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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Feb 18. 2024

10년을 채우지 못했다

버틸 만큼 버텼지만, 이제는 분명히 아니라서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는단다.

그 소식을 듣고 직감했던 것 같다. 이제 개발자를 그만둘 때가 왔다는 것을. 다른 동료들은 불안감을 토로하며, 적극적으로 이직처를 찾거나 회사에 남아있을 방법을 강구하는 등 부지런히 무언가에 매진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미적지근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된 김에 개발자를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개발을 계속할 것인가. 그렇게 멀건히 멈춰 선 채로, 이미 뚜렷해진 직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민했다.


의외로 나는 생계를 위해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개발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1-2년이 지났건만, 현실적으로는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놓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코딩 테스트를 보고 면접도 들어갔다. 그렇게 면접을 준비하면서, 때로는 면접장에 들어가서 깨달았다. 이제 정말 못하겠다는 것을. 있지도 않은 열정을 꾸며내는 건, 진짜 못할 짓이었다.


돌이켜보면, 면접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부족한 점을 알고 있어도 채워 넣기가 싫었다. 내심 면접에 다 떨어져서 개발을 그만둘 핑계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할 거면 화끈하게 하거나, 하기 싫으면 쿨하게 그만두면 될 것을, 왜 이리 구질구질하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면접에 들어가서 "개발자로서 목표가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내 삶의 목표에 개발이 없는데'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긴 하다. 정말이지 답 없는 지원자였다.


그러다 결국, 면접 하나를 남겨놓고 포기했다. 도저히 이 짓을 계속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개발을 하는 나는 불행했고, 면접장에서 불행을 열정으로 포장할 배짱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면접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직을 포기하고 회사에 남아있는 게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이미 희망퇴직 했거나 이직한 사람들이 많아서 떠난 이들의 업무를 다 떠안아야 했다. 그것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고 싶지 않은 개발 업무를 과도하게 떠안으면서, 내 인생을 허비해야 했으니까. 결국 나는 이직을 포기한 채, 희망퇴직을 선택했다.



10년, 아깝긴 해도 나는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경력의 만 10년을 채우지 못했다. "조금만 더 하면 10년을 채울 수 있는데, 좋은 경력 다 날리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개발자로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경력인데, 이 경력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건, 제법 아까운 일이었다. 이제 와서 다른 업계에서 10년 가까운 경력을 쌓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지난 10년이 아깝다고, 앞으로 있을 10년을 갖다 버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10년 뒤에도 내가 코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했으니, 나는 나를 위해서라도 이제 지난 10년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10년을 꽉 채울 생각은 치워버리고, 과감하게 희망퇴직을 선택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인 건 분명했다. 나는 그 힘들다는 금융권 개발자도 아니었고, 어디에 납품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개발자도 아니었다. 남들이 좋다고 인정하는 개발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연봉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복지도 좋았다. 워라밸은···들쭉날쭉 했다고 해두자. 그렇다고 회사에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회사 이름으로만 따지면 개발을 영원히 그만두기에는 아쉬운 직장이기는 했다. 적어도 이직할 때, 서류는 충분히 통과할만한 그런 회사였으니까.


아쉬운 건 많았지만, 아무리 외부적인 조건이 좋아도 한계였다. 나에게 있어서 개발은 이제 참고 일할 수 있을만한 것조차 되지 못했다. 한때는 개발만 하다가 늙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개발하는 일이 사악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되도록 멀리하고, 가능하다면 남은 인생에 개발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짧게 표현하자면, 나는 개발에 진저리가 났다. 10년을 채우지 못한 경력, 여기까지가 내 한계였다.



그냥 돈 벌러 다닌다던 동료의 웃음

퇴사를 앞둔 무렵에 회식을 했다.

2-6년 차 되는 동료 A(특정되는 일이 없도록 연차를 좀 넓게 잡았다)가 개발이 예전처럼 재미있지 않다고 했다. 전에는 개발이 너무 재미있어서 강의도 듣고, 토이 프로젝트(재미로 하는 프로젝트)도 하고, 설계 관련 책도 읽었는데 요즘은 도저히 그럴 기분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동료 B는 진지하게 상담을 해주었다. 이제 어느 정도 실력이 쌓여서 그럴 수도 있다고도 했고, 업무로 하는 일 중에 흥미로운 문제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도 했던 것 같다. 정확히 그 해결책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 오는 길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인 동료 C와 함께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그러면서 A가 개발이 예전처럼 재미있지 않다고 했던 그 대화를 상기했다.


"개발이 계속 재미있을 수가 있나요?"


C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하며, 솔직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이제 돈 벌려고 하는데."


그 말에 나는 C를 따라 쓰게 웃었다. C도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서. 아닌 게 아니라, C는 우수한 개발자였다.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도입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냈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해결한 문제가 여럿 있었다. 게다가 다른 동료들과 함께 토이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했고, 결국 그 프로젝트를 업무에 적용시켜 성과도 많이 올린 동료였다. 소위 말하는 훌륭한 개발자가 바로 C였다. 그런 C조차 개발이 계속 재미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경력을 막 시작한 개발자들은, 개발에 흥미를 잃었을 때 죄책감을 느낀다. 진정한 개발자라면 밤낮없이 열정적으로 코딩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된다. 밤낮없이 일하는 건 사실 열정페이이고,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밤낮없이 개발만 해야 하는 환경은 건강한 환경이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수면과 운동, 제대로 된 보상이 전제되어야 개발을 해도 오래 할 수 있고, 즐겁게 할 수 있다. 사실 개발만 그런 건 아니다. 건강한 삶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이자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C가 말한 대로 개발 자체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건강한 삶을 유지해도, 개발에 흥미를 잃을 수 있다.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분명히 안다.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개발자는 행복한 사람이고, 행복해야만 한다는 믿음이 지나치게 개발을 이상화한 게 아니었을까. 물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지만, 삶이 행복한 이유가 "개발" 단 하나밖에 없다면, 그것도 바람직한 삶은 아닐 것이다. 다음 연재글에서는 개발자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리고 그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지 어떤지는 읽어보시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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