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썸을 제외하고 싱글 라이프 10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 지금의 연인을 만났다. 둘 다 공통분모로 알고 있던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찌릿'하고 눈이 맞았다. 사실 내가 이 사람의 페이스북 프로필을 보고 두근거렸던 이유는 '첫사랑과 닮아서'였다. 나중에 첫사랑의 생김새를 아는 사람들에게 얘기했을 때 '어디가 닮았지?'라는 반문이 돌아오긴 했지만.
어쨌든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 고등학교 2학년 내내 사랑했던 첫사랑과 고3 때 헤어졌고, 헤어지자고 했던 그 녀석 덕분에 나는 공부를 나름 열심히 했고 서울로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의지로 헤어졌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첫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은 대학 시절의 연애 활동을 방해하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의 비밀연애는 3달 정도 지속되다가 나의 일방적인 잠적으로 끊어졌고, 대학 3학년 때의 비밀 연애 역시 한 달을 채 가지 못했다. 첫 직장 선배의 소개로 만난 그 사람은 매우 마음에 들었으나 한 달여를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런 내게 한 친구는 '무성애자( 다른 사람에게 성적으로 이끌리지 않는 사람. 발기 부전 따위와 같은 육체적 성 기능의 문제나 성욕의 유무와는 관련이 없다)', '네가 내 주변에 제일 변태'라는 단어들을 던져대곤 했다.
사실 나 스스로도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고 친구 말대로 '끌리는 대상'이 쉽사리 나타나지 않다. 물론 때가 되면 한 번씩 끓는 냄비처럼 마음이 순간적으로 가는 사람이 나타나긴 했지만, 너무 쉽게 식어버렸던 것이다.
'그래 난 혼자 살래. 누구랑 살을 비비며 같이 사는 거? 으~~ 상상만 해도 너무 힘들어'
라며 스스로를 '비혼 주의자'로 정의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여느 때처럼 연애의 불씨를 '화르르' 타오르게 했던 것이 바로 그 사람이다. 공통된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누가 보든 말든 댓글 놀이를 하다가 서로의 포스팅에 가장 먼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겼고, 온라인에서 그렇게 한 달여를 지내다가 당시에 일하고 있던 카페에서 하는 행사에 그 사람이 뒤늦게 합류해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 사람의 모든 일정의 장소는 내가 일하고 있던 카페가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주 보았고, 거의 매일 얼굴을 봤다. 첫사랑을 제외하고 이렇게 매일 만나고 전화하는 사이가 없었기에 십여 년 만에 발생한 이런 상황이 몹시 당황스럽고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아… 이 상황에서 도망쳐야 해. 어떻게 도망가지?
하는 생각이 나를 끊임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행히 그때 제주도로 3달간 도망갈 수 있게 되었다. 제주도로 도망간 내게 '손수 만든 반찬들'을 커다란 박스에 넣어 보내주기 시작했다. 집과 동네 단골 카페를 주로 다니던 내게 그 사람이 오는 날은 제주 여행을 하는 날이 되었다. 서울에서는 매일 봐서 힘들었는데 제주에서 가끔 보는 거 그나마 괜찮았고, 오히려 마음의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제주에서 3개월의 방랑생활을 한 뒤에 다시 돌아온 서울. 제주에 가기 전에 그 사람을 따라갔던 절에서 운영하는 명상센터를 본격적으로 다니게 되었다. 홍대에 살고 있던 나는 명상센터가 있던 도봉에 주 3일씩 갔다. 새벽 명상반을 다니면서 어쩔 수 없이 수업 전날에는 명상센터 근처에 살던 그 사람의 집으로 갔다.
처음 2년간 그렇게 각자의 집을 두고 왔다 갔다 하며 지냈다. 3년 차에 접어들어 일자리에도 변화가 생겨 더 이상 홍대에 집이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고 이사 시기가 맞물리면서 집 하나를 정리하고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살림을 합쳐 함께 지낸 지 4년이 되었다. 결혼이란 제도권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서로의 가족도 다 알고 가족 행사에도 참여하며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의 부모님도 우리 엄마도 얼굴만 보면 '결혼하라'라는 말씀을 했지만, 이제는 양쪽 집에서도 '거의 포기한 듯?' 보인다.
