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죽을 날을 미리 알게 된다면 생전 장례식을 하고 싶다. 아니 굳이 죽지 않더라도 어떤 적당한 때에 생전 장례식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영화 <첫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에서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 주인공 어머니는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남은 날을 함께 할 남편과 지인들을 불러 모아 '사전 장례식'을 치른다. 그리고 장례식의 주인공을 향해 참가자들이 추모사를 읊어준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한 주인공의 어머니는 생전 장례식을 마치 셰익스피어의 연극무대처럼 꾸몄다. 절대 주인공과 마주할 수 없는 장례식에 살아있는 주인공이라니 무척 신선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도 언젠가 나의 죽음을 가까이하게 된다면 진짜 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생전에 소중했던 사람들과 함께 사전 장례식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에 가면 망자에 대해 남은 자들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고, 정작 망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 있으니 말이다.
사고, 심장마비 등 갑작스러운 죽음을 제외하고 몸이 아프거나 하면 충분히 자신의 죽음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의 사전 장례식은 밝고 환한 공간에서 하면 좋을 것 같다. 오는 사람들에게 드레스 코드를 지정해 주고 싶다. 코드는 '레드'. 빨간 핀도 좋고, 빨간 영말, 빨간 입술 등 무엇이든 한 가지 포인트만 있으면 된다. 나는 평소 무채색을 주로 입는다. 밝은 색이라고 하면 흰색, 연한 핑크, 하늘색 정도의 옷만 입었다. 늘 무언가 강렬한 색의 옷이나 화려한 장식이 있는 것을 입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기 전 사전 장례식에서는 그런 옷을 한 번 입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과연 몇 명이나 초대할 수 있을까? 지금도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사람이 열 손가락을 안 될 정도인데 말이다. 몇 명 되지는 않지만, 평생을 두고 봤을 때 감사를 전해야 하는 사람들, 마지막 인사를 꼭 하고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초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모이면 한 명 한 명과의 추억,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그들을 다른 이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다.
힘들 때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그저 말없이 내 옆을 지켜준 사람들에게도 든든하게 힘이 되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도 있다.
축제와 같은 시간을 만들고 싶다. 누군가는 시를 읊어 주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또 누군가는 악기를 연주한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그들의 시간을 함께 조용히 즐겨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편에는 간단하지만 맛있는 음식과 마실거리를 준비한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로 만든 다양한 음식들, 그리고 그 음식과 어울리는 음료와 술.
오래간만에 본 사람들이 서로 담소를 나누고 나는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함께 수다를 떤다. 그리고 축제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가는 길에 작은 선물을 하나씩 드린다. 작지만 큰 마음을 담은 선물.
생전의 장례식을 상상하다 보니, 남은 생을 축제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스승님의 말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