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살던 서울과 달리 제주의 단독 주택 생활에서는 더 많은 생명들과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많은 생명들과 만나게 된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이름 모를 꽃과 식물들.
그리고 그 꽃과 식물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 나비, 거미 등의 곤충들.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 앞에 나타나 있던 지네 한 마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매일 새벽 그리고 하주 종일 종알거리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들.
온몸을 감싸듯 스치는 바람.
불교신자로서 살생을 최대한 피해보려고 하지만, 집 안에서 만나는 지네, 바퀴 등은 어쩔 수 없이 약을 뿌리고 생명을 빼앗게 된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도 느끼게 된다. 작년 9월 초에 와서 벌써 제주생활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무엇을 얻었나? 또 무엇이 변했나?'
생각해 본다. 40대가 되어서도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쫓기던 마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더불어 '해야 돼, 만들어야만 해'하는 강박의 마음 역시 좀 수그러들었다. 그저 물 흐르듯, 바람이 불고, 비바람이 모이면 비를 쏟아붓듯 자연의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 단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어제 대통령이 오송 참사, 이태원 참사 등의 유가족과 만나 이런말을 했다.
"이 사회가 생명보다 돈을 더 중시하고 안전보다는 비용을 먼저 생각하는 잘못된 풍토들이 있었기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생명보다 돈을, 안전보다 비용을. 대통령의 이 말을 듣고 과연 나는 이 '물질 만능주의'에서 자유로운가? 돈에 너무 묶여 있지는 않았던가? 하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마음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았다. 제주도에 올 때 마음의 가장 큰 걸림돌 역시 '돈'이었으니 말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돈보다 국민의 생명을 비용보다 국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면, 개인적 삶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어야 할까?
정체성인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고 싶은가? 이것이 분명해야 할 것 같다.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의 저자는 정체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정체성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다. 세계관, 자아상, 자신과 타인에 대한 판단 같은 것들이다. (중략) "나는 이런 것을 '원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
목표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독서가가 되는 것'이다.
목표는 '마라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목표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했던 의식하지 안 했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가 믿고 있는 대로 행동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일을 실행하기는 쉽다. 이미 스스로 그렇다고 믿고 있는 유형의 사람처럼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40대 이후,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너의 모습이 뭐야?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을 내릴 중요한 타이밍이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나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이제 막 시작했으니, 제주의 자연을 천천히 음미하며 하나씩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