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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는 순간 기록이 아니라, 마음을 저장하는 색

오징어먹물세피아색

by 컬러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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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할머니 댁에 갔습니다.

너무 심심해하니 할아버지께서 앨범을 가지고 나옵니다.

앨범을 펼치는데 너무 오래되어 콤콤한 냄새가 납니다. 그래도 정리가 참 잘되어있어서 궁금해하며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앞부분 사진은 참 작기도 하고 갈색입니다. 이상합니다. 흑백 사진은 봤는데 갈색은 처음 보는 것이지요.


"엄마, 왜 이 사진은 갈색이에요?"

"응... 옛날에는 잉크가 없어서 그럴 거야."

휴대폰을 보여주며 세피아 모드를 해 보입니다.


"우와 신기하다^^"



‘세피아’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σηπία(sepía)’, 곧 오징어(갑오징어)를 의미합니다.
이 오징어에서 추출한 먹물이 중세 유럽에서 잉크나 그림 재료로 널리 사용되었죠.

붉은 기 도는 갈색, 붉은 밤색, 잿빛 갈색 등으로 묘사되는 세피아는,
처음에는 실제로 생물에서 얻은 천연 색소였던 것입니다.



19세기말~20세기 초, 흑백사진이 일반적이던 시절,
사진을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세피아 톤 인화였습니다.


이는 은(silver) 기반 흑백 사진을 황(sulphide) 용액에 담가 변색시키는 방식으로,
결과적으로 사진의 내구성이 높아지고 색은 갈색빛으로 변합니다.

과학적으로는 ‘황화는(silver sulphide)’이 만들어지는 화학반응이며,
감성적으로는 ‘시간의 바랜 기억’을 상징하는 색이 된 것이죠.


전 디지털카메라 1세대입니다.

대학시절 '사진'수업이 있었는데, 모두 필름을 인화해 가는 수업이었지요.

그때 그래서 흑백필름과 칼라필름이 있다는 걸 알았고,

선생님이 되어서야 우리 눈에 흑백을 구분하는 간상체(간체)와 색을 구 별하는 추상체(추체)가 있다는 걸 알았지요, 우리 눈이 카메라 구조와 같다는 것도요~ 저번시간에 수업을 했네요^^


일본의 소설가 나츠메 소세키는 소설 속 회상의 장면에서 세피아 톤의 기억을 묘사합니다.

김훈 작가는 어떤 인터뷰에서 “세피아 사진처럼, 문장도 세월을 통과해야 진짜 색을 낸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세피아는 지금도 사진 필터, 영화 톤, 북디자인, 그림체 등에서 사용됩니다.
무언가를 ‘과거처럼’, ‘추억처럼’ 보이게 하고 싶을 때, 우리는 세피아를 선택합니다.

세피아는 '낡음'이 아니라, ‘기억을 품은 따뜻함’입니다.

이 색은 종종 회상, 회한, 낭만, 클래식이라는 감정을 담아내기도 하지요.




빠르게 찍고, 빠르게 지우고, 끝없이 수정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
우리는 매일 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도, 진짜 기억에 남는 사진은 하나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흐릿하고 따뜻한 색감의 필름 사진,

촌스럽다며 그냥 막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세피아 톤의 이미지에는 마음이 오래 머물죠.

왜일까요?


그건,
세피아는 순간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저장하는 색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네 마음은 무슨 색인가요?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

| SDGs 목표 4. 양질의 교육 색의 기원과 감성, 화학적 구조를 아우르는 세피아는 예술+과학 통합교육소재로 활용가능함

| SDGs 목표 11.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 사진, 필름, 기록물은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함.

| SDGs 목표 12.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 오징어 먹물처럼 생물 유래 천연재료의 전통적 활용 방식은 지속가능한 자원 활용 모델임.


*SDGs와 디자인에 대한 저의 브런치북입니다^^ 보충이 필요하신 분들은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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