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9
저게 뭐지? 아까 물푸름이하고 얘기할 때 밖에서 풍덩하고 들어왔는데 계속 저렇게 매달려 있네. 저 색깔은 물고기들에게 금방 눈에 띌 텐데. 생긴 것은 뒤집어진 물음표(?) 꼴이지만 보아하니 지렁이 같은데!
“이봐! 거기서 뭐 하고 있니?”
“아니, 넌 꿈틀이잖아?”
깜짝이야! 쟤가 어떻게 날 알지? 난 쟤를 처음 보는데!
“맞아, 난 꿈틀인데, 어떻게 날 알지?”
“네 아빠가 내 엄마거든, 그리고 내 엄마가 네 아빠고.”
“그게 무슨 소리니?”
도대체 쟤는 뭔 소리를 하는 걸까? 쟤의 아빠가 내 엄마고, 내 엄마가 쟤 아빠라니! 그럼 쟤와 나는 무슨 사이지? 쟤는 내 엄마와 아빠를 안다는 거네?
“꿈틀아, 난 네게서 풍기는 우리들만의 특별한 신호 때문에 너를 알아봤어. 우리들의 부모는 성스런 의식을 한 후에 네 엄마, 즉 내 아빠는 숲으로 가서 널 낳았고 내 엄마, 즉 네 아빠는 들로 가서 날 낳았단다.”
“그래, 난 숲에서 태어났어.”
“난 두엄더미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에는 내 엄마와 다른 많은 지렁이들이 있었어. 거기는 매우 좋은 환경이라서 많은 지렁이들이 살아. 난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 그들은 자신들이 살며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모두 내게 알려 주었거든. 넌 어떻게 살았니?”
드디어 아빠엄마 소식을 들었구나. 이렇게 형제도 만나고, 좀 있으면 아빠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빨리 그 두엄더미로 가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봐야지. 어쩜 그곳에 슬기곶이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형제야, 난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어. 넌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동포야. 내게 지렁이에 대해 가르쳐 주는 이가 없어서 스스로 그것을 찾아 나섰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어. 나도 너처럼 살기 좋은 곳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지렁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그 두엄더미가 궁금하다. 거긴 어딜까?
“꿈틀아. 지금의 내 신세를 아니?”
“아니. 근데, 왜 매달려 있지?”
맞아, 내 동포는 왜 저기에 매달려 있지? 물속에 뭐가 있나 살피려고 밖에서부터 줄을 타고 물속으로 들어왔나 보다. 어쩌면 요정처럼 날 찾으러 왔는지도 모르지.
“난 곧 죽게 될 처지야.”
“죽다니? 왜?”
“꿈틀아.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또한 가장 죽기 쉬운 곳이다.”
“살기 좋은 곳? 죽기 쉬운 곳?”
“두엄더미가 그렇단다.”
방금 전에 두엄더미는 지렁이가 살기 좋은 환경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죽기 쉬운 곳이라고 하네. 무슨 사연이 있을까? 내 형제, 그리고 내 동포는!
“형제야, 두엄더미가 위험하다는 거니?”
“우리의 적들은 두엄더미에 지렁이가 많이 살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살고 좋은 곳이자 위험한 곳이야.”
“우리의 적은 누군데?”
내가 만난 적은 두더지였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기억이 아직도 아찔해. 또 어떤 적을 조심해야 할까?
“꿈틀아, 인간 중에 낚시꾼들은 우리 지렁이를 매우 좋아해. 지렁이는 영양분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물속에서 붉은 몸이 눈에 잘 띄기 때문에 그들은 우릴 미끼로 즐겨 애용하지.”
“우리 지렁이가 미끼라고?”
“그래. 물고기는 날 잡아먹으면 그들도 인간에게 먹히고 말지. 나나 물고기나 다 피해자야.”
“그럼 널 먹으려는 물고기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 될 텐데?”
“어떤 물고기는 내 신호를 알아듣고 미끼인 날 피하지만, 먹을 것에 눈먼 물고기는 내 신호를 무시해.”
“형제야, 네가 곧 죽게 될 운명이라니! 난 네가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거니?”
아, 이게 내가 그렇게도 알고자 했던 지렁이의 존재 이유인가? 지렁이의 신세인가? 지렁이의 운명인가? 이 무슨 가혹한 인연인가! 처음 만나는 동무, 아니 형제가 만나자마자 죽어야 하다니. 차라리 만나지나 말았으면 이 괴로움도 없을 텐데.
“꿈틀아, 안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거야. 현실을 인정한 후 대안을 마련해야지.”
