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한 친구 7명이 있는데 그중 3명은 여느 대학생처럼 화장품과 명품에 관심이 많았고, 나머지 세 명은 적당한 관심을 가졌으며 나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모여서 화장품과 명품에 대한 폭풍 수다를 떨 때면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먼 산을 바라보곤 했다.
대학에 와서도 화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립스틱도 선물 받은 것이고, 내 돈 주고 산 건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화장에 왜 관심이 없냐고 묻는다면 나를 꾸미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고 답할 수 있겠다.
일찍 결혼한 친구 첫째의 돌잔치가 있던 날이었다. 때는 여름이었고 나는 까맣게 탄 얼굴로 조리를 신고 배낭을 맨 채 돌잔치에 갔다. 친하게 지낸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도 여름이어서 조리를 신고 간 기억이 난다. 흔히 사람들이 얘기하는 TPO(time, place, occation)에 맞는 옷차림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내 상황에 따라 내가 편한 대로 입고 다녔다.
30대가 되고 몇 년 전부터 행사가 있을 때는 가끔 화장을 했다. 화장이래봤자 눈썹을 그리고 쿠션과 립스틱을 바르는 정도지만 말이다. 대학 새내기 때 금발 머리가 해 보고 싶어 탈색했던 때를 제외하면 십여 년간 염색도 거의 안 했는데 지금 일하고 있는 헤어 잡지사에 온 뒤로는 '그래도 헤어 잡지사 직원인데…'하는 생각으로 요즘은 머리에는 신경을 좀 쓰는 편이다.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
보통 출근 시간에 화장을 한 시간가량 한다고 하던데 아침에 씻는데 5~10분, 기초화장품부터 선크림 그리고 비비크림 바르는 데 5분 그리고 머리 말리는 데 5분이면 그리고 옷 입는데 5분이면 준비가 끝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면 그만큼 더 여유가 생기게 된다. 저녁에는 화장 지우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피부 톤
내 피부의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회사에서 오랜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때문에 몰입해서 일을 하다 보면 얼굴이 모니터와 코를 맞댈 거리에 가 있게 되고 그렇게 상체가 다리와 90도보다 작아지면 저절로 고관절이 조여진다. 고관절이 조이고 있으면서 턱도 들려 있어 하체뿐만 아니라 목과 어깨 쪽도 순환이 잘 안된다. 그러고 있다가 화장실에 가서 내 얼굴을 보면 상기(기운이 아래에서 위로 미치는 것. 지나친 정서적 흥분이나 긴장에 의하여 심신의 활동이 흐트러져서 정신을 집중하거나 자기를 통제할 수 없게 된 상태) 돼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을 때가 있다. 반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너무 몰입하지 않고 적당히 페이스 조절을 잘 하면서 일을 할 때는 얼굴빛이 꽤 좋다. 회사에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내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것에도 노 메이크업이 도움이 많이 된다.
돈이 절약된다
워낙 화장품에 관심이 없다 보니 1년에 화장품을 사는 비용이 아주 적다. 오히려 요즘은 카메라나 노트북 등에 관심이 있어 그런 쪽으로 돈을 쓰긴 하지만.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 보지 않으려 해도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광고, 광고를 가장한 기사, 인플루언서들의 포스팅 등등등-의 화장품 광고에 현혹되지 않는다. 화장품에 있어서만은 불혹이 확실하다.
나의 외모가 아닌 다른 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얼굴을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더 화려하게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해서 화장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화장을 하지 않으면 이러한 고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겉모습이나 겉치장보다 내적인 성장에 좀 더 관심을 가졌기에 화장에 관심이 덜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학생 때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내면 탐구에 관심이 많았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24시간을 어디에 집중하고 어떤 고민을 하며 살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그리고 매 순간의 선택이 오늘의 나, 내일의 나 그리고 10년 뒤의 나를 결정한다. 영화 <나비효과>의 주인공이 어린 시절 한순간의 선택을 바꿀 때마다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졌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화장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