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꿈(8)_물은 아래에서 위로도 흐른다

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8

by 시골뜨기

하늘지기는 지나가는 구름을 붙잡았다. 물을 머금은 구름은 하늘지기가 톡 하고 건드리자 한차례 빗줄기를 쏟아냈다. 빗물은 꿈틀이를 도랑으로 밀어 넣더니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꿈틀이를 실은 물줄기는 저수지로 들어섰다. 두리번거리는 꿈틀이에게 물푸름이가 다가갔다.


“꿈틀아, 햇볕에 말라죽을 뻔했다지? 하늘지기가 널 살리려고 지나가는 구름을 붙잡아 비를 뿌렸단다. 그 빗물이 너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어. 비가 너를 땅 위로 나오게 해 죽게 할 뻔했지만 비가 다시 너를 살렸구나.”

“아직도 햇볕에 덴 곳이 따끔거려. 이렇게 물속에 있으니 조금 나은 것 같아. 숨쉬기는 가쁘지만.”


“네가 왜 이곳까지 왔는지 아니?”

물푸름이가 꿈틀이에게 물었다. 꿈틀이는 대답했다.

“글쎄, 난 내 존재 이유를 알고자 슬기곶을 찾는 중인데!”


맞다. 꿈틀이는 팽나무 할아범이 말한 슬기곶을 찾아 창문을 떠났다. 요정들이 안내를 한다고 했는데, 그 말대로 숲바라기, 흙지킴이, 하늘지기를 만났다. 그리고 이렇게 물푸름이도 만났다. 꿈틀이는 자신감이 생겼다. 요정들의 도움으로 슬기곶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용기를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물이 너를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해. 다른 것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오히려 해롭지.

물푸름이의 말을 들으니 꿈틀이는 물 때문에 죽을 뻔한 명아주가 떠올랐다.




멀리 붉은빛이 감도는 물체가 꿈틀거렸다. 물고기가 간간이 꿈틀이 곁을 지나가지만 진흙에 파묻혀 있는 꿈틀이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다. 물은 흙탕물 때문에 부옇게 흐렸다.


“꿈틀아, 흙이 양분을 먹듯 물도 양분이 필요하지. 하지만 너무 많은 양분은 오히려 호수를 병들게 해. 물속에 질소나 인 같은 양분이 많으면 플랑크톤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플랑크톤이 많으면 이들의 호흡으로 물속의 산소가 부족해져. 물속 산소가 부족하면 호흡이 곤란한 물고기는 떼죽음을 당해. 죽은 물고기가 부패하면 이 부패균의 호흡으로 물속 산소는 더욱 줄어들어. 산소가 부족한 호수는 결국 죽은 호수가 되지. 물은 자정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을 초과하면 자정능력을 상실하지.”


물푸름이는 부영양화된 호수를 안타까워하며 꿈틀이에게 욕심에 대해 얘기했다. 욕심은 저수지의 양분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꿈틀이는 물푸름이에게 물었다.


“물푸름이, 물을 필요로 하는 명아주는 물이 많아서 죽을 뻔했고, 플랑크톤을 필요로 하는 물고기는 플랑크톤이 많아서 죽을 판인데, 그럼 많아서 좋은 것은 없는 거니? 좋은 것이라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은데?”

“꿈틀아, 물은 식물에게 분명 가치 있어. 그러나 물이 가치 있지, 많은 물이 가치 있는 것은 아냐.”


“많은 물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이거지?”

“물의 흐름도 생각해보자. 물은 어디서 어디로 흐르지?”


“위에서 아래로.”

“그래, 사람들은 말하지. 물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이것은 진리이며, 거스르면 안 된다고 말해. 맞아! 보이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


“보이는 물?”

“빗물이 하늘에서 내리고, 폭포수가 절벽 밑으로 떨어지고, 계곡물이 아래로 흐르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 그러나 물은 아래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지. 바다에서 하늘로 물김이 올라가고, 식물체에서는 흙에 있던 물이 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물의 흐름, 즉 아래에서 위로의 흐름이 있어야 가능해.”


“물은 아래에서 위로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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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저수지에 잔물결이 살랑거렸다. 뿌연 흙탕물이 점점 맑아지자 물풀 사이로 헤엄치는 붕어와 송사리들이 보였다. 낚시꾼들이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하나 둘 낚싯대를 걸쳤다. 물푸름이는 낚시꾼들이 설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들은 저수지를 더럽히는데 한몫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물고기를 잡아가는 것은 저수지에 별 영향이 없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는 두고두고 골칫거리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자기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산에 가면 바위와 나무에 이름을 새기고, 서로 만나면 명함을 건네며 상대 마음에 자신을 새기려고 애쓴다.

