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멜콩자장면춘장색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라는 노랫말을 따라 흥얼거리다 보면, 문득 어린 시절 짜장면을 먹던 날이 떠오릅니다.
이사를 가던 날, 생일을 맞이한 날, 혹은 특별한 외식이 허락되던 주말 오후.
짜장면은 기억의 테이블에 놓인 한 그릇의 위로였습니다.
한국 문화에서 짜장면은 언제부턴가 '변화의 날', '시작의 날'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이사하는 날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시켜 먹고, 졸업식이나 입학식 후 친구들과 둘러앉아 면을 흡입하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곤 했지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춘장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는 짜장면을 대신해 짜파게티라는 인스턴트 라면도 등장했습니다.
"주말은 아빠가 요리사입니다!"라는 광고 속 멘트처럼,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며 아이들에게 짜장면의 대용식을 건네던 장면도 우리 기억 속에 함께 남아 있습니다. 정통 짜장면과는 다른 간편한 맛이지만, 그 안에도 검은 소스의 위로와 가족의 온기가 숨어 있었지요.
짜장면 그릇 위로 퍼지는 진한 소스의 빛깔.
숟가락을 얹기 전, 시선을 사로잡는 건 언제나 그 짙은 검은색입니다.
볶이고, 끓고,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시간의 색, 바로 춘장의 빛입니다.
우리는 종종 짜장면을 먹으며 그 맛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 속 소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깊은 색과 풍미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잘 알지 못한 채 지나칩니다.
오랜만에 짜장면을 먹다가 아이가 또 묻습니다. 저는 아차! 합니다.
지금껏 너무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하더군요.
일상 속 익숙한 것들일수록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시간이 얼마나 큰지를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맛있는 한 끼로 여겼던 춘장의 검은 소스는, 알고 보면 많은 시간과 역사, 화학과 기억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지요.
춘장(炒醬)의 역사는 중국 베이징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전통 중국 요리 중 '자장면(炸醬麵)'에 쓰이는 된장 기반의 볶은 소스가 그 기원입니다.
발효된 콩과 밀을 기본으로 하며, 진한 짠맛과 감칠맛이 특징입니다.
한국에는 일제강점기 무렵 중국 화교들을 통해 처음 전해졌고, 이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화되었습니다.
기존 중국 춘장은 소금기가 강하고 색이 갈색에 가까웠지만, 한국에서는 춘장을 기름에 볶아 풍미를 더하고, 캐러멜 색소를 넣어 검은 윤기를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짜장면의 검은색 소스, 바로 한국식 춘장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한국식 춘장이 검은빛을 띠는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춘장이 갈색이나 황갈색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식 자장면에 쓰이는 된장 소스는 더 연하고 짠맛이 강한 편이며, 때로는 진한 갈색 또는 적갈색으로 나타납니다. 볶는 방식보다 소금 발효 중심의 저장 방식과 재료 차이 때문이라고 해요.
기본적인 재료는 발효된 콩으로 만든 된장, 밀가루, 그리고 캐러멜 색소입니다.
이 발효된 된장은 구수하고 짭짤한 맛을 내며, 밀가루는 점성을 높여 부드러운 농도를 만듭니다.
여기에 단맛과 색을 더하기 위해 캐러멜화된 설탕이나 캐러멜 색소가 첨가되며,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풍부한 풍미와 어두운 색을 만들어냅니다. 한국식 춘장은 이 춘장을 기름에 볶아내는 과정에서 색과 맛이 깊어지며, 짜장면 특유의 윤기 도는 질감을 완성합니다.
춘장의 짙은 색은 단순한 '색소' 때문만은 아닙니다.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라 불리는 화학 작용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단백질(아미노산)과 당이 고온에서 만나면서 갈색 색소와 고소한 풍미가 형성되는데,
이 반응이 반복되면 갈색은 점차 깊어져 거의 검은색에 가까워집니다. 빵
또 하나의 주역은 캐러멜화(caramelization)입니다. 을 만들 때에도 같은 현상입니다.
설탕이 열에 의해 분해되고 산화되면서 짙은 갈색과 특유의 쌉싸름하고 구수한 향이 만들어집니다.
캐러멜화는 춘장 외에도 다양한 음식에서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양파를 오래 볶아 단맛을 끌어올리는 캐러멜라이즈드 어니언, 브륄레 디저트 위를 바삭하게 태우는 설탕층, 밤에 굽는 고구마의 노릇한 겉면 역시 모두 캐러멜화가 만들어낸 색과 풍미입니다. 이처럼 단맛을 뛰어넘어 복합적인 풍미를 끌어내는 캐러멜화는, 소스 하나에도 깊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춘장은 이 두 가지 반응이 동시에 작용하는, 맛과 색이 동시에 익어가는 복합의 소스입니다.
기다려야 맛을 낼 수 있는 인생의 순간 같습니다.
우리가 짜장면을 먹을 때,
사실은 그 어두운 빛 속에서 구수함과 따뜻함,
그리고 기억과 위안을 함께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춘장의 색은 시간을 견뎌낸 맛의 결과입니다.
그 검은빛은 어둠이 아니라,
맛이 완성된 순간에만 허락되는 농도 짙은 온도입니다.
조만간 짜장면 한 그릇 하실까요~ 검은 소스 한 숟가락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일상의 소중함, 그리고 익숙함 속에 숨어 있는 위대한 정성을요.
춘장처럼 골져스 하게 발효되고 여유 있게 캐러멜향 풍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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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83376
https://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0744
https://namu.wiki/w/%EC% B6%98% EC% 9E% A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