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꿈(13)_개미는 개미고, 지렁이는 지렁이다

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13

by 시골뜨기

‘왜 우리는 개미처럼 조직을 이루지 못할까?’

직수굿한 꿈틀이는 한참을 머물러 고민하는데 중얼이라는 지렁이가 다가왔다.


“수픈 슾… 숲은 숲이다.”

“······지렁이는 흔들리는 나뭇잎… 같다. 그, 그러나 생각하는 이파리다.”

“지렁이는 흙에서, 흙에서 만들어졌으니 흑, 흐윽, 흙으로 돌아가리라.”


중얼이는 연신 그럴듯한 말들을 혼자서 구시렁거렸다. 꿈틀이는 다시 자신의 고민에 빠져들었다. 병정개미가 자랑삼아 지껄인 몇 마디의 말이 꿈틀이의 가슴에서는 깊이 소용돌이쳤다.


‘우리도 조직생활을 하면 개미처럼 강해질까? 이것이 내가 찾고자 하는 삶의 의미인지도 몰라.’

남의 말을 가슴에 고이 품으면 시나브로 자신 말이 되어버리고, 나름대로 이끌어낸 결론은 점차 확고한 신념으로 굳어진다.


중얼이가 또 혼잣말을 했다.

“······나무는 자신이 왜 그곳에 심겨 있는지 불만… 하지 않는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비 오는 대로, …햇빛 비추는 대로, 다소곳이 순응하며 받아들인다.”

중얼이는 중얼대고 꿈틀이는 꿈틀댔다. 이 모습을 떨어져서 바라보면 중얼이는 선생처럼 가르치고 꿈틀이는 학생처럼 배우는 듯 보인다.


중얼이는 꿈틀이의 아빠가 태어나고 죽었던 ‘죽음의 밭’에 살던 지렁이다. 그곳은 농약에 오염되어 많은 지렁이가 죽거나 기형이 되었다. 지렁이는 농약을 분해하는 능력이 있어 오염된 흙을 정화되는데, 심하게 오염된 곳에서는 지렁이도 죽게 된다.


꿈틀이 아빠는 ‘죽음의 밭’을 살리려고 일부러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결국 죽었고, 중얼이는 신경세포에 이상이 생겨 싱거운 소리를 하며 떠돌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꿈틀이는 중얼이를 덜떨어진 지렁이로 여겼다.

중얼이는 생각하는 기능이 망가진 대신 기억하는 기능은 더 발달하여 예전에 들었던 말들을 생각 없이 떠버리는 버릇이 생겼다.


“······조직을 이룰 때에 가장 개미답고, 혼자 생활할 때 가장 지렁이답다.”

꿈틀이는 골똘히 생각하느라 중얼이의 소리는커녕 그 존재마저 느끼지 못했다. 중얼이는 한참을 구시렁거리다가 다른 곳으로 갔다.


“······개미는 개미고, 지렁이는 지렁이다.”

중얼이가 사라지는 것도 모르던 꿈틀이는 퍼뜩 생각난 듯, ‘뭐라고 말했지?’ 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중얼이는 이미 가고 없었다. 중얼이의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뭐라고 했더라? 손바닥을 긁어도 가려운 곳을 찾지 못해 갑갑하듯 꿈틀이는 안절부절못했다.


두엄냄새가 점차 진하게 풍겼다. 이윽고 아빠가 살던 두엄더미에 도달한 꿈틀이는 고향에 온 것 같아 들떴다. 두엄더미 주위를 살피던 꿈틀이는 어제의 중얼이를 만났다. 꿈틀이는 반가운 맘에 알은체를 하였으나 중얼이는 마냥 중얼거릴 뿐 별다른 내색이 없다.


“어제 뭐라고 말했지? 다시 그 말을 해줄 수 있겠니?”

그러나 중얼이는 꿈틀이의 물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허튼소리만 더듬거린다. 중얼이에게는 어제의 말이 중요하지 않다. 그가 지껄이는 말은 빙빙 돌아가는 통속에서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요술공 같은 것이다. 꿈틀이는 가려운 마음을 시원스레 긁어 줄 말이 어제처럼 우연히 튀어나오길 기대하며 얼마의 간격을 두고 중얼이를 따라갔다.


밭 귀퉁이의 아름드리 서어나무에는 어치 새가 둥지를 틀고 있다. 어치는 중얼이가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부리로 쪼아 이리저리 흔들어댄다. 중얼이는 붉은 피를 흘리며 두 동강이 났어도 계속 중얼거린다.


“개미는 개미고, …지렁이는 지렁이다.”

중얼이를 잡아먹은 어치는 토악질을 하며 금방 잡아먹은 중얼이를 게워냈다. 이어 눈이 뒤집어지고 날개를 퍼덕이며 쓰러졌다.


그 어치는 우연히 ‘죽음의 밭’ 두둑에 있는 서어나무에서 깃털을 다듬다가 농약에 중독되어 밖으로 기어 나오는 지렁이를 발견하였다. 그는 힘들게 멀리 날 것 없이 서어나무에서 농약 먹은 지렁이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는 얕은꾀를 내어 아예 둥지를 틀었다. 지렁이는 농약을 어느 정도 분해하는 능력이 있지만 분해하지 못한 농약은 지렁이 몸에 잔류되었다. 이런 지렁이를 계속 먹은 어치는 생물농축에 의해 저도 모르게 농약중독이 된 것이다.

blackbird-4103177_1920.jpg


keyword
이전 13화꿈꿈(12)_으스대는 외톨이 병정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