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이름 없는 강아지가 하나 있다.
개가 되지 못한 강아지이다.
내가 수많은 개를 만나도 아마도 잊지 못할 아이일 것이다.
학부생 시절 한 수업에서 조에 한 강아지마다 맡았다.
수업의 초기에 그 강아지를 받아 키워서 종강할 때쯤 해부한다.
처음부터 그 아이는 해부를 위한 것이었다.
국내에 흔한 잡종을 나눠 주는데 건강하게 잘 자란다.
약 5개월 동안 조에서 함께 키우고 먹이고, 씻긴다.
선배들은 걔네한테 이름을 짓고 그러지 말라고 했다.
이름까지 지어버리면 해부할 때 마음이 많이 힘들 거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두 번째 조인 우리 조를 따서 그냥 2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너무 귀찮았다. 사실.
본과에 들어오면 고등학생이 다시 된다.
정말 고등학생처럼 한 달에 한 번씩 자리를 뽑아서 지정석으로 앉고
교수님께서 돌아다니면서 강의실에 들어오신다.
같은 자리에 앉아 바뀌는 수업을 계속 듣는다.
다른 대학생들과 다르게 과목을 선택할 수 없이 모든 과목이 필수이고,
따라서 공부량이 방대해진다.
그런데 모든 과목들이 중간, 기말과 별개로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씩 시험을 친다.
그렇기 때문에 매 수업이 시험이고 못 보면 재시험을 보고 세 번째로 못 보면
교수님과의 면담과 함께 잘못하면 과락을 당할 수도 있다.
이렇듯 공부하기도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는데 2의 밥을 챙겨주고,
종종 씻겨 주고, 산책도 시키고 청소도 해야 한다는 것에 불평했다.
2를 제대로 건강히 관리하지 못하면 해부학 실습에서 사용할 수 없으므로
이 또한 한 과정이라 여겼다.
한 번도 반려동물을 집에서 키운 적 없었던 나는 익숙하지 않았고
당번이 돌아올 때마다 적당히 해야 하는 일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는 빠르게 자랐다.
몸이 크면서 장난도 많아지고 종종 우리가 심심하지 않게끔(?) 사고도 쳐줬다.
문을 갉아 놓고 휴지를 다 찢어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2를 실습해야 할 때가 왔다.
그동안 간식 주던 손으로 마취주사를 놓아야 했다.
데리고 가는 내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처다 보고 있었다.
매 실습수업을 재밌게 했었지만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묵념을 시작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털을 깎고 살결에 넓게 소독약을 발랐다.
우리들 중 누가 시작할지 정해야 했다.
"나는.. 못하겠어.." 동기가 말했다.
실습에 꽤 자신이 있던 내가 하기로 했다.
팬으로 찢을 부위를 선을 먼저 그린 후 메스로 그었다.
그 위로 올라오는 빨간 피를 셕션해주면서 교수님과 실습 조교님의 도움 아래에
장기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보았다.
건강한 2의 선명한 장기의 색을 볼 수 있었다.
한 단계, 한 단계를 할 때마다 사진을 정확히 찍어 남겨 두었다.
그건 나중에 공부하기 위함이다.
수업시간 내내 전혀 참여를 못하고 울고 있는 동기 언니가 보였다.
많은 동기들이 그 주에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아무도 언급하지 못할 정도로 분위기가 침울했다.
동료를 잡아먹은 느낌이 들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이지만
처음부터 죽기 위해서 자라는 생명체는 없다.
하지만 2는 해부라는 명목 하에 태어난 아이였다.
이름이라도 지어줄 걸 그랬다.
결국은 내가 안 아프려고 안 지은 것이었다.
인간이 어떤 권리로 한 생명체의 운명을 결정 지을 수 있을까.
건강한 한 아이를 통해서 아픈 많은 아이들을 살리는 것이
교육적으로, 학문적으로 효율적이라는 것은 머리로 납득이 된다.
그런데 과연 윤리적인 것일까?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학에 진학한 친구가 멘탈이 흔들렸다.
"동물을 살리려고 왔는데 수의학은 동물을 위한 학문이 아닌 것 같아.
오히려 인간을 위한 학문에 더 가까워"
수의사를 동물병원 의사라고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수의사는
그 외의 부분에 더 많이 쓰인다.
도축장에서 돼지와 소의 마지막을 보는 사람,
우리나라의 고기들을 허가하고, 검사하는 사람,
신종 바이러스가 터질 때마다 가축장에서 동물들을 매장시켜야 하는 사람,
대학 병원 및 제약회사 등에서 실험실에서 동물 실험을 통해 인간의 위험을
동물에게서 먼저 확인하는 사람,
경마를 위한 말들을 관리하는 사람.
이 모두 수의사의 업무이다.
방에 들어와서 누웠다.
그리고 내가 뭐라고 2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뛰어난 수의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생명의 존엄성을 가볍게 여기는 수의사가 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지금 동물병원에서 마주치는 아이들 중 2의 환생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한테 다시 한번 기회를 줬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안 아프게 해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