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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화반거의 아침

by 라프

2010년


나는 술을 참 좋아한다. 맥주를 사랑하고, 와인 향을 즐긴다. 어느 날 친구 둘과 집 근처 와인바에 갔다. 얼마 전 함께 했던 공연 얘기, 각자의 연애 이야기 등 신나게 수다를 떨다 보니 와인 1병씩을 마셨다. 엄청 취해 버렸다.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오는 5분의 기억이 사라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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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눈을 떴다. 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바닥은 차가웠고 으슬으슬 추위가 느껴졌다. 잠은 깼지만 눈을 뜨기 싫었다. 왠지 눈을 뜨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어제 분명히 집으로 왔는데, 내가 누워 있는 여기는 뭔가 평소와 다른 낯선 곳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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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눈을 뜨자 타일 바닥이 보인다.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보니 왼쪽에는 세면대 아래가 보였고, 오른쪽에는 변기가 있다. 화장실이었다. 배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은 화장실 문턱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 배를 중심으로 홀딱 벗겨진 상체는 화장실 바닥에, 하체는 거실 바닥에 있었다.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 '으~~' 신음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엄마가 말씀하신다.


"일어났니?"

"응. 엄마 나 왜 이러고 있어?"

"너 어제 와서 화장실에 토하고 있길래 씻겼는데 너무 무거워서 방으로 못 데려다 놨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엄마는 속이 쓰린 딸을 위해 북엇국을 끓여주었다. 너무 속이 쓰린 나머지 몇 숟가락 못 뜨고 출근했다. 회사로 가면서 아침에 눈 떴을 때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계속 생각나 혼자 피식 웃었다.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아니 오지 않았으면 하는 굴욕(?)적인 아침이다.


'정말 이제는 술을 적당히 마셔야겠구나'


하고 다짐하게 만든 이 날을 나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반화반거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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