결혼이 뭐갸 중요하냐. 둘이 좋으면 됐지.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나 할까.
7년 전에는 둘이라는 게 너무 어색해 끊임없이 도망치려 했는데, 지금은 어느새 둘이 있는 상황이 익숙해져 버려 간혹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색할 정도다. 7년간 다툼이 없었냐고 묻는다면 '많았다'라고 답할 것이고, 가장 좋은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지금'이라고 답하고 싶다.
처음에는 나도 그 사람도 지금과 많이 달랐다. 특히 나는 그랬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홍대에 살던 밤이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나를 애인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카페 행사로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 12시가 다 되어 가던 시간이었는데. 집에 도착해 뭐가 서러운지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는 나를 그는 말없이 안아주고 토닥여줬다. 처음 1~2년간은 감정의 기복이 심했고 그러한 변화를 끊임없이 표출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연인은 다 받아주었다.
명상요가 커플인 우리는 지난 7년간 함께 살면서 계속 수련을 해 왔다. 특히 집까지 합치게 되면서 명상센터를 운영하던 절에서 새벽 4시 30분에 시작하는 예불에 거의 매일 참석했다. 예불이 끝나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출근을 했다. 퇴근 후에는 저녁 예불에 참석하고 마지막 명상요가 수업을 들었다.
7년 중에 3년을 '수행'에 많은 비중을 두는 삶을 살았다. 그 3년의 시간 동안 수련하고 끊임없는 명상 지도를 받으면서 '마음'을 닦을 수 있었고 내가 가진 감정의 기복은 처음에 비하면 굉장히 많이 줄어들었다. 대체로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수행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절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옮겨 가면서 예전보다는 좀 더 속세에 찌든(?)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7년 전보다 지금이 덜 싸우고,
지금이 더 행복하고,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어제 7년 연애한 윤계상과 이하늬 커플의 결별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심정을 내보였다. 기사 일부에는 '나이도 많은데 결혼도 하지 않고 연애를 너무 오래 했다', '이혼하는 것보다 낫다', '이제라도 결혼하고 잘 살길..' 등등의 댓글이 달렸다.
결혼의 유무와 상관없이 많은 커플이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정말 사랑해서 매일 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결혼하기도 하고, 남들이 하니까 '숙제처럼'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주변의 수많은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연애'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남들처럼 결혼하고 싶지만 법적으로 커플이 될 수 없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사랑하는 사이'를 유지하는 데 '결혼'이 필수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며 사는 데 있어 '어떤 삶의 형태'를 살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선택한 이들의 몫이다.
'결혼하지 않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는 다양한 우려를 표현한다.
나 봐라. 나이 들어 아프면 너네 같은 자식들이라도 있지. 너희는 나이 들어 둘 다 아프면 어떻게 할래?
분명 맞는 말이다.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나는 비혼 주의자이다'라고 선언하지 않았지만 비혼의 삶을 살고 있는 많은 독신 인구 중에 '고독사'하는 경우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비혼을 선택한 이들이 '고독사'를 걱정하고 방지하기 위해 강조하는 것 역시 '공동체' 혹은 결혼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울타리와 같은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내 연인은 '수행'에 뜻을 둔 커뮤니티 안에 속해 있으며,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다.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에
개인의 삶이 근대에 와서 “인류 전체를 지배하는 삶의 흐름 속에 완전히 잠겨버렸”으며 아직 남아 있는 능동적인 개인적 결단의 가능성은 오직 더 잘 “기능”할 수 있도록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는 문구가 나온다. 각 나라마다 다양성을 수용하는 범위가 다르지만, 그 속에서 각 사회의 구성원의 암묵적 사회적 요구나 수용의 한계도 존재한다. 문제는 그 수용의 한계 밖에 있는 삶을 선택했을 때 멸시와 괄시 그리고 무언의 압박은 온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게 함께 사는 것'은 어쩌면 수용의 한계 밖에 있는 것이다. 지금의 삶을 유지하게 되면서 '이 삶에 대해 태클걸지 않고 수용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남아 있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결혼을 약속했다가 코로나로 인해 미뤄졌는데 그 사이에 파혼하는 커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현상의 이유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래서 '결혼을 모를 때 빨리해버려야 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결혼했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참고 견디면서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괴로운 삶을 살기보다는 고통의 고리를 끊고 행복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