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빠르게 2주가 지나고 시험 당일이 되었다.
단체 주문한 도시락을 받고, 줄줄이 서있는 버스에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학교 이름과 버스 번호를 몇 번이고 확인한 후 탑승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시험장을 가는 것이 수능 시험을 두 번 치는 것 같았다.
전 날에는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올림픽 선수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제대로 보지 못한 부분이 마음에 걸려 제대로 잠을 자지는 못했다.
20개의 과목을 6년 동안 공부했는데, 완벽하다는 마음보다는 못 보더라도
스스로만 아는 열심히 했다는 양심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버스가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동기 중 한 명이 버스에 안 탔다고 했다.
국시장이 급하게 버스기사님께 "잠시만요!!! 기사님 아직 안돼요!"
외치는 소리를 듣자마자 저 멀리서 뛰어오는 동기가 보였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아침에 후배들이 방을 돌면서 다 일어났는지 체크하는데
모닝콜을 받고 무의식적으로 다시 잠에 들었나 보다.
겨우겨우 버스를 타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가끔 인생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시험장에 들어섰다.
어느 중학교였다.
시험은 9시부터 4시 반까지 본다.
기초 수의학, 예방수의학을 각 100문제씩 100분 동안 본 후 가져온 도시락을 점심에 먹는다.
점심을 먹으면서 오후에 보는 시험들을 짧게 정리한 노트를 펴서 보면서 먹는다.
급하게 먹지는 말되 시험 중 배고파서도 안된다.
오후에는 임상수의학 1, 임상수의학 2와 수의 법규 및 축산학을 보면 시험이 끝이 난다.
모두 1문제를 1분 안에 풀어내야 하기 때문에 답이 바로바로 떠올라야 한다.
글을 읽기만 해도 부족한 시간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험이 끝나 있었다.
매년 96% 이상의 합격률의 시험이더라도 4% 안에 내가 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시험장을 나와서 호텔에 와서 정신없이 그동안의 짐을 쌌다.
책이 많기 때문에 무거워 다들 택배를 보낸다.
100cm 정도 되어 보이는 커다란 우체국 택배로 2박스나 나왔다.
케리어로 가져갈 수 있는 짐을 재빨리 싸고 부모님이 계신 인천 본가로 향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1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천방지축 장난치면서 친구들 놀리는 것을 좋아하는 장난기 많은 아이였고,
공부를 굉장히 잘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성취감을 느끼면서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자랐던 지역에서는 고등학교를 일명 뺑뺑이로 돌렸고 1 지망부터 18 지망까지 써냈다.
17 지망으로 썼던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과를 선택하면서 당연하게 간호학과, 수의학과, 약학과, 의예과 등으로 원서를 접수했다.
간호사셨던 어머니의 의예과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도 의사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어렸을 때 하얀 거탑을 재밌게 봤고 중학교 때부터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면서 자라서
그중에서도 의예과를 가장 가고 싶었다.
수시에서 의예과와 약학과를 떨어지면서 불안했는데 다행히 커트라인에서 수능 최소 등급을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수의학과를 가게 되었다.
주변에 한 명씩 지나가는 개를 보면 크기와 상관없이 소리 지르면서 도망가는 친구를 본 적 있는가?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대학 합격증을 받고 나서 세상 무료한 '수능 끝난 고3'이었을 때 엄마와 함께
마트를 갔다가 길에서 산책 나온 개 한 마리와 마주쳤다.
너무 무서워서 근처 버스 정류장 의자를 발을 밟고 올라갔다.
엄마는 "왜 의자에 신발 신고 올라가! 오버 좀 하지 마!! 빨리 내려와" 그랬지만
왠지 개를 보면 나를 물 것만 같았다.
말도 안 통하니깐 내 말도 안 듣고 주인 말도 안 들을 것 같았다.
개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래라기보다는 나한테는 그런 공포의 존재였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높은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장점이 되기도 했다. 동물에 대해 강한 사랑을 느끼는 친구들은 실습을 할 때마다 힘들어했다.
어떤 친구는 동물을 사랑해서 들어왔는데 막상 동물을 해치는 느낌을 받는다고 까지 했다.
수의학이 동물을 위한 학문인지 사람을 위한 학문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수의사만큼 동물들이 죽는 모습을 많이 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자주 메스로 그들의 살을 가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던 내가 6년이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고 동물을 관한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포증은 없어졌다.
어제는 산책 나온 한 아이가 옆으로 걷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걸여야지~ 왜 이상하게 걷니~ 앞으로 가, 앞으로" 속으로 대화를 한다.
학부를 다니면서 참여했던 행사들에 대해서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방학에는 세계 수의학 도축 전을 통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실습을 가서 몸소 배우는 행사에 참여했었다.
연이어 그다음 해에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수의학도 축전에도 참여했다.
세계수의 학생 전 세계의 수의학 학생들과 함께 서로의 나라에서 수의학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현장 실습의 종류, 규모 등을 공유하는 장이 되며, 마지막 날에 형식적인 옷을 입으면서 미국의 프롬 비슷한 것을 하면서 예비 수의사들끼리 학생들끼리의 친목의 기회가 된다.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시장의 규모, 수의학의 전문성은 여러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전문성이 높지 않다.
그래서 많은 다른 나라의 학생들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몽골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주최측에서 대접했던 양고기를 남김없이 먹지 않으면 큰 실례라는 것을 듣고
같은 동기들과 최대한으로 먹고 체해서 토하는 동기의 등을 두들겨 줬던 추억도 지나갔다.
일본의 수의학대학 친구들과 대회를 함께 참여하기 위해 서로 안 되는 영어로 겨우겨우 의사소통하면서
새벽까지 함께 PPT를 제작한 후 다 끝내고서 도쿄의 새벽 거리를 돌아다녔던 기억도 난다.
런던의 한 대학에서 2달간 공부할 기회를 얻어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날 좋을 때에는 근처 공원에 나가 누워서 책을 읽었던 것을 떠올릴 때쯤 집에 도착했다.
가자마자 씻고 오랜만에 본 가족들과 얘기 하면서 저녁을 먹은 뒤 잠을 잤다.
그 다움부터 다시 수능 끝난 고3이 되었다.
합격 소식을 듣기 전까지 우리 학교에서 한 명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동기 단톡방에 돌았다.
'아... 그게 설마 나는 아니겠지. 만약 떨어졌다면 학교 도서관에 1년을 더 해야 한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
나는 다행히도 합격을 확인했고 동기 오빠가 떨어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렇게 수의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