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꿈(7)_1은 '있는 것'이고 0은 '없는 것'

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7

by 시골뜨기

따사로운 바다에서 물김이 너울너울 피어올라 한 뭉텅이 구름이 뭉쳤다. 햇살이 비치는 곳에 따라 공기의 온도차가 생기고, 이로 인해 공기놀이하듯 공기를 주고받아 바람이 인다. 이 바람은 구름을 데리고 땅별 곳곳 맴돌다가, 지치다 싶으면 나그네 봇짐 부리듯 소나기 한판 게우고 선 홀가분히 떠난다.


여름이면 이따금씩 적도 부근의 북태평양 서쪽 하늘에서 소용돌이 구름이 빙글빙글 피어난다. 바람개비 닮은 태풍은 왼편으로 빙빙 돌며 대륙으로 다가간다. 바다 투수가 던진 물폭탄은 직구가 아닌 변화구, 육지 포수가 감을 잡지 못해 쩔쩔맨다.


한반도로 밀려오는 먹장구름을 보며 하늘지기는 시름에 젖었다. 비는 분명 땅에 좋은 것이지만 땅이 제대로 빗물을 소화하지 못하면 배탈 나기 때문이다. 빗물을 잘 빨아들이려면 땅거죽에는 나무와 풀이 뒤덮어야 하고, 흙 꼴은 떼알구조여야 한다. 벌거숭이 맨땅이거나 홑알구조인 흙은 물을 빨아들이는 힘이 약하다. 보슬비엔 지장 없으나 작달비가 내리면 소화 못하고 탈 나서 토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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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꺼멓게 몰려든 먹장구름은 장대비를 실컷 쏟더니만 가뿐 떠났다. 얼마의 빗물은 나뭇잎이 머금었고, 일부는 낙엽이 머금었고, 나머진 흙이 머금었다. 흙 틈새에 물이 들이치자 흙 속의 생물들은 불난 목욕탕을 빠져나오듯 숨을 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꿈틀이도 몸을 비틀며 나왔다.


비 온 후라 물기 있다지만 한여름 따가운 햇살은 지렁이에겐 불화살이다. 물 피해 밖으로 나왔다가 불에 데어 죽을 판이다. 햇살 맞은 지렁이는 신경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한다. 비 온 후 길가에 널브러진 지렁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꿈틀이는 피부가 타 들어감을 느꼈다.

‘이렇게 꼼짝없이 죽는구나. 숲에 그대로 있었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슬기곶을 찾아 밑으로 내려와 이렇게 황톳길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나는 무엇을 알았는가? 한 가지 안 것은 내가 흙을 팜으로써 식물이 잘 살 수 있다는 사실, 그러나 그게 뭐 그리 대단한가! 나는 단지 명아주 하나를 살리고 이렇게 죽는데, 명아주를 살리는 것이 내 가치의 전부인가? 겨우 명아주 한 개를 살리는 것, 이 앎을 위해 나는 보금자리를 떠났던가! 명아주 한 개의 가치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런 모험을 했던가! 내가 만났던 팽나무 할아범, 흙지킴이, 숲바라기는 이것을 깨닫게 하려고 이곳으로 날 보냈는가? 그까짓 명아주 하나를 위하여 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쳐야 하다니······.’


꿈틀이는 점점 사그라지는 생명을 느끼며 자신을 한심스럽게 여겼다. 이때 하늘지기가 꿈틀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꿈틀아, 하나란 뭐지?”

“하나가 뭐냐고? 하나는 그저 하나지. 백도 아니고 천도 아닌 가장 작은 수인 한 개지 뭐야.”


“한 생명을 살린다는 것은 뭐지?”

꿈틀이는 당장 햇빛에 타들어가 죽게 생겼는데 하늘지기는 자꾸 쓸데없이 꿈틀이에게 질문을 했다.

“하늘지기야, 왜 자꾸 내게 쓸데없이 질문하니? 내가 땅을 파서 한 명아주를 살린 것뿐인데, 내가 죽어가는 이 마당에 그딴 것이 무슨 의미 있어.”


꿈틀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수긍하며 삶을 포기한 채 죽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상한 질문을 하는 하늘지기 요정이 얄밉기도 하지만, 그나마 자신의 죽음을 지키는 유일한 동무이므로 고분고분 대답했다.

“꿈틀아, 네 말대로 하나는 가장 작은 수인 1이야.

“······."


하늘지기는 맥없이 바라보는 꿈틀이에게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자, 1과 2 사이에는 얼마의 차이가 있지?”

“1.”


말할 기운도 없는 꿈틀이는 짧게 대답했다.

“그럼, 0과 1 사이는?”

“1.”


꿈틀이는 짜증이 살짝 났다.

“그래, 1과 2 사이는 1의 차이가 있고, 0과 1 사이에도 역시 1의 차이가 있어. 두 계산에는 1의 차이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반면에 다른점도 있지. 그게 뭔지 알겠니?”

“······?”


둘 다 1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떤 차이가 있다는 거야. 꿈틀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늘지기가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꿈틀아, 1과 2는 2 보다 ‘적다’와 1 보다 ‘많다’의 크기의 차이가 있지만, 0과 1은 전혀 ‘없다’와 조금 ‘있다’의 존재의 차이가 있어. 1은 2에 비해 한 개 적지만 적으나마 ‘있는 것’이고, 0은 1에 비해 마찬가지로 한 개 적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

“그래서?”


“1과 100 사이에는 99의 많은 차이가 있지만 0과 1 사이의 ‘없다’와 ‘있다’의 차이, 즉 존재의 유무에 비하면 그 99는 아무런 차이도 아냐.”

“존재?”


꿈틀이는 헷갈렸다. 있다와 없다의 차이! 그나저나 지금 자신의 의식이 없어질 판이다.

“꿈틀아! 넌 단지 한 생명을 살렸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네가 살린 명아주 하나가 자라서 꽃을 피우면 수백 개의 씨가 맺혀. 그 수백 개의 씨가 싹트면 수만 개의 명아주가 생기지.

“그래서?”


“그 명아주는 산소를 만들어 공기를 맑게 하고, 동물에게는 좋은 먹이가 되고, 죽어서는 거름이 되어 질 좋은 흙이 된다. 그리하여 식물이 살고 동물이 살고 땅이 살고 하늘이 살지. 네가 비록 한 명아주를 살리고 죽더라도 네 행동은 가치 있는 거야.”

“내가 가치 있다고?”


꿈틀이는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가치를 중얼거렸다. 하늘지기는 이어서 가치 얘기를 계속했다.

“가치 있는 존재는 비록 작으나마 그 가치가 가장 가치 있게 쓰이기를 바라지.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요구할지라도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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