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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와 Jan 10. 2022

수면오염

13장 아이패드, 공장 사이렌, 밤술

L은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 하긴 모든 사람들은 유한한 삶을 살고 있고, 죽음으로 향하는 시간 앞에선 다들 똑같을 수 있지만, L의 속도는 제한속도를 훌쩍 넘겨 달리는 자동차만큼이나 빠르다. 


L의 사향(死向)길이 처음부터 고속도로는 아니었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구입한 기기, 그리고 변화된 생활 습관이 그 길을 만들었다. 2009년이었던가? 처음에 이 기기는 혁신의 대명사였다. 작은 손 안에서 세계와 연결되어 정보를 수집하고 소통을 할 수 있다니…


문제는 이 작은 기기에 중독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L은 자신의 굳은 의지력을 믿었지만 그건 헛된 다짐이었다. L이 위기를 느낀 것은 시력 저하를 인지하면서부터다. 쉽게 볼 수 있던 글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건강에 자신 있었던 L에겐 치명적이었다. L은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원인을 분석하니 자는 것, 먹는 것, 움직이는 것 등이 모두 안 좋았다. 총체적 난국이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고치기 어려운 것은 자는 습관이었다. 수면오염이라 이름을 붙이고 이를 해결하기로 했다. 


‘당장 스마트폰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열심히 다짐해봐야 공허한 메아리로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그럼 무엇을 변화시켜야 수면오염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 집 현관에 스마트폰 수거함을 만들어 비치할 것이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는 순간 스마트폰은 수거함에 두고 다음 날 출근할 때까지 꺼내지 않을 것이다. 통화를 뺀 모든 알람은 무음으로 할 것이다. 가족이야 밤 중에 전화해도 상관 없고, 정말 긴급하면 두어 번 이상 전화를 할 테니까 통화 알림만 있으면 된다.’ 


‘냉장고에 맥주를 포함한 간식거리를 모두 없앨 것이다. 무조건 없애야 하는 것은 청양고추와 반건조 오징어다. 가볍게 안주로 시작하는 청마(청양고추+마요네즈+간장)와 반건조 오징어가 어느 순간 한 끼 이상의 식사로 변하기 때문이다.’


‘아이패드, TV, 이게 또 계륵이다. 팔자니 아쉽고 갖고 있자니 내 약한 의지력을 계속 무너뜨릴 것 같다. 메이플스토리에서 만렙을 찍은 케릭터 삭제와 비교하면 뭐가 더 쉬울까? 그동안 브런치에 글 올린 것을 삭제하는 것과 아이패드를 없애는 것,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뭘 고를까? 스마트폰에서 유튜브, 넷플릭스, 웹툰 등을 지우는 건 일도 아니겠지? 계속 잡념이 생기는 것을 보니 쉽지 않을 듯 하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책 속 내용

길어진 통근 시간과 늦은 밤의 텔레비전 시청과 디지털 기기 이용에 따른 <수면 지체> -우리 자신 및 자녀의 수면 시간 중 앞과 뒤를 잘라먹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잘 자는지에 대강한 영향을 미친 핵심 요인이 5가지 있다. (1)LED 조명을 비롯하여 계속 켜져 있는 전등, (2)조절되는 실내 온도, (3)카페인(2장에서 논의했다), (4)알코올, (5)천공 타임카드의 유산이다. 많은 이들에게 스스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사회적으로 가공된 힘들이다.

- 끝 -  

https://brunch.co.kr/@seigniter/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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