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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문장이란 무엇인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by 정여사 Feb 04. 2025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이 왜 이렇게 명문장으로 거론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런 수식어도 없고 그냥 터널을 빠져나오니 천지가 눈이었다는 말 뿐인데. 어디가?


  눈구경이 하고 싶다는 딸의 말에 불현듯 설국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좋다. 겸사겸사 저 풍경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설 연휴 마지막 날에 비행기를  타고 설국의 배경인 에치고 유자와로 떠났다.


 출발을 일주일 남짓 앞두고 예약을 진행 한 터라 숙소의 선택권은 없었다. 일본에서 유명한 다설지라 스키 시즌이 가장 붐비는 곳이니까. 심지어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고작 1시간 20분 만에 도착하니 접근성도 좋다.


 예보가 비라서 출발 전부터 실망을 안고 있었으나,  다행히 출발이 가까워지자 눈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신칸센에 몸을 싣고 에치고 유자와로 향했다.


 하지만 눈은커녕... 15분 후에 에치고 유자와 역 도착인데도 눈의 ㄴ조차 보이지 않았다. 실망감이 다시 차오를 때쯤, 터널로 들어갔다. 길고 긴 터널이었다. 이 터널 건설에 대체 몇 년이나 걸렸을까 싶을 정도로 긴 터널이었다.


 터널을 벗어나자, 묘사 그대로 '눈의 나라'였다. 차창 밖 세계가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일변하는 그 순간은 무척이나 극적이었다.  터널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풍경이 다 꿈이었던 것처럼, 나무도 길도, 하늘도, 시야가 온통 하얗게 물들었다.

 그 순간 기차에 앉아있는 모두가 설국의 첫 문장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 문장은 명백하게 잘 쓴 문장이다. 담백하게, 호화로운 수식어 하나 없이 누구나 같은 장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잘 쓴 문장이다. 새삼 거장의 필력에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잘 쓴 문장이라는 게 참 어렵다.

 어떤 문장은 화려해서 잘 쓴 문장이고, 어떤 문장은 담백해서 잘 쓴 문장이다. 문장을 잘 쓰는 룰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것도 예술의 영역이라 규칙을 무시해도 잘 쓴 문장이라는 게 존재한다.


 수식어가 길든 짧든, 말이 거칠든 곱든. 잘 쓴 문장이란 사람의 마음속에 기억되고 어떤 순간에 떠오를 수 있는 문장이 아닐까.


 좋다. 지금부터 정진해서 40년 안에 잘 쓴 문장 하나는 지어 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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