 잠시 생각하더니 꿈틀이를 보며 계속 말했다.
“꿈틀아, 넌 스스로 형편없다고 했어. 정말 네가 형편없을까?”
“그런 거 같아요.” 꿈틀이는 직수굿이 대답했다.
“꿈틀아, 나를 보렴. 내 뿌리는 땅속으로 뻗었고 줄기는 하늘로 향했어.”
“······.”
뭔 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꿈틀이는 팽나무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몸을 바짝 바닥에 붙이고 온몸으로 들었다.
“자, 뿌리와 흙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뿌리는 흙의 물기를 뺏으려고 하고 흙은 뺏기지 않으려고 하지. 즉 서로 간에 다툼이 있어. 뿌리에겐 흙의 그런 버팀은 역경이지. 그러나 뿌리는 흙을 원망하지 않아. 왜냐면 흙이 물을 붙잡는 그 저항 때문에 나무는 안정적으로 수분을 얻을 수 있거든.”
“흙이 물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나무가 안정적으로 물을 얻는다고요?”
“그래. 그 물이 지하로 새거나 공중으로 날아가지 않고 흙에 남아 있거든.”
“흙에 물기가 있는 한 뿌리는 물을 얻을 수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
흙 입자는 전기적인 극성이 있어서 극성인 물 분자를 붙잡을 수 있다. 흙은 고체로 보이지만 반은 빈 곳이다. 보통 때 이 빈 곳의 반은 물이고 반은 공기다. 비가 계속 오면 빈 곳의 대부분은 물이고, 오래 가물면 빈 곳의 대부분은 공기지만, 아무리 가물어도 빈 곳의 일부는 물이 차지하고 있다. 흙 알갱이가 물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팽님, 물 얻기가 쉽진 않겠네요?”
“그래. 흙이 버티기 때문에 힘을 써야 해. 흙의 저항이 뿌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런 저항이 방해거리라기보다는 나무에게는 오히려 유익하다는 걸 알겠니?”
“역경에도 뜻이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단다. 안팎의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그 상황을 극복하려 애쓰는 가운데 힘이 길러지고 활력이 생겨.”
“네.”
“그러므로 네 겉모습의 열등한 부분만 보고서 너의 모든 것을 열등하다고 여기진 마. 못났다고 여기는 네가 잘날 수도 있고, 잘났다고 여기는 인간이 못날 수도 있거든.”
“못난 나도 잘날 수 있다고요?”
“그럼.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해. 쥐며느리는 그 다양성을 생각지 못해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꿈틀이는 팽나무의 말이 아리송하지만 얹힌 속이 풀린 듯 시원했다. 팽나무는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친절한 선생처럼 꿈틀이에게 설명을 덧붙였다.
“꿈틀아, 모두가 네 선생이야. 너와 다른 부분을 인정하는 관용의 자세를 가지고 누군가를 만난다면, 넌 그들로부터 뭔가를 배울 수 있어.”
“관용이라고요?”
“그래, 관용. 박테리아, 곰팡이, 거미, 달팽이, 뱀, 솔개 등은 각각 다른 형태와 습성이 가지고 있어. 비록 너와는 다른 꼴이지만 그들 나름의 삶이 있지. 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을 가질 때, 네 존재에 대한 조물주의 뜻을 알 수 있을 거야.”
꿈틀이는 조물주의 뜻을 알 수 있다는 팽나무의 말에 깜짝 놀랐다. 조물주는 이 세상을 만든 창조주가 아닌가. 위대한 인간도 만든 그런 존재가 조물주인데, 그 조물주의 뜻을 알 수 있다니.
“조물주의 뜻······.”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는 꿈틀이에게 팽나무가 물었다.
“꿈틀아, 문제 하나 낼 테니 풀어보렴. 이 문제가 네 존재를 깨닫는데 도움될 거야.”
“어떤 문젠데요?”
“자, 식물은 왜 시들지?”
꿈틀이는 너무 쉬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꿈틀이는 잠자는 동안 기본적인 상식은 흙으로부터 전해 들었었다.
“그야, 물이 부족하니 시들죠.”
꿈틀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물론, 물이 부족하면 시들지만 또 다른 까닭이 있어. 식물은 단지 물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리 쉽게 시드는 것은 아냐.
“······?”
“이 문제의 답을 얻기 바라.”
꿈틀이는 알쏭달쏭한 질문을 마음에 품고 창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