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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넥스트 커리어 코치 Oct 20. 2022

술 마신 다음 날

2012년 초 겨울


변기를 부여잡고 위액을 쏟아낸다. 이런 아침을 맞이한 게 얼마만인지... 아침 내내 술이 깨지 않는다. 책 선물을 받으러 갔다가 셋이 와인을 5병 넘게 마셨다. 그렇게 마시고 집으로 오는 길에 다 쏟아버렸다.


멍하니 술이 덜 깬 채로 출근하는 길.

이런 날은 꼭 버스에 사람이 꽉 차서 앉을자리가 없다. 혹시나 일찍 내릴까 서 있으면 내 앞에 앉은 사람은 꼭 나와 같은 정류장에 내리거나 더 멀리 간다. 비몽사몽 간에 사무실에 도착해 임원을(공기업에서 임원 비서로 일할 때다) 맞이할 준비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구역질이 난다. 화장실로 달려갔으나 아침에 먹은 게 없어서 노란 위액만 쏟아냈다. 그렇게 두세 번 화장실을 갔다 오니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진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부사장님 비서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탕비실에 가서 잠을 좀 자라고 한다.


탕비실로 달려가 소파에 쭈그려 앉아 잠을 청한다. 하지만 오늘따라 전화는 또 왜 그리 많이 오는지, 쉴 수가 없다. 결국엔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점심시간에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었더니 술이 조금 깨는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사장님 덕분에 얻어먹게 된 햄버거로 2차 해장을 했다.

탕비실에 푹신한 돗자리를 깔아 놓고, 불을 끈 뒤 잠을 청한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회사 동료가 나를 깨운다. 밥 먹고 잠도 잤더니 다행히 심신이 개운하다.


가끔 이렇게 술이 술을 마시게 할 정도로 엄청나게 폭음을 할 때가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렇게 마시게 만드는 멤버들이 있을 뿐. 하지만 매번 폭음한 다음 날은 숙취에 괴로워하며 ‘술을 끊어야 하나?’라고 아주 잠깐 진지하게 고민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컨디션을 회복하면 괴로움은 까맣게 잊고 또 내 손에는 술잔이 들려 있다. 이렇게 단순하다. 아마도 내 머릿속에는 강력한 지우개가 들어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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