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용기는 신중한 비겁보다 못하다
땡볕이 이글거리는 한여름에는 그녀의 퀭한 눈망울이 내 눈에 아른거린다. 기를 쓰며 말리는 그녀를 기어이 뿌리치고 난 내 고집대로 했다. 그땐 그것이 옳은 길이고, 그녀의 행동은 정신 나간 짓거리인 줄로 알았다.
양철지붕이 지글거리는 번철처럼 달구어지던 그해 여름, 삼복더위는 어지럼증이 일 정도로 온 누리에 가득했다. 기다리던 소낙비는 내릴 낌새가 없고, 말짱한 하늘은 왜 그리 흐물거리던지!
애가 위험했다. 그 더위엔 어른도 견디기 버거운데, 막 태어난 갓난아이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역일 것이다. 난 더위로부터 아이를 지켜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더위 먹어 지랄병에 걸린 걸까? 난 한사코 그녀의 행동을 막았다.
결국 말복 즈음에 아이는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 때문이 아니라 섣부르고 깜냥 없는 나 때문이었다.
무지한 용기는 신중한 비겁보다 못하다.
이것을 뼈저리게 곱새긴 여름이었다.
춘천에서 소양교를 건너 북한강을 끼고 화천 방향으로 가다 보면 신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난 그곳에서 군 복무를 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상병 때였다. 난 부대장을 모시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부대장의 가족들은 김천에 살고 있어 부대장 혼자 관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난 가끔씩 관사에 가서 이것저것을 살피곤 했다.
어느 날 부대장은 그녀를 관사로 데리고 와서는 날더러 잘 돌봐주라고 했다. 종일 혼자 지내는 그녀와 놀아주기도 하고 밥도 해주곤 했다.
그녀의 이름은 '양순이'다. 생긴 것은 그리 곱살스럽지 않지만 마음은 무척이나 여리고 순했다. 내가 가면 얼마나 반기는지 모른다. 종일 혼자서 지내는 것이 무척이나 따분하기도 했을 것이다.
난 가끔 그녀와 연병장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장병들이 생활하는 내무반에도 데리고 들어갔다. 주뼛주뼛하며 날 따라 내무반에 들어온 양순이는 장병들의 야유와 호들갑에 흠칫하며 뛰쳐나갔다. 다른 사병들이 꼬드기며 손짓해도 양순이는 내 곁에만 바짝 붙어 다녔다. 무척이나 수줍음이 많고 낯을 가리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양순이의 정체를 밝혀야겠다. 양순이는 ‘개’다.
모자라는 부대 운영비에 보탬이 될까 하여 부대장은 양순이를 샀다. 사료는 사병식당에서 생기는 짬밥을 먹이면 될 것이고, 새끼를 내기 위해 다 자란 개를 샀다. 양순이를 심포리에서 사 왔는데, 신동에서 춘천댐을 지나 화천 방향으로 올라가면 접하게 되는 북한강가의 호젓한 마을이다.
부대로 온 지 두 달 정도 지나자 양순이는 발정을 했다. 나는 운전병인 김 병장과 인사계인 김 상사와 함께 심포리로 갔다. 굴곡이 심한 까닭에 뒤틀림이 심하지만 지프차 안의 양순이는 얌전하게 있었다. 양순이의 교미상대는 도사견인데 양순이보다 갑절은 컸다. 부대장은 큰 새끼를 배게 하려고 일부러 큰 수컷을 골랐던 것이다.
양순이를 도사견 개장에 집어넣었다. 도사견은 주눅 들어 잔뜩 움츠린 양순이의 꽁무니를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서로 간에 약간의 실랑이가 있은 후 도사견이 양순이를 올라탔다. 침을 질질 흘리며 흘레붙은 두 개의 모습을 호기심과 설레는 맘으로 지켜보았다.
밥 지을 짬 가량 맞붙어있던 개들은 이윽고 떨어졌다. 도사견의 기다란 살덩이가 양순이에게서 쑥 빠지더니 도사견은 약간 비틀거렸다. 도사견의 침이 양순이 목덜미에 주접스레 묻어있다. 후줄근한 양순이가 안쓰럽고 대견하였다. 부디 많은 새끼를 쑥쑥 낳아주길 기대하며 볼때기를 쓰다듬었다.
새끼는 잘 들어섰다. 젖꼭지가 봉긋 솟아오르고 뱃구레가 도톰하게 불러왔다. 두 달이 지난 후 양순이는 아홉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쭈글쭈글 주름이 잔뜩 진 오동통한 강아지는 눈도 못 뜬 채 꼼지락거렸다. 앙증맞고 깜찍했다. 고양이가 계란 굴리듯 조심스레 새끼를 집어 볼에 대었다. 강아지의 함함한 털이 너무 부드러웠다. 새끼를 낳느라 기진맥진한 양순이의 몸조리를 위해 취사반에서 미역과 쇠고기를 얻어다가 국을 끓여 주었다.
장마 내내 보자기처럼 온통 하늘을 덮고서 빗줄기를 내리쏟던 먹장구름이 밀려나자, 그동안 구름에 가려졌던 햇살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땅바닥에선 푸석거리며 먼지가 일고, 나뭇잎은 시든 푸성귀처럼 시들부들 하였다.
