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꿈(4)_오동통한 당근도 처음엔 비쩍 말랐었다

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4

by 시골뜨기

여기 흙은 매우 부드럽고 촉촉하며 영양분도 충분하구나. 내가 살기 제격인데! 하지만 난 여기에 머물지 않을 거야. 나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근데, 팽나무 할아범이 낸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지? 과연 식물을 시들게 하는 원인은 뭘까? 물이 부족하면 식물은 시들 텐데, 이거 말고 다른 답이 있다고 한다. 그게 뭐지? 이 문제를 알만한 식물을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어, 저게 뭐지! 뿌리치곤 상당히 큰데! 굳이 저렇게까지 뿌리가 굵을 필요 있을까? 아마 쟨 마구 먹어서 저렇게 살쪘을 거야. 하여튼 쟤는 사치스럽고 욕심쟁이 식물인 것 같구나. 혹 쟤는 식물이 시드는 까닭을 알고 있을까?


“안녕. 난 꿈틀이라고 불리는 지렁이야. 넌 누구니?”

“당근이지!”


아, 당근이구나. 누런 당근. 황당이라고 불러야겠다.

“황당이지?”

“왜 그렇게 불러?”


“누런(黃) 당근이니 황당이지.”

“쳇, 좋을 대로 부르렴. 꾸물꾸역꾸깃꾸정꾸불꿈틀아.”


당근은 자기를 황당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하는구나. 지렁이인 내가 꿈틀거리니까 꿈틀이라 불리듯이 누런 당근이니 황당이라 불렀는데 말이야. 하긴 나도 내 행동 보고 꿈틀이라 부르는 게 싫긴 해.


“근데 황당! 혹시 식물이 왜 시드는 줄 아니?”

“물이 부족하면 시들지.”


그래, 넌 당연히 모를 거다. 너처럼 살찐 애가 어찌 그런 것을 알겠어. 괜히 물었구나. 넌 그저 살찌는 데만 신경 썼지 다른 풀들이 시드는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야.


“근데 꿈틀아, 그건 왜 물어?”

더 이상 황당과 말할 맘은 없지만 귀찮게 물으니 대답이나 하고 뜨자.

“그건 내 존재를 아는 데 도움 되기 때문이야.”


“음, 자기 존재를 안다는 것은 중요하지!”

어쭈! 마치 존재에 대해 아는 것처럼 말하네? 정말 꼴불견이로다.


“꿈틀아, 나도 나를 알기 전에는 매우 갑갑하고 혼란스러웠지. 그러나 내 존재 가치를 깨달은 후 내 삶을 귀하게 여겨.

어머, 황당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정말 알고 있나봐? 솔깃한데!

“황당, 넌 널 아니?”


“난 태어날 때부터 뿌리가 필요 이상으로 굵어질 기미가 보였어. 주위에 있는 다른 풀들은 제 뿌리와 줄기의 굵기가 별 차이 없는데, 나만 유난히 굵어지는 것 같았어. 그래서 살찌지 않으려고 물과 양분을 거부했지. 난 점점 힘이 빠졌지만 살 빼기 위해서는 이런 고통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러다가 정신을 잃었는데 꿈결에 누군가를 만났어. 그는 자신을 풀과 나무의 요정 ‘숲바라기’라고 했는데, 내게 당근의 선조를 보여줬어.”

“숲바라기?”


황당이 말하는 숲바라기는 누굴까? 그도 내게 내 선조를 보여줄 수 있을까? 황당 얘기가 황당치만은 않구나. 계속 들어보자.


“우리 선조 당근의 뿌리는 야생의 어느 풀과 다름없었어. 어느 날, 인간은 우리 선조를 길들이기 시작했어. 결국 야생당근은 인간에게 길들여져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야. 인간에게 길들여짐으로써 당근의 숨은 자질이 빛을 본 것이고, 생물체의 사명인 종족보존을 더 용이하게 하였지. 인간은 인간을 위해 당근을 길들였고, 당근은 당근을 위해 인간에게 길들여진 거야.

“당근, 어떻게 인간에게 길들여진 거지? 그리고 인간에게 길들여진 것을 왜 좋은 것처럼 말해?”


“농부는 우리 당근의 모성애를 이용했어. 즉 한해살이 당근이 일년 내에 씨를 만들지 못하도록 방해한 거야. 그러면 야생당근은 다음 해에 싹을 틔우기 위해 양분을 뿌리에 저장하리라 기대했지. 농부는 자라는 대로 줄기를 잘라내어 꽃이 못 피도록 한 거야.”

“윽, 가혹해!”


“그러나 당근뿌리는 여전히 살이 찌지는 않았어. 이듬해에는 씨 뿌리는 시기를 매우 늦추었어. 씨 맺기 전에 겨울 오면 양분을 뿌리에 저장하리라는 기대했지.”

“농부는 정말 가혹해!”


“기존의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지. 한두 번의 환경변화에 쉽게 습성을 바꾸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 거야.”

“맞아, 나도 바라는 바는 있지만 그렇게 바뀌지는 않아.”


“하지만 종족보존을 위한 우리 식물의 노력은 대단해. 한 해에 씨를 맺을 수 없는 상황이 오자 몇몇 야생당근은 종족보존을 위해 두해살이라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였어. 즉, 올해 일단 몸만 자라고 씨는 내년에 맺는 걸로. 딸들은 엄마의 성질을 닮는 법, 특성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한번 바꾸면 또한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지.

“그럼, 너희 당근은 인간에게 지배당한 거니?”


“꿈틀아, 그건 일방적인 지배가 아닌 더불어 살기야. 인간은 우리의 숨은 자질을 개발하여 이익을 얻었고, 우리는 인간을 통해 종족번식을 효율적으로 했지.”

“서로 좋게 타협한 거구나.”


“이것을 깨달으니 내 비대한 뿌리가 더 이상 거추장스럽지 않고 오히려 뿌듯하게 여겨졌어. 난 인간을 위해 뿌리를 살찌우지만, 더 크게는 당근을 위한 거야. 인간 좋고 당근 좋은 것이 올바른 더부살이 아닐까?

“그렇구나. 실은 나 심각해.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의문스러워. 넌 당근을 위하고 인간을 위해 산다지만, 난 고작 흙을 먹으며 꿈틀거릴 뿐이야.


“우린 자신을 잘 알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당근아, 나도 숲바라기를 만나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겠니?”


“그래. 숲의 요정은 항상 우리 곁에 있어. 부르면 언제든지 나타나지.”

숲바라기를 부르면 나타난다고? 정말 그럴까? 그럼 당근이랑 같이 숲바라기를 불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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