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생고기

서울에선 못 먹는거다~ 귀한 거~

by 탄산수

이번 주말, 동생네 집들이로 아빠와 새엄마가 올라오셨다. 빨간 아이스박스에는 한약재향이 가득한 백숙 두마리와 아침에 갓 도축해온 생고기가 담겨 있었다. 기차 시간 때문에 행여 고기를 사지 못할까 조마조마했던 아빠, 어찌저찌 시간이 맞춰졌는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 생고기 사는 데 성공하셨나 보다. 이뿐 아니다. 김치통에는 백숙, 생고기와 함께 먹을 고구마 줄기, 겉절이도 오밀조밀 담겨있다. 이미 1kg가 넘는 열무김치를 3일 전에 보내놓고는 올라오기 직전까지 가득히 준비하신 새엄마.


제부가 노량진에서 떠온 회와 산낙지, 멍게 그리고 진한 국물 속 야들야들한 백숙, 고추장 & 참기름에 버무려진 생고기까지 식탁은 진수성찬이었다.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아빠의 단골 대사, 열심히 먹고 있는 내게 '큰딸은 왜 이렇게 안 먹냐, 얼른 더 많이 먹어라' 하며 재촉하신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 지금 계속 먹고 있는데?' 답하고는 또 얼른 젓가락을 든다. 그럴 때면 '나도 아직 아빠의 아이구나' 부모가 주는 마음을 넘치도록 먹는다. 그러고 나면 배는 묵직해져도 기분이 산뜻해진다.


아빠는 술이 얼큰하게 취하면 나에게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신다. 아무런 욕심없던 엄마가 나를 낳고나서 얼마나 삶의 생기를 찾았는지에 대해서, 다만 이번에는 새로운 표현을 더했다. '콧구멍이 벌렁거리게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표현이 참 적절하다 싶어 속으로 웃었다.


사실 나는 요즘 엄마에게 서운한 점이 많았다. '예민한 내 기질을 더 이해하고 키워줬더라면' 'ADHD 기질을 어릴 때 치료해줬더라면' '안정적인 애착으로 키워줬더라면'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하고있던 차에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그새 까먹었구나' 생각이 들며 엄마에게 수도 없이 사랑 고백을 받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도 딸을 낳고 '어디서 이렇게 이쁜 게 온거야'하고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하루에도 수백번씩 사랑 고백을 해대는데, 그게 엄마에게서 배운 것들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렇게 부모가 되어도 자기 부모 마음을 전부는 모르나보다.


우리 아빠가 나를 만날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아빠와 새엄마가 우리를 만날 때마다 이토록 분주한 이유도 돌아가신 엄마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주기 위함이란 것을 알고 있다. 아빠는 지금 곁에 없는 엄마의 사랑을 계속 기억하게 해주고, 새엄마는 지금의 사랑을 채워주신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열심히, 그리고 따뜻하게 속을 가득 채워주고 가셨다. 그리곤 또 부리나케 기차에 오르신다. 배도 마음도 가득 부른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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