그 성깔이 저수지에서도 드러난 걸까? 자신이 왔다간 흔적을 남기기 위해 라면봉지, 소주병, 깡통, 휴지조각, 낚싯줄, 부러진 낚싯대 등등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들은 열 마리의 물고기를 잡아가는 것도 모자라서 남아있는 백 마리의 물고기를 괴롭힌다.


물푸름이는 물속에 매달린 지렁이 미끼를 보다가 다시 꿈틀이에게 얘기했다.

“꿈틀아, 사람들이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라고 말하더라도 우리는 ‘물은 아래에서 위로도 흐른다’라고 말하자.”

“물푸름이, 난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것을 본 적 있어. 흙에 있는 작은 공간들이 가느다란 통로가 되어 깊은 흙에 스며있는 물을 빨아올리고 있었어. 그 물줄기가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었어.”

꿈틀이는 흙속의 떼알구조 틈바구니에서 물이 위로 흐르는 것을 몸으로 느낀 것을 떠올리며 조금 흥분에 겨워 말했다.


수면에서는 몇몇의 물맴이가 빙빙 원을 그리며 맴돌았다. 그들의 눈은 절반은 수면 위로 나와 있고 절반은 물속에 잠겨있어서 물 안팎을 다 볼 수 있다. 소금쟁이 한 무리도 물가에서 잔물결을 일으키며 짝을 부르는 파장을 열심히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발에는 기름기가 있어서 물 위에서도 마치 얼음 위에 있는 것처럼 빠지지 않았다.


“맞아, 그것을 ‘모세관현상’이라고 해. 가뭄이 계속되더라도 식물이 시들지 않는 것은 바로 흙의 모세관현상 덕분이야. 겉흙은 말랐을지라도 속흙은 축축하거든. 흙은 모세관을 이용하여 속흙의 물기를 빨아올려 식물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거지. 그러나 모든 흙이 모세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냐. 가령 모래흙은 흙 알갱이가 너무 성기어 모세관압이 생기지 않고, 찰흙은 흙 알갱이가 너무 촘촘하여 틈새가 없어. 모래흙이나 찰흙의 경우는 서로 극과 극이지만 이 둘이 잘 어울리면 아주 좋은 떼알구조 흙이 되어 모세관이 잘 생기지.”

“떼알구조 흙이 중요하구나.”


“꿈틀아, 넌 좋은 흙을 만드는 일꾼이야. 너는 모래도 먹고 찰흙도 먹고 낙엽도 먹어서 이들을 네 뱃속에서 버무리어 떼알구조 흙으로 만들어 다시 밖으로 내놓거든.”

“난 그저 흙밥을 먹고 흙똥을 쌌을 뿐인데!”

물푸름이의 말에 꿈틀이는 기분이 좋았다.


“꿈틀아, 지렁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좋은 가치를 발휘하듯이, 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가치를 나타내고 있어.”

“어떤 건데?”


“생물체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물질에는 물이 들어있어. 만약 공기 중에 물 알갱이가 없다면 지구는 산불로 인해 타버릴 거야. 그리고 바위 속의 물은 매우 적지만 얼면서 불어나는 힘으로 바위를 부숴서 흙의 원료가 되기도 해.”

“물이 바위를 부순다고?”


꿈틀이는 무른 물이 단단한 바위를 부순다는 말이 의아하여 되물었다. 물푸름이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대부분의 흙은 오랜 세월 동안에 바위가 부스러져서 이루어진 거야. 바위를 부수는 데는 많은 요인이 있는데, 시간, 온도변화, 햇빛, 바람, 식물의 뿌리 그리고 물이야. 이 물은 동식물을 자라게 할 뿐만 아니라, 흙을 만들어서 동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까지 가꾸어 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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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은 진흙에 몸을 묻고 있는 꿈틀이는 물푸름이가 한 말을 곰곰이 되새기며 물속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그레한 색이 유난히 선명한 물체가 바닥에 거의 닿을듯하게 매달린 게 보였다. 그것은 낚싯바늘에 꿰인 지렁이가 낚싯줄에 매달려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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