“인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란?”
“우리 지렁이는 때론 물고기의 미끼가 되기도 해.”
“형제, 그런 현실 인정하기 싫어.”
“꿈틀아.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냐!”
형제는 죽음을 앞둔 입장임에도 처연하구나. 어떻게 저런 맘을 가질 수 있을까! 마치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
“형제야, 넌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두렵지 않니?”
“꿈틀아, 사실 나 두려워. 생명 있는 모두는 죽음을 두려워 해. 그러나 죽음이란 두렵기만 한 것은 아냐. 죽음은 끝이 아니고 삶의 한 과정일 뿐이지.”
“삶은 살아있음으로써 의미 있잖아. 삶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거 아니니?”
“꿈틀아, 삶을 가벼이 여기라는 뜻은 절대 아냐. 삶의 한 과정으로서 죽음은, 죽는 순간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뜻이야. 살아서 죽어야지, 죽어서 죽는 것은 옳지 않아.”
“죽어서 죽는다는 게 무슨 뜻이야?”
“몸이 죽기 전에 마음이 먼저 죽어버린 거지. 생을 포기한 자는 비록 몸은 살아있으나 마음은 이미 죽은 거야.”
“그럼, 살아서 죽는다는 것은?”
“살아서 죽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 삶을 살아가는 거지. 그것은 삶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는 삶의 의지이자 활력이지.”
“형제야, 나도 전에 죽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어. 그땐 죽음이 최선이자 최후의 선택이라고 여겨졌거든.”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들은 그런 변명을 해. 그러나 꿈틀아, 그것은 최선의 선택도, 유일한 선택도 아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없어."
“최선의 선택?”
“삶에 있어 최선의 선택은, 죽는 순간까지도 생생하고 팔딱거리는 거야. 그것은 삶의 가치를 알고, 사랑하는 몸짓이지. 죽기 전에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어.”
아, 아빠는 죽었구나!
“아빠······.”
“다른 선택은 되돌릴 수 있지만 죽음만은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도 돌이킬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없어. 왜냐면 아무리 현명한 선택도 완전할 수 없기 때문이지.”
“내 아빠는 어떻게 죽었니?”
“내 엄마는 ‘죽음의 밭’에서 죽었어.”
“죽음의 밭?”
“거긴 엄마가 태어났던 곳인데, 처음엔 거기도 살기 좋은 곳이었대.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곳은 살 수 없는 죽음의 밭이 되고 말았어.”
“왜?”
“그 밭의 농부가 농약과 화학비료를 너무 많이 밭에 뿌리는 바람에 독이 심해진 거지. 그 밭에 사는 지렁이들이 심심찮게 병 걸리고 죽어가기 시작했어. 몇몇의 지렁이들은 그래도 그 흙을 살리려고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렁이들이 떠났지. 엄마는 그 소식을 듣고 그 ‘죽음의 밭’으로 들어갔어. 모두가 떠나는 그곳으로 말이야. 나는 울면서 말렸지만 엄마는 내게 참 삶과 참 죽음에 대해 얘기했어. 그게 마지막 엄마의 모습이었지. 달포 후 그곳에서 나오는 한 지렁이로부터 엄마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어.”
“아빠······.”
“엄마가 죽은 후, 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는 것 못지않게 죽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어. 꿈틀아, 우리들의 엄마아빠처럼 우린 살아서 죽자.”
난 말없이 형제를 바라봤다. 저기서 잉어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다. 점점 다가온다.
“형제야, 저기 잉어가 다가와.”
“그렇구나.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젠 이별해야 할 것 같아. 넌 많은 가능성을 품은 지렁이야.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라.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어. 살아있는 한······.”
고요한 물속에 한바탕 요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내 잦아들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물속은 잔잔해졌다.
안녕, 형제여! 넌 죽는 순간까지도 삶의 의지를 품었다.
“꿈틀아, 힘들겠지만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라.”
어디서 나타났는지 물푸름이가 곁에 있었다.
“물푸름이, 넌 모든 것을 알고 있었구나.”
“그래. 삶이란 살아있음으로 가치 있는 거야. 쥐며느리처럼 제 생명을 버리는 일은 절대 없기 바라. 그 어떤 핑계와 사정도 동정(同情)은 될지언정 정당(正當)은 아냐. 죽도록 발버둥 쳐라. 도마뱀이 제 꼬리를 끊어버리는 것, 게가 제 다리를 잘라버리는 것은 한편으로는 죽는 행위인 것 같지만 실은 사는 행위야. 온몸을 살리기 위해 일부 살을 죽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