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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Nov 17. 2019

선택과 포기

1년 간의 세계여행 기록 ⎪몽상가도 때로는 지구 나들이를 합니다.

  여행 214일 차, 2017년 11월 17일, 순례길 14일

  까미노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첫날보다 훨씬 추워진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일어나 하루를 준비했다. 침대에서 나서려 하는데 발목이 완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단은 약간의 고통을 무시하고 화장실로 가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면서 내 표정과 마주쳤다. 왠지 모르게 설렘이 많이 사라져 보였다. 그러면서 문득 3일 안에 이 길을 걸을 이유나 재미를 찾지 못하면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급작스러운 생각이라 곰곰이 그 생각을 뜯어보니, 발목을 다친 이후에 지연되는 시간과 소비되는 비용들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여왔던 것 같다. 전에는 그 스트레스가 그저 까미노를 걷는 과정 정도로만 묻어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친 발목이 금방 회복될 것이라 믿었던 것도 있다. 그러나 매일 써야 하는 발목은 그렇게 쉽게 낫지 않았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 길에 왔을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설렘이 사라진 걸까?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3일 동안 걸으며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보아야겠다.



  여행 215일 차, 2017년 11월 18일, 순례길 15일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오늘따라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까미노의 아침 해를 눈으로 마시며 걸음을 뗐다. 이제 막 뜬 해에 비친 나의 긴 그림자가 길가에 누웠다. 


  ‘다리가 저렇게 길었으면 성큼성큼 몇 걸음 안 걷고도 목적지에 도착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의 그림자는 그 긴 다리를 가지고도 멀리 가지 못하고 나를 졸졸 쫓아왔지만 말이다. 그때 내 그림자 뒤로 또 다른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고개를 돌리니 그 그림자의 주인은 바로 하와이에서 온 마리오라는 친구였다. 사실 친구라고 얘기하기에는 삼촌뻘이었지만 말이다. 마리오는 유쾌한 웃음으로 순례자들에게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Hey, Kim!”하며 내게 인사했다.


  문득 항상 밝은 그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마리오에게 궁금한 게 있다며, 왜 이 길을 걷는지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서는 자신에게 꿈이 하나 있었다고 했다. 꿈이라니? 갑자기 무슨 꿈을 말하는 것인지 몰라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당당한 표정으로 먼 풍경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꿈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안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마리오와 그의 아내는 화목한 가정을 목표로 각자의 일로 너무 바쁘게 지냈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 현실에 떠밀려 화목함을 잃었다고 했다. 더 구체적인 얘기를 물을 수는 없었지만, 결국 그는 그녀와 이혼했고 그것은 그의 아들에게 화목한 가정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했다.


  그는 그녀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 스스로에게 상처를 받았고 그 분노를 풀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지금 자신의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분노를 뱉어내고 있다고 했다. 항상 밝아 보였던 그의 내면에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그저 침묵을 지키며 걸음을 걸었다. 그는 까미노를 걸으며 그의 상태를 하나씩 하나씩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이곳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때였다. 마리오는 갑자기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보기 시작했다.


  “Wait, Where are we now?”


  언제나 보여야 할 순례길 조개나 노란 화살표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하다가 길을 잘못 든 모양이다. 우리는 서로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다. 7~8분을 다시 돌아가서야 멀리서 다른 순례자들이 걷고 있는 길을 볼 수 있었다. 마리오도 나도 그의 이야기에 꽤나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다. 멀리 순례자들이 이상한 곳에서 오는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나는 길을 잘못 들어도 웃을 수 있는 것을 배웠다. 이 길이 경주였다면 결코 웃지 못했을 일인데 말이다. 목표는 과연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일까. 최소한 마리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목적지에 깃발을 꽂는 것보다 한 걸음마다 분노를 태우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기에 말이다. 


  우리는 밭길을 가로질러 재빠르게 원래의 길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때 멀리서 “Wow!”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찾아 고개를 드니 길 옆의 먼 산에서 양 떼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마 이 동네 양들의 방목 시간이었나 보다. 나와 마리오도 갑자기 펼쳐진 흰색의 털 뭉치들의 장관에 “와우!”를 남발하며 빨려 들어가듯 원래의 길로 들어섰다.


  산티아고라는 목표를 향해 오늘도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우연히 마리오를 만났고, 그와 이야기하다 우연히 길을 잃었고, 그 길 반대에서 우연히 양 떼들이 쏟아졌다. 목표는 삶을 조금 더 생산적으로 만들고, 우연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저 나에게 맞는 목표와 우연의 비율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 비율을 내 취향대로 맞출 수 있는, 무엇이든 선택 가능한 하나의 인간이다.



