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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Apr 21. 2024

개발자가 아닌 세상

세상의 속도가 아닌 나의 속도로 걷기

이제 나는 개발자가 아니다.

퇴사하고 제법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개발은 하고 있지 않다. 개발 도구만 보아도 진저리가 나는 바람에 코딩은 단 한 줄도 하지 않았다. 아마 내 개발 실력은 착실히 퇴행하고 있을 것이다. 이래도 되나 싶은 불안감이 들 때도 있지만, 역시 다시 코딩을 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미래의 어느 날에는 개발에 대한 상처를 씻어내고 다시 코딩을 하게 될까? 아니면 돈이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코딩을 하게 될까. 지금의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지금의 내가 결정한 대로, 글을 써나갈 수밖에.


판교를 벗어나 글을 쓰기 시작하니, 이건 이것대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한지라 IT 업계 바깥세상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최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새로운 방법론과 빠른 유행에 젖어 살았던 IT 업계의 바깥은 조용하고 더디게 변했다. 신기술을 추앙하는 개발자들이 보면, 기함을 할 만한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낯선 세계는 오히려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게 빠르게 변할 필요 없다고 토닥여주는 것 같은 이 느린 분위기가 내게는 위로처럼 다가왔다. 차분하게, 그저 일의 본질을 익히기만 하면 되는 이 속도가 내게는 너무 적합했다.



오, 한글이라니

공모전에 단편 소설을 하나 제출해 보았다. 그런데 원고 양식이 hwp였다. 신기술로 무장한 판교의 개발자였던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한글을 써야 하다니. 구글 독스도 아니고 한글이라니! 간편한 UI에 자동 저장, 공유 기능도 좋은 소프트웨어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한글을 쓰는 곳이 있다니. 개발자들에게 한글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문서 작업을 해도 위키나 노션 등을 사용하는 게 보통이다. 일일이 파일을 만들어서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건, 너무나 오래된 기술처럼 느껴진다. 파일로 만들어 전달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내용을 새로 갱신할 때마다 또 새로운 파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니까. 모두가 같은 페이지를 공유하며 변경 사항을 즉시 볼 수 있는 구글 독스, 노션, 위키 등을 생각해 보면 정말 구시대의 기술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많은 개발자들이 맥북을 사용한다. 나 역시도 맥북 사용자다. 맥북에서 한글을 쓰는 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 같았다. 본래 윈도우즈 기반으로 만들어진 한글이 Mac 환경을 잘 지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요즘 Mac 환경에도 관대해진 MS Docs를 쓰는 게 더 매끄럽지 않을까. 그런데 어떡한다. 한국에서 글을 쓰는 이상, 한글을 피할 수는 없는데. 결국 나는 한글을 구독하기로 했다. 개발자의 세상과 실제 세상의 IT 격차가 제법 크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출판사에 투고도 했다. 당연하지만 이메일로.

대체 몇 년 만에 이메일을 쓰는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업무를 할 때는 전혀 이메일을 쓰지 않았으니까. 슬랙처럼 각종 좋은 업무툴이 있으니, 이메일을 쓸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메일은 가끔 비워줘야 하는 천덕꾸러기가 된 지 오래였다. 나중에는 비우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서 그냥 쌓이는 대로 내버려 둘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이메일로 일을 하는 게 생소하면서도 신기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타자기를 두드려 보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과 일을 할 때는 이메일만 한 게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 참 네이버 메일이 2000년이 시작되기도 전에 생겼던데,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걸 보니 이메일이 대단하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계약한 출판사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이메일에 한글 파일을 첨부해서 원고를 전달하고 한글로 교정도 본다. 가끔 MacOS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한글이 안 켜질까 봐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긴 하지만. 전직 개발자라서 업데이트 버전은 잘 확인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랄까. 그래도 나름대로 적응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기술들을 지워버리고 나니, 무언가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창작 외에 다른 정보를 굳이 머릿속에 넣을 필요가 없으니, 창작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새로운 무언가에 빨리 적응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자, 나는 자유를 느꼈다. 빠른 변화의 물살을 따라잡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지난날들에서 벗어나, 내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는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



흘러가는 것을 쫓는 것보다는

물론 모든 작업을 구시대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한글처럼 불안정한 소프트웨어에서 오래 작업을 하는 건 비효율적이니까. 게다가 자동 저장도 되지 않고, 다른 기기에서 작업을 이어하기도 불편하니 글을 쓸 때는 다른 소프트웨어를 쓰기로 했다. 지금은 율리시스(Ulysses) 앱을 설치해 자동 저장도 하고, 가끔 폰에서도 작업을 이어서 하고 있다. 맥 환경에서 이상 동작하는 일도 없어서 만족스럽게 쓰고 있다. 나중에 출판사에 보낼 때, 한글로 다시 편집해야 하는 불편함이 크다는 게 단점이랄까. 이래저래 방법을 생각해 보아도, 한글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글쓰기 방식에 한 번 정착하고 나니, 다른 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가끔 작가 커뮤니티에서 뭐가 좋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긴 하지만, 굳이 불편하지 않으면 내 방식을 바꿀 필요는 없었다. 내가 신경 쓰는 트렌드는, 요즘은 어떤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 해도 출판 업계의 트렌드 시계는 IT 업계의 시계보다 훨씬 느리게 돌아가니, 너무 예민하게 트렌드만 바라볼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글쓰기의 세계에는 유구한 전통 속에서 확립된 방식들이 있었다. 이 방식들은 여전히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지라, 트렌드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이야기 법칙에 정통해지는 게 더 중요했다.


