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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Feb 11. 2024

프롤로그 - 취준생 클릭 금지

이건 모두 나를 위한 이야기

얼마 전.

문득 다시 에세이가 쓰고 싶어 졌습니다. 브런치를 쉬는 동안, 소설만 쓰던 저에게는 정말 뜬금없는 욕구였습니다. 하지만 쓰고 있는 소설이 있어서, 또 일을 늘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뜬금없는 욕구는 그냥 무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가슴에 탁 걸리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작가님들에게는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있다던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있다던데, 이게 그 느낌인가 싶었습니다. 무언가 내뱉지 않으면 안 될 이야기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 무슨 이야기가 나를 이렇게 괴롭히나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더군요. 오랫동안 가슴에 쌓아만 두고,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묻어둘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개발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개발을 하고 싶지 않아서, 작년에 퇴사했는데요. 구태여 이 이야기를 쓰지 않은 것은 뻔한 퇴사 이야기이기도 하고, 개발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의욕을 꺾는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진지하게 개발에 인생을 투자하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직장과 연봉을 마다하면서까지 개발에서 돌아섰지만, 처음 개발자가 되었을 때만큼은 개발에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니 열정이 꺾였던 경험이 마음속에서 쉬이 지워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개발을 못할 것 같다는 좌절도, 개발 문화에 대한 실망도 생각보다 제법 큰 상처였나 봅니다. 그러니 그 감정들이 제 마음에 남은 채, 억지로 묵혀둔 이야기를 글로 꺼내라고 성화를 부렸던 거겠죠.



이건 모두 나를 위한 이야기

그러니 이 이야기는 모두 제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이야기입니다. 열정을 다 바친 20대, 그리고 30대 초반을 지나 삶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감히 말하건대 훌륭한 개발자, 좋은 개발자가 되는 건 그 시절 저의 꿈이었습니다. 엎어진 꿈이 비록 헛된 꿈이었다 해도, 소중한 꿈이었기에 가끔 그것을 잃어버린 상처가 심하게 아파옵니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소중한 꿈이었다는 거겠죠. 그 꿈을 꾸었던 시간 역시 인생의 소중한 한 조각입니다. 그러니 가끔 돌이켜 보며 안타깝게 여기는 것 역시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브런치북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이렇게 저를 치유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현업 개발자 분들이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분들이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제가 그랬던 것처럼 개발자로서 소중한 꿈을 꾸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제가 개발에 실망하고 돌아선 이야기가 그들의 열정을 폄하하거나, 잘못되었다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 이야기가 저 자신을 치료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면, 열정을 잃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개발을 하다 지친 개발자뿐만 아니라, 한 때의 꿈을 접고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가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꿈을 접는 것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도일 뿐입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돌아선 것은, 결코 인생에서 실패한 것이 아니고, 도망친 것도 아닙니다. 어딘가에 직장에서 실망하고 인생을 잃은 것처럼 괴로워하는 분이 계신다면, 절대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브런치북은 개발을 하면서 느꼈던 회의감이나 좌절, 실망뿐만 아니라, 개발을 그만둔 이후에 바라본 세상과 더 소중한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게 저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제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그게 저와 같은 경험을 한 분께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개발자 취업준비를 하시는 분이 읽으신다면

의욕을 잃게 되셔도 책임 안 집니다(...)

저는 미리 경고했어요(...)


어쩌면 이 글을 읽으신 취준생 분이 훌륭한 개발자가 되셔서, 제가 겪었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시고, 다른 개발자 분들과 토론을 하면서 더 나은 개발 문화를 만드실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글이 여러분의 꿈과 환상을 깨뜨릴까 봐 무섭습니다.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는 분이 괜히 제 글을 읽고 의욕을 잃을 것 같기도 하고요. 게다가 제가 겪은 건, 개발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한정된 제 경험만 가지고 더 나은 환경에 가실 수 있는 분이 미리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끄러운 기록이지만

어쩌면 실패하고 도망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어요. 지금도 문득 더 잘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곤 하니까요. 현업 개발자 분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이야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부끄러운 일이라도 모두 진실이었고, 열정이자 상처였기에 계속 써보려 합니다. 몇 년 후에 다시 이 글을 읽고 창피해할지도 모르겠지만, 편협한 생각이라며 수치스러워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마음에 맺혀 있는 이야기를 털어내고 싶습니다.


다음 연재글에서는 10년 차 개발자가 퇴사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저는 10년을 꽉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는데요, 참 긴 시간이라면 긴 시간 버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찌 보면 또 짧은 시간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퇴사하는 날 오만 감정이 교차했던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일찍 나가떨어져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른 일 알아보았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경력이 아까워서라도 오래 붙어있던지. 물론, 애매한 연차에 퇴사한 건, 그럴 만한 사정이 있기도 했고 더 있을 수 없을 만큼 제 마음이 많이 꺾여 있기도 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습니다.


긴 프롤로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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