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병원에 말만 한 개가 온 적 있다.
어떻게 개가 말만 하냐고? 너무 과장이 심한 거 아니잖소?
아니다. 180 정도 되는 긴 길이를 가진 이 친구는 진짜로 사람이 기어 다니는 크기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레이 하운드와 같이 이렇게 큰 종을 키우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보호자분은 본래 북유럽에서 살았고 그곳에서부터 이 친구를 입양해 키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대형견을 잘 키우지 않는 것은 아마도 관리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아파트에 살아 힘들고 사실 우리나라에 반려동물 공원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dog park는 교외를 나가야만 간간히 찾아볼 수 있고
반려동물이 일부 함께할 수 있는 공원을 가면
여기저기 산책 나온 아이들로 북적인다.
보호자님이 북유럽에서 살았던 동네는 숲 크기의 공원이 있었고 이 친구는 너무나 커서
정말 말인 줄 알고 제지를 당했던 적도 있다고 하셨다.
규칙상 탈 수 있는(당나귀, 코끼리, 말, 소) 같은 동물은 공원에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한다.
개 목걸이를 해도 이건 개 목걸이라기보다는 이랴! 할 때 쓰는 밧줄 같아 보이긴 하다.
나는 보면서 도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비행기를 태웠을 까 생각했다.
공항에서 검역 일을 한 적이 있는데 항공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10킬로 이상 동물은
기내에 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또한 케이지 안에 있어야 한다.
(어느 항공 비즈니스 클래스를 반려동물 용으로 끊으면 그 위에 케이지를 올리고 아주 잠깐잠깐
정도는 반려동물에게 문을 열어 밥을 챙겨줄 수 있다고 들었다.
나도 아직 비즈니스 클래스 타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되면 다른 아이들은 마취 후 몇십 시간 동안 짐짝 취급받으면서 화물칸에 싣게 된다.
결국 궁금해서 여쭤봤다.
퍼스트 클래스 끊고 사정사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짐짝 취급받고 왔다고 하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아서 입국 후 특식을 먹이고 있다고 했다.
내가 검역 일을 했을 당시 소속이 농림축산부였다.
그때 맡은 일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일은 국외에서 들어오는 농 수산물과 동물 반입을 검사하는 일이다.
공항, 항구 등 돌아다니면서 수입되는 고기들의 문서를 확인하고
위와 같이 반려동물이나 실험용 동물이 들어왔을 때에도 나라마다 반드시 맞아야 하는 백신과 검사를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류를 검사한다.
많은 바이러스들이 동물을 통해 옮기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하고 까다로운 절차이다.
그럼에도 종종 서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해당 동, 식물은 원칙상
태워서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
한 번은 어느 대학의 실험용 원숭이가 12마리가 항구로 들어왔다.
내가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채 되었을 때라 아직 일이 손에 익지 않았었다.
그 전에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만두는 탓에 인수인계를 받지도 못했고,
사무실에는 가장 높은 분 한 분과 임신으로 하루에 시간 정도만 일하는 기간제 선생님, 그리고
군대를 대신하여 온 공방수(공중방역수의사)선생님 이렇게만 있었다.
공적인 서류 작성도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고민하면서 작성하다가
위에서 전화오면 물어봐서 고치기 일 수 였다.
그런 상황에서 추운 겨울에 들어온 원숭이들의 서류가 맞지 않는 것이다.
수입해오는 측에서 문제가 생겼었던 것 같다.
당장 살아있는 아기 원숭이 12마리를 태워버려야 하고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게 굉장히 난감했다.
딱히 사수가 없어서 물어볼 사람이 없는데 공무원으로써 정해진 원칙대로 해야 의무가 있었다.
그러던찰라에 "끼익끼익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 원숭이들이 케이지에 안에서 나를 보는데 눈이 매우 초롱초롱한 거 아닌가...
부족한 서류라는 알게 된 수출 업체와 대학 연구실에서 24시간 내에 서류를 제출할 수 있도록
통보하고 그 시간 동안 잠시 원숭이들을 다른 공간에 놔뒀다.
위에서 나온 명령이라 시간을 더 줄 수는 없었는데 새벽에 들어와서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 아이들의 촉촉한 눈을 보면서 제발 구비서류가 때 맞춰 오기를 빌었다.
안 그러면 내 손으로 저 아이들을 태형 아닌 태형 시켜야 하니까...
다행히 서류를 완성시키고 원숭이들을 돌려줄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다.
두 번째 일은 식당, 농장을 다니면서 해당 업체에서 제대로 서류를 잘 지키고 있는지 체크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양계장을 돌아다니면서 동물 복지 마크가 있는 곳이라면 그 기준을 지키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그 후 동물 복지 마크가 마트에서 파는 계란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주로 닭들은 소위 말하는 ‘닭장’에 갇혀 계속 알을 낳는다.
그에 비해 파라다이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동물 복지 마크가 있는 아이들은 풀어서 키우게 된다.
적어도 몸을 움직일 공간은 준다.
이 정도만 해도 동물 복지 마크를 받는다.
그리고 마지막 일은 현장에서 했던 이 모든 작업을 공문화하는 것이다.
외부 출장이 잦지만 사무실에서 해야하는 서류 작업도 많다.
비행기나 배는 새벽에도 계속 들어오므로 1명이라도 검역할 일이 생기면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모르고 말린 생선 등을 가지고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물건들부터 해서 여러 반려동물 관련 체크를 한다.
종종 외근이 너무 많아서 외근 수당을 넘어서 일하게 될 때에도 있었다.
이럴 때는 정말 억울하다. 사람을 더 배당해서 그만큼 외근을 시키질 말든가.
일을 해도 돈을 못받는다니;;
하지만 공무원을 그만둔 이유는 페이 때문은 아니다.
지방 발령을 받아서 그렇지, 수도권이나 세종쪽으로 가면 체계적으로 일을 배울 수 있다고 들었다.
종종 외근수당을 못받기도 하지만 명절마다 보너스가 있기도 하다.
지금의 병원생활과 비교하면 월급은 더 적지만 보너스같은 것까지 생각하면 연봉은 비슷하다.
워라벨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깐 시간에 비하면 절대로 적게 버는 것은 아니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님은 만족하셨다.
젊었을 적에 3년 정도 보건소에서 근무를 했던 적이 있었던 엄마는 정말 기뻐했다.
그렇지만 6년동안 공부해서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 동떨어진 업무를 하면서
'내가 이런 거 하려고 대학을 나왔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엑셀을 하고 싶지 않았다. 깔끔하고 정교한 수술을 하고 싶었다.
동물들의 삶의 질을 지켜주면서 병을 고치고 싶었다.
기술을 익히고 싶었고 여기 있으면 점점 더 퇴화할 것 같았다.
어쩌다 검역 일을 할 때의 이야기를 풀게 되었지만
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반려동물의 웰빙에 대해서도 점점 더 많은 수요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반려인에게는 가족이다.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말도 들어주고 끊임없는 맹목적 사랑을 사람들이 어디서 받겠는가.
여전히 명절 전후로, 연말 전후로 반려 동물을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바.
애견 호텔에 맡겼다가 안 가져가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등록하여 관리하고 그에 필요한 정책과 시설을 논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