햇살에 빤히 비치는 담벼락에 자리한 양순이의 집은 한껏 달구어져 있었다. 양순이의 혀는 엿가락처럼 쳐져있고, 눈도 못 뜬 강아지들은 땅 위로 나온 두더지처럼 더듬거리며 그늘을 찾고 있었다. 나는 수돗물을 끌어다가 개집 둘레와 지붕에 뿌렸으나 종일 그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저 점심때 잠깐 들르거나 부대장님이 부재중일 경우에 잠시 짬을 낼 뿐이었다.
중복 무렵이었다. 해파리처럼 늘어진 몸을 이끌고 관사에 갔다가 양순이의 이상한 행동을 보았다. 앞발과 불거진 주둥이로 개집 밑의 땅을 파고 있는 것이다. 날 보고는 꼬리를 흔들며 알은체를 하더니 다시 땅을 팠다. 양순이의 행동이 의아하여 다소곳이 바라보는데, 얼마 정도 흙을 파낸 양순이는 옴짝달싹 않고 누워있는 새끼를 물어 들었다. 어미에게 물린 강아지는 바동거릴 뿐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데, 양순이는 강아지를 구덩이에 처넣는 게 아닌가?
그리고 다시 다른 강아지를 물어다가 또 구덩이에 던졌다. 양순이가 구덩이에 던진 강아지들은 다른 강아지에 비해 비실하긴 했지만 아직은 살아 있었다. 쌓인 흙을 집어넣으면 강아지는 그대로 묻혀버릴 상황이다. 난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양순이는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다른 강아지를 물어 들었다. 저러다가 모든 강아지를 죽일 것 같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무리 말 잘 듣는 개도 새끼를 기를 때는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주인도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사래 치며 다가가는 나에게 양순이는 호의적으로 대했다. 만약 경계심을 품었다면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털을 세울 텐데, 그런 기미는 나타내지 않았다. 난 시선은 양순이를 경계하고 손은 구덩이를 더듬어 강아지를 꺼냈다. 이마에서 콧등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은 연신 푸석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날씨가 더운 탓만은 아니었다.
양순이가 새끼를 아홉 마리나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부대장은 무척 기뻐하셨다. 인사계 김 상사도 강아지를 팔면 모자라는 비품과 조촐하게나마 사병들 생일잔치도 할 수 있다며 흐뭇해하였다. 부대장은 강아지들을 잘 키우라고 나에게 번번이 일렀다.
교환실의 최 병장에게 양순이의 일을 얘기하니, 그는 양순이가 미쳤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개는 체질상 추위에는 강하지만 더위에는 약해서 여름을 나기가 힘들다는 거다. 그래서 더운 여름에는 혀를 축 늘어뜨리며 땀을 흘린다고 했다. 더욱이 개들은 새끼를 가지면 신경이 매우 예민해지는데, 날씨마저 이렇게 지랄이니 더위 먹어 돌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친개에게 물리면 약도 없다'라는 말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다음날에 가보니 양순이는 또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어제보다 갑절은 컸다. 아홉 마리 강아지가 다 들어갈 만한 구덩이다. 양순이는 날 보더니 무척이나 반겼다. 가까이 가기를 저어하는 나에게 어서 오라는 듯이 컹컹 짖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다가가서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배를 만져주었다. 강아지에게 물려서인지 젖꼭지가 오글쪼글했다. 물통에 시원한 물을 갈아주고 개집 주위에 물을 뿌려 더위를 식혀주었다. 햇볕이 가득한 양지를 바라보기만 해도 어지럼증이 일 정도이다. 코가 버썩 말라버린 강아지들은 가는 숨을 쉬며 퍼져있다.
양순이는 매우 불안한 듯 개집 주위를 서성거렸다. 끙끙거리는 모양이 똥을 쌀 것 같지만 뒤가 마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윽고 강아지들을 물어다가 구덩이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난 황급히 양순이를 밀쳤다. 안절부절못하는 양순이는 나의 제지에는 별다른 반항은 하지 않았다. 그저 불안한 두 눈을 굴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미 두 마리의 강아지는 쏠린 흙에 반쯤 묻혀있었다. 난 양순이를 윽박지르며 혼냈다.
다음날, 강아지 두 마리가 구덩이 안에서 죽어 있었다. 난 죽은 강아지를 치웠다. 양순이는 죽어버린 새끼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인다. 다음날에는 다섯 마리의 강아지가 죽었다. 그리고 비교적 건강했던 남은 두 마리도 사흘 후에 죽었다. 모두 죽고 말았다.
죽은 강아지들을 땅에 파묻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왜 강아지들은 죽었을까? 왜 양순이는 강아지들을 구덩이에 묻으려고 했을까?
그리 오래지 않아 난 양순이의 행동을 이해했다. 그리고 내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굴 속은 아무리 더운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양순이는 새끼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살리려고 몸부림쳤던 것이다. 더위에 기진맥진한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양순이는 구덩이를 파서 새끼들을 피신시키려 했던 것이다. 땅속은 그늘이 진 덕에 시원하기도 하고, 흙 틈새에 수분이 있어 더위를 가시게 한다. 부대장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다. 맘이 좋지 않았다. 부대장에게 꾸중을 들어서라기보다는 양순이를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었다.
앎이란 뭘까?
나는, 어설픈 알은체로 괜한 생명을 앗은 선무당일 뿐이다.
물끄러미 먼 곳을 바라보던 양순이는, 머뭇거리며 쪽문을 들어서는 날 보더니 한결같은 모양으로 알은체를 하며 반겼다. 난 양순이를 부둥켜안고 미안하다고 연신 중얼거렸다. 양순이는 꼬리를 흔들며 연거푸 내 볼을 핥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