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꿈(11)_달팽이도 짝짓고, 지렁이도 짝짓다

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11

by 시골뜨기

새까만 밤하늘에 맑고 많은 별빛이 나 보란 듯 돋아났다. 메마른 땅거죽에 봄비 후 풀 싹 돋듯.

“외롭다.”


짙푸른 풀숲에 맑고 많은 벌레소리 다투듯이 터졌다. 투명한 유리잔의 탄산음료 거품 터지듯.

“그립다.”


밤이 되자 꿈틀이는 흙 밖으로 올라왔다. 밤하늘에 별빛이 총총하니 풀숲에선 풀벌레가 요란 떤다. 귀뚜라미 뚜룩뚜룩, 베짱이 쓰륵쓰륵. 이에 뒤질세라 여치, 방울벌레, 긴꼬리도 밤공기에 청청 소리 보탰다.


모두 짝을 부르는 소리다. 풀벌레 소리를 듣자니 꿈틀이는 더욱 외롭고 그리웠다.

“달아! 넌 알고 있니?”


꿈틀이는 하늘 귀퉁이에 고즈넉한 매달린 초승달에게 물었다. 눈썹 닮은 기운 달은 나긋이 바라볼 뿐 묵묵하다.

“태어난 순간 나에게 정해진 인연이 있다면, 그래서 이제껏 서로를 그리워했다면, 이제는 만나고 싶다.”

꿈틀이는 달 보며 혼잣말을 주절댔다. 달은 말이 없지만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 달 보며 넋두리를 했다.


꿈틀이 몸에는 변화가 생겼다. 머리 쪽에 있는 회색 띠 모양의 환대 표면이 두드러지게 부풀어서 가락지 모양의 띠막이 생겼다. 산란기가 가까워오면 환대에서 끈끈한 점액이 나와 튼튼한 환대막이 생긴다.

깊은 숲에서는 소쩍새 소리가, 가까운 풀숲에서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꿈틀이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귀뚜라미는 소리도 경쾌하지만 몸짓도 발랄하고 생생했다.


“귀뚜라미야, 넌 뭐가 그리 좋아서 흥겹게 노래하니? 네 노랫소릴 들으니 내 맘도 가뿐해.”

“노래하기 좋은 밤, 그리고 사랑하기 좋은 밤!”

귀뚜라미는 흥겨운 인사말을 건네며 연신 말을 이었다.


“밤이 되면 난 옆구리를 비벼대며 소리를 만들어. 때론 우울하고 노래하기 싫은 날이 있지만 난 한 가지를 깨달았어.”

꿈틀이가 물었다.

“어떤?”


“마음이 기쁘면 몸이 노래를 부르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것. 가령 맘이 우울하여 노래하기 싫은 때에 억지로라도 내 몸을 비벼서 경쾌한 소리를 만들면 그 소리에 내 맘이 달래지지.”

“몸은 맘의 지배를 받는 걸로 아는데, 몸이 맘을 움직인다는 말이니?”

꿈틀이는 귀뚜라미의 말이 의아했다. 어떻게 몸이 마음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인가? 몸은 마음 뜻대로 움직이는 것인데!


“꿈틀아! 난 맘이 몸을 지배하거나, 몸이 맘을 지배한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봐. 지배란 힘의 일반적인 흐름이야. 난 뜻이 한쪽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다고 봐. 그건 교감이지. 마음의 뜻이 몸을 움직이게도 하고, 몸의 행동이 마음의 기분에 영향을 끼친다고 여겨. 이것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감정과 행동의 원리인 것 같아.”

“귀뚜라미야, 지금 내 맘이 외롭고 우울한데, 그래서 노래할 맘은 아니지만 억지로라도 흥겹게 노래하면 나도 즐거울 수 있다는 거니?”

귀뚜라미는 대답 대신 즐겁게 노래했다. 귀뚜라미의 노랫소리에 이끌리어 다른 귀뚜라미 한 마리가 다가왔다. 둘은 한 몸이 되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관계구나!’

꿈틀이는 귀뚜라미의 신성한 의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가던 길을 재우쳐 잰걸음 했다.


얼마를 가다가 팽이 같은 집채를 지고 기어가는 달팽이를 만났다. 달팽이는 느린 지렁이보다도 더 느리다. 머리에서는 네 개의 더듬이가 느리게 허우적거린다. 위의 긴 두 더듬이는 물체를 알아보는 눈 역할을 하고, 아래의 짧은 두 더듬이는 맛과 냄새 등을 느끼는 코 역할을 한다. 달팽이의 꾸물거림은 꿈틀이가 보기에도 답답했다.


“달팽아, 그렇게 굼뜬 걸음으로 어떻게 적을 피할 수 있니?”

자신보다 더 불리한 달팽이가 안쓰러워 꿈틀이가 물었다.

“난 적이 나타나면 빨리 달아나지는 못하지만 대신 등에 있는 단단한 집으로 숨어.”


꿈틀이는 자신과 사정이 비슷한 달팽이를 만나니 동무를 만난 것 같아 얘기라도 나누고 싶어 달팽이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꿈틀거렸다.


“꿈틀아! 우린 걸음이 느린 것 말고도 비슷한 것이 더 있어.”

“그게 뭔데?”


“너희 지렁이나 우리 달팽이는 햇빛에 약해서 주로 밤이나 흐린 날에만 밖에서 활동할 수 있고, 물기 있는 환경을 좋아해. 또 우린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를 다 가지고 있지.”

