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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넥스트 커리어 코치 Oct 20. 2022

반화반거의 아침

2010년


나는 술을 참 좋아한다. 맥주를 사랑하고, 와인 향을 즐긴다. 어느 날 친구 둘과 집 근처 와인바에 갔다. 얼마 전 함께 했던 공연 얘기, 각자의 연애 이야기 등 신나게 수다를 떨다 보니 와인 1병씩을 마셨다. 엄청 취해 버렸다.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오는 5분의 기억이 사라질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다. 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바닥은 차가웠고 으슬으슬 추위가 느껴졌다. 잠은 깼지만 눈을 뜨기 싫었다. 왠지 눈을 뜨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어제 분명히 집으로 왔는데, 내가 누워 있는 여기는 뭔가 평소와 다른 낯선 곳의 느낌이었다.

천천히 눈을 뜨자 타일 바닥이 보인다.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보니 왼쪽에는 세면대 아래가 보였고, 오른쪽에는 변기가 있다. 화장실이었다. 배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은 화장실 문턱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 배를 중심으로 홀딱 벗겨진 상체는 화장실 바닥에, 하체는 거실 바닥에 있었다.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 '으~~' 신음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엄마가 말씀하신다.


"일어났니?"

"응. 엄마 나 왜 이러고 있어?"

"너 어제 와서 화장실에 토하고 있길래 씻겼는데 너무 무거워서 방으로 못 데려다 놨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엄마는 속이 쓰린 딸을 위해 북엇국을 끓여주었다. 너무 속이 쓰린 나머지 몇 숟가락 못 뜨고 출근했다. 회사로 가면서 아침에 눈 떴을 때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계속 생각나 혼자 피식 웃었다.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아니 오지 않았으면 하는 굴욕(?)적인 아침이다.


'정말 이제는 술을 적당히 마셔야겠구나'


하고 다짐하게 만든 이 날을 나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반화반거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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