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꿈(5)_잠 깬 눈은 상황 따라 잎이 되고 꽃이 된다

단편소설 <꿈꾸는 꿈틀이>_5

by 시골뜨기

“숲바라기∼.”

“숲바라기∼.”

진짜 나타날까? 나타나면 좋겠다!


“안녕, 당근 그리고 꿈틀아.”

와우, 정말 숲바라기가 나타났네! 신기하다.


“숲바라기! 아직 의문이 덜 풀린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니?”

당근이 질문하는구나. 저 대답 듣고 나도 질문해야겠다.

“뭔데?”


“한해살이인 내 선조 야생당근이 환경변화에 의해 두해살이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난 조물주에 의해 생긴 창조물이니 아니면 환경에 의해 변화된 진화물이니?”

어? 꽤 어려운 질문인데. 나도 궁금하다.

“당근아, 창조와 진화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한가지야. 진화도 창조의 한 방법이지. 조물주가 생명체를 만들었을 때는 무생물로 만든 게 아니라 생물로 만들었어. 여기서 ‘생물’이란,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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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당근 뿌리가 굵어진 것처럼?”

“맞아. 조물주는 네 몸을 하나의 특성으로만 굳게 하지 않고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했어. 진정한 창조란 굳어버린 특성이 아니라 유동적인 특성이야. 이것은 바로 생명력이 있다는 것인데, 변화에 대한 반응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조물주의 뜻을 헤아려 보렴.”


“조물주의 뜻?”

“그래, 조물주의 뜻! 그것은 네가 이 땅에서 자라고 번지는 거야. 이것은 모든 생명체에 해당되지. 너 당근은 물론이고 네 옆의 지렁이인 꿈틀이도.”

나에게도 조물주의 뜻이 있다고? 이 땅에서 자라고 번지는 것? 음… 숲바라기의 말이 흥미롭구나.


“생물은 더불어 살기 때문이지. 어떤 인간은 자신들만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뜻으로 착각하여 다른 동식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데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야. 인간이 생육하기 위해서는 식물과 동물도 생육해야만 가능하거든. 환경은 씨줄과 날줄이 얼기설기 얽힌 커다란 그물이야.

숲바라기의 저 말은 나와 당근도 관계있고, 나와 인간도 관계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아직은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 흙이 나와 관계있다는 얘긴 이해가 되지만 나무, 돌, 물, 풀 등등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당근, 그리고 꿈틀아. 조물주는 자신이 만든 생물들이 고루고루, 두루두루 잘 살기 바라지. 다양한 변화에 대한 대안을 생명체의 깊은 곳에 잘 보관했는데, 본능의 경고가 울리면 그 대안이 활동해. 이것은 조물주가 슬기롭고 알뜰하게 생명체를 만든 방법인데, 모든 생물에 날개가 있고 다리가 있고 발톱이 있고 지느러미가 있고 뿌리가 있고 잎이 있고 가시가 있고 넝쿨손이 있다면 그건 낭비야. 조물주는 당장 필요 없는 기능들은 생명체의 깊은 곳에 그 가능성만을 보관했어. 본능의 경고가 울리면 그 가능성이 활동해. 가령 포도나무의 눈은 잎이 나거나 꽃이 피지만, 흙에 묻히면 그 눈에서 뿌리가 생기지. 모시풀이나 삼은 낮의 길이에 따라 암컷이 수컷으로 변하고, 수컷이 암컷으로 변하기도 해. 진딧물은 봄과 여름엔 모두가 암컷이 되어 새끼를 낳다가 가을이 되면 암컷 일부가 수컷이 되어 교미해서 알을 만듦으로써 겨울을 이기는 대안을 가져. 이러한 생태는 환경의 변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살아남기 위한 반응인데, 이것이 바로 ‘생의 의지’야.”

“그래, 생의 의지.”


“그런데 요즘엔 환경그물의 그물코가 자꾸 뜯기고 있어 안타깝구나!”

“환경그물이 망가지고 있구나!”

환경그물? 숲바라기와 황당이 말하는 환경그물이 망가진 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내게도 영향을 끼칠 사항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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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아, 꿈틀아! 조물주는 지혜가 많은 분이야. 너희들을 만들 때 여러 가능성들을 너희 몸 안에 심어 두었지. 비록 겉으로 드러난 형질은 아니지만 극한 상황에서는 그 가능성이 활동한단다. 야생당근이 겨울을 이기고 이듬해에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은, 극한 상황에 의해 잠자고 있던 기능이 깨어난 거야.”

숲바라기의 말은 알 듯 모를 듯하다. 이젠 나도 물어보자.


“숲바라기, 팽나무 할아범이 말하던 요정이 너구나. 그렇다면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물어보렴. 꿈틀아.”


“혹시 식물이 시드는 까닭을 아니?”

“알지!”


“뭔데?”

“꿈틀아, 네가 시든 식물을 직접 보는 게 좋겠다. 저기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시든 이를 만날 수 있어. 그에게 왜 시들었냐고 물어보렴.”

아, 드디어 수수께끼를 풀 수 있겠구나. 빨리 가서 그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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