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는

- epilogue -

by 구너

오빠를 보냈을 때처럼 민정이를 보내고도 시간은 잘만 흘렀다.

낙엽이 다 떨어지고 다시 민정이를 보낸 계절이 왔다.

친구들은 고3이 되었고 나는 학교가 아닌 독서실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했다.

난 여전히 민정이 부모님이, 선하가, 주희가, 그리고 내가 미웠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편함에서 관리비 영수증을 꺼내는데 뭔가가 손에 스쳤다. 손을 넣어 빼내어 보니 하늘색 리본이 달린 편지였다.


이게 뭐지?


잠깐의 기대와 달리 편지는 '느린 우체통'으로 보낸 것이었다.

편지의 받는 사람에 적힌 이름은 내 이름이었고, 보내는 사람 쪽에는 '너의 시인'이라는 네 글자가 이름 대신 적혀 있었다. 봉투를 뜯자 예쁜 바다 사진도 한 장 들어있었는데, 그 사진 뒷면에는

'역시 겨울 바다는 아니야:D'

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편지 속의 민정이는 여전히 시인 같아서,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말을 했지만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편지를 읽을수록 분명해지는 건 내가 민정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민정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걸 훨씬 잘했고, 잘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점이 나는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그래도,

그래도 그 편지 덕분에 그날 이후 난 좀 더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나 보고 싶었어?
미안. 내가 조금 먼 곳으로 왔어.
여기는 파도 소리가 잘 들려. 난 여기서 파도가 되었다가 쏴아아- 하고 부서지고는 바람이 되어 훨훨 날았다가 슬쩍 구름 위에 앉아 쉬어.
걱정 마 나 생각보다 잘 있어.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 난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으니까.
그러다 네가 보고 싶어 지면 잠시 비가 되어 내릴게.
그러니까 소연아,
누구도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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