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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Mar 31. 2024

이제 코딩을 못하겠어요

나는 코딩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긴 휴직 후 회사에 복귀했다.

살인적인 프로젝트 이후 동료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대부분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다. 나만 떠나가지 못한 채 그렇게 프로젝트의 찌꺼기들을 살펴보았다. 프로젝트의 성공은 사람을 갈아 넣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잘 짜인 계획, 리스크 관리 등이 잘 되어야 프로젝트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해보았자, 공염불에 불과했다. 이미 떠날 사람들은 떠났고, 남아있는 건 나와 어딘가 IDC에 저장되어 있는 처량한 코드뿐이었다.


불경기가 시작되었다. 코로나의 호황은 지나가고, IT 업계는 침체되었다. 그 와중에 회사는 휘청거렸다. 내가 몸담은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회사의 중요했던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모두 실패했다. 일개 개발자가 제아무리 잘해보려 애써도, 높으신 분의 잘못된 결정 몇 개면 회사는 충분히 출렁거릴 수 있었다. 직접 그걸 눈으로 보고 나니, 최고의 선택은 역시 이직이었다. 회사가 바뀌지 않는다면, 개발자가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떡하나. 복귀한 나는 코드를 보고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그렇게 무감하게 코드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읽을 줄 아는 코드이니 몇 자 추가하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설계 회의에 들어가서도 그저 멍하니 지켜보다 나오는 게 전부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설계도 코딩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이직을 할 수가 없었다.



코딩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었을까

코딩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누가 그렇게 묻는다면, 지금도 사실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구글 검색, 우버, 아마존 등 코딩은 세상의 풍경을 바꾸었다. AI도 코딩이 없으면 사실 존재하지 못하지 않을까. 코딩은 정말로 많은 것을 바꾸었고, 그야말로 혁신을 일구어낸 중요한 노동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렇게 멋진 일을 할 수 있는 건, 소수의 행운아들 뿐인 것 같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멋진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조직을 잘 만나는 행운이 필요한 건 아닐까. 하다못해 차고에서 엄청난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을 만큼, 차고라는 걸 가질 수 있는 든든한 사회적 배경과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개방적인 문화를 타고나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그렇게 멋진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실력은 없었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내기는커녕, 당장 지시받은 일을 처리하기에 바쁜 직장인이었다. 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스타트업을 차렸어야 했나. 차라리 그 편이 살아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나는 코딩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그저 많이 아팠다가 복귀한 개발자였다. 내게 남겨진 검은 화면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을 하나 깨닫게 해 주었다. 아, 나는 더 이상 개발을 할 수 없구나. 그런 직감이 왔다. 나는 세상에 기여하기는커녕, 코딩으로 내 밥벌이도 못하겠다는 느낌이 왔다.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고, 억지로 꾸역꾸역 개발을 할수록 회의감만 점점 짙어졌다. 새로운 기술을 따라가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잘해보려는 의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아무 보람도 없이 그저 임원을 만족시키는 일로 느껴졌다. 시시포스의 형벌 마냥,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었다.


더 안 좋은 건 이직을 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이 일이 반복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학습된 무기력일지도 모르겠지만, 창의적인 활동은커녕, 기계적으로 윗사람의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꾸역꾸역 코딩을 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이제 더 나은 개발자가 되려고 아등바등 자기 계발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더 고생한 노예가 될 뿐인데, 무엇하러 자기 계발을 하겠는가. 열심히 실력을 올려도 윗사람의 말 한마디에 삽질만 반복할 텐데, 무엇하러 실력을 올리겠는가. 어디를 가도, 나는 일개 개발자일 뿐이고, 그저 명령 아닌 명령을 따르며 일하게 될 텐데.