돌이켜보면, 개발자로 일할 때도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계속해서 익혀야 했다. 그게 곧 경력이고, 내공이 되어 시니어 개발자가 되게 해 주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매번 신기술에 밀려서 기존 기술을 충분히 익힐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연차가 쌓이면서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쏟아지는 신기술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는 계속해서 진화했고, Kafka, MongoDB, Redis 같은 각종 솔루션을 다루는 방법 역시 변해가고, 거기에 K8S, Istio 등 인프라 기술까지 가세하는 게 보통이었으니까. 그 와중에 '나는 Java는 잘 다룬다고 할 수 있는가?', 'MySQL은 잘 쓰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면 자괴감이 한 바가지 쏟아졌다(그렇다. 나는 서버 개발자였다). 물론 주니어 시절보다는 훨씬 기초가 탄탄해졌지만, '이제 시니어네요'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자문하면 늘 자신이 없었다.


글을 쓰는 것, 특히 소설에도 캐릭터나 사건, 배경, 갈등, 분위기 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 하지만 이건 유행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어떤 유행에도 변하지 않는 기본기에 가깝다. 새로운 트렌드를 익히는 것도 필요하긴 하지만, 작가는 기본기를 잘 익히고, 그 위에 자신의 색을 덧입히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게다가 개발 환경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에 비하면, 독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건 축복이다. 창작이 더 쉽다는 말은 아니다. 끊임없이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실체로 만들어내는 건 개발 못지않게 힘들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트렌드에 덜 시달리면서, 천천히 기본기를 연마할 수 있는 창작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이제 첫 작품을 내놓게 된 창작자로서 지금은 기본기를 연마하고 있다. 다양한 작품을 읽으며 창작자로서의 소양을 쌓다 보면, 천재의 작품을 보고 '아, 내가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기본기를 쌓아가는 이 시간이 나를 더 훌륭한 창작자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안다. 늘 조급한 마음에 기본기를 놓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나이기에, 적어도 새로운 트렌드에 우왕좌왕하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대박 작가는 될 수 없어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창작자는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실패한 개발자로서의 경험이 새로운 도전을 더 잘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달까. 이게 연륜인 것 같기도 하고.



내게 맞는 속도로 걸으며

빠른 변화는 사회에 많은 발전을 가져다준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주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니까. 하지만 많은 이익이 곧 행복은 아니다. 사회의 행복 총량은 그저 빠른 변화만으로는 늘어나지 않는다. 소외된 사람에 대한 관심과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한 더 많은 토론과 논의가 선행되어야 사회가 행복해진다.


개인의 삶도 그런 것 같다. 나는 기술적으로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는 게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고, 설령 더 훌륭한 개발자가 되었어도 행복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나는 회사 일을 훌륭히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창작자가 더 맞는 사람이었으니까. 있지도 않은 유토피아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날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결국 아프고 나서야 멈춰 서서 무엇이 행복인지를 물었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를 깨달았다.


이제 나는 빠른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 빠른 성과를 내지는 못해도, 제법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전자기기를 덮어두고 노트와 연필을 가지고 아이디어를 만든다. 종이책을 펼쳐서 연필과 인덱스 스티커 등 아날로그한 도구를 사용해 표시를 하며 독서를 하기도 한다. 내게 개발자가 아닌 세상은 퍽 느린 세상이다. 불편한 소프트웨어와 구식 UI 가 가끔 갑갑할 때도 있지만, 그게 오히려 서두를 필요 없다고 말하며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신기술에 쫓기는 일 없이 창작의 본질을 탐구하며, 창작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그저 행복하다. 물론, 속도는 상대적인지라 내게는 맞는 속도가 누군가에게는 빠를 수도 있지만, 나는 이제야 심호흡하듯 느린 숨을 내쉬며 삶을 제대로 살펴보는 기분이 든다. 이 속도가 나에게는 맞는 속도라는 걸, 아주 먼 길을 돌아서 깨달았다.


다음 화에서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오랫동안 훌륭한 개발자가 되는 게 꿈이었던 내게, 그 꿈을 버리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이제 다시 꾸는 꿈은 어떤 것인지 돌아보려 한다. 꿈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 보고, 30대 중반에 새로운 길을 걷는 이야기도 덧붙여 보겠다. 이제 이 브런치북도 끝이 보이는데,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잘 마무리하도록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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