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 Nov 16. 2021

치유의 음식

오이 샌드위치

"오이야, 사랑해!"


    누군가(:오이를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들으면 기겁할 소리. 내가 자주 외치는 말이다.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켜도 갈증이 날 때가 있다. 삼십 대에 접어든 몸뚱이 안에서 그래도 수분이 부족하다고, 너 이제 옛날 같지 않다고 외치는 소리인가 싶기도 하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며 건조함을 가장 먼저 느끼는 기관지에서 보내는 신호 같기도 하고. 혀랑 목구멍이 속절없이 바짝바짝 말라갈 때. 나는 항상 오이를 떠올린다.


    마트에서 사계절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오락가락 하지만, 비싸 봐야 한 봉에 3천 원, 종종 더 비쌀 때는 두어 개에 3천 원. 시장에 가면 더 싸게 살 수도 있다. '오이는 그냥도 막 씹어먹을 수 있는 야채니까, 다섯 개는 금방 먹겠지.' 하고 호기롭게 사 와서 눈물을 머금고 물러진 오이를 버린 적도 있다. 이제는 딱 두 개만 든 오이 한 팩을 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극강의 오이 레시피를 공유한다.



1. 통밀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앞뒤로 두 번 빠싹 하게 굽는다.

2. 크림치즈를 넉~넉~히 바른다.

3. 오이는 감자칼로 얇게 썬다. 물이 어찌나 많은지 쟁반엔 이미 물이 흥건하다.

4. 얇고 넙적한 당면같이 생긴 오이를 예쁘게 착착 쌓아 올린다.

5. 그리고 통후추를!! 촤!! 좋아하는 만큼 촤락촤락!! 이 통후추가 아주 킥입니다요.


    이 간단하고 훌륭한 오이 오픈 샌드위치를 입을 와앙 벌려서 한입 가득 베어 문다. 통밀 식빵의 바삭함이 아랫니에 가장 먼저 느껴지고, 윗니에서는 어서 옵쇼~ 하고 아삭하고 청량한 오이를 맞이한다. 입 속에서는 통밀의 고소한 맛, 시원하고 즙 많은 오이의 청량함, 묵직 고소하고 새콤한 크림치즈, 코를 간질이는 산뜻한 향과 개운한 풍미의 통후추까지. '와삭와삭' 소리가 마구 넘치는 현장이 된다. 한쪽을 정신없이 아삭 거리며 금방 끝내고, 한쪽 더 먹으면 이내 배가 찬다.


    와삭와삭 챱챱 먹다 보면 입안, 혀, 목구멍 모두 촉촉하게 오이즙이 가득 찬다. 그 전의 갈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다. 나에게 있어 오이는 치유의 음식이다.


    이런 게 힐-링 푸드 아닐까?



이전 14화 눈 감아도 생각나는 그 맛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