월급이 들어오는 걸 보며 비참한 기분을 느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 내가 이걸 받으려고 이렇게까지 일했구나. 한 달을 이렇게 버티려고 이렇게까지 일했구나. 나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삶에도 회의감이 든다. 가끔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혔다는 생각에, 극단적 선택을 한 개발자들의 심정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몸을 던진 이유가 어쩐지 손에 닿을 듯 가까이 그려졌다. 그럴수록 더더욱 코딩을 할 수가 없었다. 검은 화면에 살아 움직이는 알록달록한 글자들이, 세상을 바꾼 창의적인 도구가 아니라 멀쩡한 사람을 가둔, 원망스러운 문제 덩어리로 보였다. 작은 문제조차 해결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고, 오히려 나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빠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안녕, 코딩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락으로 떨어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회사 역시 크게 기울었다. 결국 회사가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했을 때, 나는 손을 들었다. 희망퇴직을 결심하긴 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직 시도를 했다. 그러나 열정이 사그라든 지원자를 뽑는 회사는 없었다. 면접에 떨어지면서 깨달았다. 이제 정말로 코딩은 못 하겠구나. 생계가 걸려있는데도, 거짓 웃음을 짓지 못하다니 나는 이제 이 업계에서 버틸 수가 없구나. 이 회의감을 안고는 도저히 개발자로 일할 수 없겠구나. 결국 나는 마지막 면접 하나를 포기하고, 이 업계를 떠날 결심을 했다.


나이는 많아졌으니, 이제 와서 다른 업계에서 새로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막막한 내게 남은 건, 희망퇴직 위로금과 퇴직금뿐이었다. 제법 많은 돈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그 상황에서도 안도했던 것 같다. 이제 영혼을 갉아먹는 코딩을 할 필요가 없구나.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코딩은 하지 않겠구나. 나라는 개발자는 이제 없는 거구나. 그렇게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채, 퇴사했다.


나는 그렇게 개발자를 그만두었다.

참 별 것 아닌 이야기 같다. 엄청나게 뛰어나지는 못해도, 그래도 밥벌이는 할 정도인 개발자가 엄한 임원을 만나서 개발을 그만두고만 이야기. 그리 거창하지도 않고, 어쩌면 겁쟁이에 나약하기만 한 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개발이라는 멋진 세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이야기의 교훈이랄까. 화려함 뒤에는 그림자가 있다는 게 억지 교훈이라면 억지 교훈이랄까. 이미 다 지난 이야기라서 이렇게 활자로 적고 보니 허탈할 뿐이다.


누군가는 겨우 이런 일로 개발을 그만두다니, 나약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생계를 때려치운 나를 어리석다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개발자의 세계에 있고 싶지 않았다. 분명 멋진 세계이긴 하지만, 기만적인 세계,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야근과 자기 계발에 미치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 평등하고 민주적일 것 같지만, 결국 높은 사람은 따로 있는 세계. 내 눈에 비친 개발자의 세계는 참 요지경 같았다.


그렇다고 나는 현직 개발자들을 모두 나쁜 사람이라고 매도하는 건 아니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들 마음속에도 동경하는 이상이 있다는 걸 안다. 직급이 없는, 정말로 평등한 회사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복잡한 문제를 파고들어 끊임없이 집중해 해결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멋진 서비스를 만들어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 이상대로 될 수 있다면, 코딩은 멋진 행위니까.


신기하게도 이 글을 쓰기 전에,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오래전, 함께 일했던 개발자들이 꿈에 나왔다. 그때처럼 즐겁게 의견을 말하고, 재미있게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무언가 실행되는 걸 보고 너무나 즐거워하는 꿈이었다. 실제로도 함께 해커톤을 하고, 이것저것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멋지고 훌륭한 개발자들이었다. 아무래도 그때 함께 했던 기억이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이제 그 기억은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거라는 사실이 새삼 슬펐다. 참 좋았던 시절이었는데. 내게도 그렇게 열정적인 시절이 있었는데. 하지만 이제는 결국 꿈으로 놔두고 씁쓸하게 돌아서고 만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개발자가 아니니까.


지금은 퇴사 후 반년이 넘었다. 집에 틀어박혀서 종일 글만 쓰며 지내고 있어서, 동료들의 소식은 거의 듣지 못했다. 그래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종종 그리울 때가 있다. 다음 화에서는 아직 현업에서 일하고 있을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보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현업 개발자들이 계신다면, 드리고 싶은 말도 있다. 부디 그들이 나처럼 코딩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몇 마디 적어보려 한다. 


언제나처럼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는 모든 독자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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