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꿈(6)_시들부들한 명아주를 어떻게 살릴까

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6

by 시골뜨기

자, 조금만 더 가자. 근데 이상하다. 이곳은 물이 충분한데 여기 식물이 왜 시들까? 혹시 숲바라기가 거짓말한 것은 아니겠지. 아 저기 시든 풀이 있구나.


“얘, 넌 왜 시들었니? 이곳은 물기가 충분하다 못해 많은 편인데 말이야.”

“응, 지렁이구나. 난 명아주인데, 보다시피 시들었어.”


“네가 시든 이유를 알고 싶어.”

“우리 명아주는 자랄 때 다른 풀들보다 곱절의 물을 필요로 해. 물을 얻으려고 옆의 다른 풀들과 치열한 다툼을 하는데 난 그것이 싫었어. 그래서 흙의 요정에게 부탁했어. 쉽게 물을 얻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흙의 요정?”

“응, 흙의 요정은 흙지킴이야.”


“또 다른 요정이구나.”

“흙지킴이는 내 요구를 들어줘서 뿌리 밑으로 물줄기가 흐르도록 해 주었어. 난 물을 얻기 위해 굳이 애쓸 필요가 없었지. 물은 충분했으니까.


“잘 됐구나. 근데 왜?”

“그런데 그게 잘된 게 아니었어. 며칠 지나니 뿌리가 숨을 못 쉬었어. 뿌리 주변에 산소가 없던 거야. 공기가 있어야 할 공간에 물이 들어차면서 공기를 내쫓은 거지. 내 뿌리는 숨이 가빠졌어.”


“저런!”

“뿌리가 숨을 못 쉬자 물을 빨 기운도 없어졌어. 물은 있으나 물을 못 마셔서 이렇게 시들고 말았단다.”


“물이 없어서가 아니었구나.”

“내게 필요했던 것은 물을 빨아들일 힘이었어. 난 물이 부족하다고 불평만 했지 물을 빨아들이는 힘을 기르지는 않았어. 이젠, 말할 힘조차 없구나.”


“저런, 네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니?”

“모르겠어. 흙지킴이라면 알 텐데.”


“명아주, 그럼 어서 흙지킴이를 불러보자. 흙지킴이!”

명아주가 불쌍하다. 숲바라기가 당근에게 많은 지식을 전해 주었듯이, 흙지킴이도 명아주에게 살 길을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제발 나타나다오.


“꿈틀아, 날 찾았니?”

“응, 흙지킴이. 저 명아주가 너무 가엾어. 시든 명아주 살릴 수 있겠니?”


“난 명아주가 바라는 대로 해줬을 뿐이야. 그의 선택에 대해선 그가 책임을 지는 것, 명아주가 게을러서 화를 자초한 것이니 나도 어쩔 수 없구나.”

“······.”


“꿈틀아, 팽나무가 네게 낸 문제를 이젠 알 수 있겠니?”

어라? 흙지킴이는 팽나무가 내게 한 질문을 어떻게 알았지?

“이상하게도 식물이 시드는 것은 물이 적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많아서 구나. 중요한 것은 재능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가진 재능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 문제인 것 같아.”


“꿈틀아, 흙지킴이인 나는 흙 속에 있는 생물들에게 조물주의 뜻을 전해. 생물의 습성은 매우 치밀하고 질서 있고 조화로운 그분의 의지에 의한 거야. 간혹 이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들이 있지만, 우리는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지.”

“우리?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 거지?”


“우리가 누군지 궁금하다고? 우리는 흙의 요정인 나 ‘흙지킴이’, 공기의 요정인 ‘하늘지기’, 나무와 풀의 요정인 ‘숲바라기’, 그리고 물의 요정인 ‘물푸름이’야.”


“흙지킴이, 나 좀 살려줘!”

맞아, 옆에 명아주 있었지. 살려달라는 애원조차 너무 힘겹구나. 흙지킴이가 명아주를 살려줄 수 있을까?


“명아주야, 주위에 있는 풀들이 그저 조용히 땅에 뿌리만 박고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한지 아니? 줄기는 햇빛을 받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뿌리는 물을 얻기 위해 돌을 부수는 아픔도 감수한다. 이러한 것들이 연약한 식물들에겐 고된 작업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생존력이 생기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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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아주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흙지킴이의 말을 듣고 있구나. 하긴, 할 말이 없겠다. 자기 꾀에 넘어간 꼴이니.

“환경이란, 식물들에게 항상 좋게만 다가서는 것이 아니거든. 때론 매서운 폭군으로 변하지. 생존력이 없다면 다음 세대를 기약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러면 식물을 만든 조물주의 뜻을 저버리는 거야. 명아주야, 조물주의 뜻 알지?”

“네. 생물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거죠.”


“생육과 번성은 차이가 있는데 ‘생육’이란 오늘을 사는 너의 모습이고, ‘번성’이란 내일을 사는 네 후손의 모습이야. 조물주가 바라는 것은 우선 자기가 잘 자라서 다음 후손도 잘 번지는 거지. 너같이 게으른 식물은 생육은 할지언정 번성은 할 수 없겠구나.”

흙지킴이가 명아주를 마구 나무라는구나. 아, 명아주가 불쌍하다. 기운 잃어 더 시들었구나. 그냥 이대로 죽게 둘 수밖에 없을까? 뭐라도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흙지킴이, 명아주를 살릴 방법이 없는 거니?”

“꿈틀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냐.”


“뭔데?”

“너!”


나? 나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꿈틀아, 네가 명아주를 살릴 수 있단다.”


내가? 나같이 천한 지렁이가 어떻게 죽어가는 명아주를 살릴 수 있지?

근데 이상하다! 흙지킴이는 분명 나를 지목했어. 그는 내게서 어떤 가능성을 봤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흙 파는 재주밖에 없는데 어떻게 명아주를 살릴 수 있다는 거지. 흙을 파는 재주밖에 없는 내가, 흙을 파는, 흙‧‧‧‧‧‧.


바로 그거야! 흙을 파면 되겠구나. 명아주의 뿌리 아래에 구멍을 뚫으면 고인 물이 밑으로 빠져서 명아주 뿌리가 다시 숨을 쉴 수 있겠다. 그러면 명아주는 활력을 되찾아서 정상적으로 물과 양분을 빨아들일 수 있지. 내가 왜 이 생각을 하지 못했지? 흙을 파는 작은 내 재주가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니, 와 기쁘다. 내 존재도 조금은 가치 있구나.


명아주.jpg 명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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