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그동안 더워서 아침도 에어컨이 있는 큰방에서 먹었는데, 오늘은 주방에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문을 한 번 열어볼까?"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짝꿍은 늘 가서 문을 열어준다. 물론 한마디 던지면서 말이다.
"가서 문 열란 말이지?"
마당을 향해 있는 거실 창문과 세탁실과 창고로 향하는 문을 열어 두면 맞바람이 불어 시원할 때가 많다. 그래서 오늘은 오래간만에 문을 열어 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새끼 고양이와 아이들의 부모로 보이는 고양이가 놀라서 도망치고 있었다. 까만색에 점점이 치즈색 털이 나 있는 녀석이 덩치가 제일 큰데 아빠 또는 엄마로 보였다.
지난번에도 가족이 우르르 몰려와서 집에 있던 추르와 사료를 주었는데, 다음 날도 와서 밥을 내놓으라고 울어서 이틀 연속 줬다. 그런데 갑자기 몇 주간 아이들이 다 사라지고 집에 찾아오지도 않아서 궁금해하던 차였는데, 아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금방 밥 줄게~"
짝꿍은 냉장고에 넣어놓았던 사료, 캔 한 개, 고기 추르 등을 잔뜩 넣어서 고양이 가족들이 왔다 갔다 하는 담장 위에 올려 두었다. 아기 고양이들이 좋아할 만한 츄르도 몇 개 짜서 따로 놓아주었다.
우리가 들어오자 멀리 도망갔던 아기고양이들이 슬금슬금 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기 고양이를 위해 내놓은 츄르는 부모 고양이와 아기 치즈 고양이 한 마리가 와서 다 먹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우리도 아이들을 지켜보며 밥을 먹었다. 덩치가 큰 녀석은 계속 우리를 경계하며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짝꿍이 한 마디 했다.
"겨울에는 왠지 애들 집을 만들고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밥을 먹다가 고개를 들어 눈을 보며 말했다.
"집까지?"
"집은 좀 그런가? 그냥 지금처럼 밥만 줄까?"
"그러자."
사실 이 아이들의 진짜 어미로 보이는 아이가 한 마리 더 있는데, 맞은편 집에서 키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우리가 밥을 주자 어르신이 키우는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불편하게 하는 줄 알고 아이들에게 못 가게 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고양이들에게 못 가게 한다고 얘기를 하면 그 말을 듣고 진짜 안 올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우리 집에 다시 찾아 온 이 귀여운 고양이 가족에게 앞으로도 밥과 간식, 물을 제공할 생각이다. 친해지길 바래,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