  여행 216일 차, 2017년 11월 19일, 순례길 16일

  부르고스를 떠나 나왔다. 어제 와인바에서 차분하게 지금의 감정과 상황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번 순례길의 반인 400km까지만 걷기로 정했다. 포기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한 정체모를 남들의 시선이 겁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만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이 길에 큰 목표의식이 없었다. 그렇기에 계속 걷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 완주를 하는 것에 근거 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나를 위한 완주가 아니었다. 시작 전부터 순례길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결심을 하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 지금의 욕심의 맞는 완주는 어디쯤 일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이 길의 반 정도가 내게 가장 큰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다리를 다치지 않았다면, 혹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여행자였다면 목표치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10유로짜리 순례자 메뉴 조차 사치인 발목 다친 순례자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이 길의 목표를 지금의 나에 맞는 목표로 설정하기로. 예전에 친한 친구가 선택에 대해 한 말이 있다. 네가 그 선택을 했을 때 후련한 마음이 더 크면 그 선택은 잘한 것이라고 말이다. 완주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 속이 한결 후련하고 묘한 해방감마저 들었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이렇게 주체적으로 포기를 했었던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한 포기라는 것은 언제나 그 안에 나약함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나 나약함이 있고 어떤 선택에도 결함은 있다.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선택인지에 대한 중심에 명확히 내가 있느냐다. 누군가 나에게 삶에서 포기한 경험을 묻는다면 최초의 주도적인 포기로 까미노를 꼽지 않을까 싶다.


  여행 219일 차, 2017년 11월 22일, 순례길 19일

  까미노의 절반인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라는 마을에 가는 날이다. 어제 오랜만에 다시 김명중 아저씨를 만나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며칠 조금 쉬엄쉬엄 걸으셔서 오늘은 먼 걸음을 하실 거라고 했다. 나는 아저씨를 배웅하고 천천히 아침 준비를 해서 나왔다. 알베르게에서 몇 발자국 안 가 앞에 발렌티, 알렉시 그리고 소피아가 보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작은 카페에 들러 커피와 함께 빵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이 길을 출발한 지 어언 3주가 지나 계절은 어느덧 겨울의 옷을 입고 있었다. 대낮은 물론 아직 가을이지만, 아침저녁이면 겨울이 고개를 슬며시 들이민다. 친구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마지막 하루의 걸음을 슬슬 시작했다.


  길을 걷다 보면 처음에는 같이 걷더라도 언젠가 자연스럽게 각자의 속도에 맞게 흩어진다. 그러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다 보면 다시 만나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카페에서 같이 나와 걷다가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한 3km를 걸었을 때 즈음 한 작은 카페에 그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평소와 다르게 무언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길래 잠시 같이 앉아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알고 보니 그들 또한 이 길을 그만두고 돌아갈지 말지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번 까미노가 세 번째인 발렌티가 데려온 알렉시는 이 길에 생각보다 재미를 못 느끼는 눈치였다. 서양인하면 왠지 모르게 도시적인 이미지를 가졌던 나의 편견을 깬 의리 좋은 프랑스 시골 청년들. 그중에서도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알렉시 또한 나처럼 이 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동질감이 들었다. 결국 그들은 알렉시의 결정에 따라 곧장 버스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그들의 선택에 딱히 죄책감 따위는 없어 보였다. 사실 그게 당연한 건데 왜 나는 고민을 하면서 그러한 감정들을 느꼈을까? 잘 모르겠다.


  이렇게 갑자기, 까미노 내 가장 많이 보았던 친구들과 작별을 했다. 길 초반에 그들과 시간을 많이 소비했는지 길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걷는 길이 왠지 모르게 쓸쓸했다. 더군다나 오늘 길은 시골길이 아닌 큰 도로를 따라 직선으로 난 길이었다. 마침 이어폰까지 망가져 그 적막함을 그저 걸음에 태워 보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혼잣말이 너무나도 크게 들렸다. 조용히 20km를 걸어 이번 까미노의 최종 목적지인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먼저 도착한 순례자 친구들이 “Hey, Kim!”하며 인사를 건넨다. 이제 당분간은 느끼지 못할 이곳에서의 다정한 분위기를 밝은 미소와 함께 만끽했다. 


  처음에는 그 양기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혼자 있고 싶어도 많은 순례자들의 밝은 인사와 관심에 그러지 못하는 게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따뜻했고 그래서 결국엔 나 또한 조금은 따뜻해진 것 같다. 그들과 함께 이 길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지만 헤어짐도 길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뒤로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밤. 눈을 감고 이 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광활한 길 속에서 묵묵히 걷는 사람들의 뒷모습과 알베르게에서 맞이하는 따뜻한 웃음일 것이다. 언젠가 이 길을 완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를 기약하며, 다시 와야 할 이유를 머릿속에서 정리한 채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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