“달팽이야, 움직임이 굼뜬 우리가 암수한몸(雌雄同體)인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우리의 느린 움직임과 관련 있지. 우린 빨리 움직일 수 없으므로 짝을 만날 기회가 그만큼 적어. 너나 난 같은 동족을 만나기가 드물므로 두 짝 모두가 암컷도 되고 수컷도 되어 각각 알을 까서 자손 번식에 지장 없도록 하는 거지.

“맞아. 내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몇몇 생물체를 만났지만 지렁이는 만나지 못했어. 내 형제 지렁이를 잠시 만났지만 바로 헤어지고 말았지.”


“꿈틀아, 가족이나 가까운 핏줄끼리 짝짓기를 하면 불리한 유전 형질이 대물림될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좋아.”

생물체의 좋지 않은 유전 형질은 대부분 열성 형질이므로 우성 형질과 만나면 드러나지 않은 숨은 형질이지만, 열성 형질끼리 만나면 드러난 형질이 되어 대물림된다.

“아하, 우리 동작이 굼뜨더라도 짝을 찾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그거구나.”


“그렇지. 우린 짝을 만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짝 없이도 알을 낳을 수 있겠지만, 이왕이면 짝짓기를 통해 자손을 남겨야 해”

“달팽이야, 우리 아름다운 인연 만나기를 서로 바라자!”

서로의 닮은 부분들을 확인할수록 서로 가까워진다. 닮은꼴이란 조금이나마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마음의 위안이다.


꿈틀이는 달팽이의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자기 종족인 지렁이는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개인의 이름도 중요하지만 종족의 이름도 중요하다.

이름은 특징을 담고 있다. 개구리는 개굴개굴 울어서 개구리고, 톡토기는 톡톡 튀어서 톡토기다. 나팔꽃은 꽃 모양이 나팔 모양이고, 달맞이꽃은 달이 뜨는 밤에 꽃이 핀다. 쥐똥나무는 열매 모양이 쥐똥을 닮았고, 생강나무는 잎과 줄기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


“달팽이야, 달팽이라는 이름이 참 우아한데 무슨 뜻이니?”

“내 모양이 달처럼 둥그스름하고 팽이처럼 동그랗게 감겨 있어서 달팽이라고 부르지. 지렁이는 무슨 뜻인데?”


“지룡(地龍)이라는 말이 변화되어 지렁이가 되었지. 그런데 어떤 이들은 징그럽다는 말이 지렁이로 변했다고도 우겨.”

사람들은 달팽이처럼 공 모양으로 둥근 것은 귀여워하지만 지렁이처럼 길고 꿈틀거리는 것은 징그러워한다. 꿈틀이는 그게 불만이다.


꿈틀이가 달팽이와 얘기할 때 다른 달팽이 한 마리가 다가왔다. 두 달팽이는 더듬이를 나풀거리며 서로를 확인하더니 두 몸을 휘감고 짝짓기를 했다. 서로가 수컷이 되어 큐피드의 화살인 연시(戀矢)를 상대에게 쐈다. 화살을 맞은 달팽이는 흥분하여 자신의 성기를 상대의 몸에 집어넣었다. 짝짓기를 하는 동안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하얀 연시는 그들의 잠자리 여기저기에 널브러졌다. 짝의 정자를 서로 충분히 갈무리한 두 달팽이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떨어졌다. 두 달팽이는 각각 흙에 20~30개의 알을 낳을 것이다. 달팽이 알은 하얀 껍데기에 싸였으며, 담배씨처럼 쪼그맣다.

snail-937104_1920.jpg


달팽이의 짝짓기를 바라보던 꿈틀이는 자기도 짝을 찾아 나섰다. 별무리의 송송함과 손톱달의 그윽함이 어우러진 밤하늘의 정적이 밤의 맑음과 깊이를 더했다. 사랑하기 좋은 밤이다. 여기저기에서 짝을 부르는 풀벌레 소리와, 짝을 맞은 풀벌레들 모습이 보였다.


꿈틀이는 느꼈다. 나뭇잎에 눈 쌓이듯 여린 소리지만 꿈틀이에게는 양철지붕에 우박 떨어지는 울림으로 느껴졌다. 그 흔들림은 낙엽 위를 기어가는 지렁이의 움직임이다.

지렁이의 몸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센털(剛毛)이 나있다. 이 센털이 있어 지렁이는 미끄러지지 않고 앞으로 갈 수 있다. 종이나 낙엽 위를 기어갈 때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드디어 꿈틀이는 짝을 만났다. 두 지렁이는 서로의 머리 부분을 맞대며 거꾸로 엉기었다. 두 지렁이는 움찔거리며 상대를 흥분시켜 보다 많은 정자를 받으려 애썼다. 환대 뒤에는 한 쌍의 수생식공(雄)이 있어 교미 중에 이 구멍에서 정자가 나와 짝의 머리 부분에 있는 수정주머니에 저장된다.


지렁이는 한번 교미하면 12시간 내지 24시간을 한다. 이는 언제 만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보다 많은 자손을 번식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정자를 얻기 위해서다. 짝의 정자를 제 수정낭에 충분히 갈무리하면 이윽고 둘은 떨어져서 각기 제 곳으로 간다. 이제는 알을 낳을 일만 남았다. 교배를 마치고 24시간 이내에 알이 들어있는 고치를 땅에 묻는데, 환대에 점액이 나와 생긴 희끄무레한 환상막이 고치가 된다.

earthworms-2773457_1920 (1).jpg


keyword
이전 11화꿈꿈(10)_남의 피를 빠는 거머리가 내 친척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