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일정 | 체계적 vs 시시한 글쓰기
체계적 글쓰기 vs 시시한 글쓰기
체계적인 건 무엇이고 시시한 건 무엇이길래 흥미를 자극하는 걸까? 시시하다는 말은 뭔가 글 쓰는 데 힘이 없고 방해될 것 만 같은 기분이 든다. 체계적인 글 쓰기는 어렵고 따분하게 느껴지지만 왠지 모르게 배워두면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빨리 쓰는데 체계적이라면 시시하게 써도 멋있는 글이 나오지 않을까?
작가는 오늘도 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어떤 글을 쓸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태초의 목적에 부합하는 글을 쓸 수 있을지요. 누군가는 멋진 소설의 문체에 매료되어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저는 좋은 감정을 심어 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목적입니다. 정확히 꿈과 희망이라는 감정을 주는 것이 제 글의 꿈입니다. 글을 어떻게 빨리 쓸 수 있는지를 빌어 꿈과 희망을 줄 생각인데요. 큰 성공을 했다면 그게 제일 시시한 글 쓰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약간 시시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쓰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글을 쓰는 방법론은 생각보다 지루합니다. 제목을 우선 정한다던가 시간이 지나는 순서를 맞도록 유의한다던가.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글을 쓴다면, ‘아침일정인 걸 아, 맞다 이거 저녁에 한 건데’ 하며 다시 되돌려야 합니다. 그럴 때 시시한 글쓰기의 재미를 살려 봅니다. 애초에 아침/점심/저녁이라는 타이틀을 정하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기에 체계성이 나타납니다.
일기 다음으로 책을 쓰게 된다면 어떤가요. 책은 장르를 따집니다. 에세이의 책이라면 소제목을 정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제목을 모를 때 글 안에서 찾는 방법이 있습니다. 깊은 지식을 담고 있다면 인문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수업에서도 인생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삶의 교훈을 주는 문장을 찾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수강생들이 곧 독자가 되기도 합니다.
있다, 전문 분야
모든 사람에게 전문 분야가 있다는 확신은 내가 잘하는 것을 세세하게 알려주고 싶어 집니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배움을 얻기도 쉽습니다. 그럴 때 글쓰기도 한층 재밌어집니다. 글이 잘 써집니다. 글, 그림, 대화, 요리, 칭찬, 사랑, 순수 등의 감정적 요소와 사물, 보이는 것과 보이는 않은 것을 넘어 찾아봅니다. 강점이라 생각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good.
뭐, 잘하지도 좋아하지고 않는다면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풍경과 자연, 시간의 흐름대로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취업의 과정, 매일의 업무일지, 자격증 취득 방법, 육아일기 등 이 그것입니다. 순서가 있는 글 쓰기는 서툴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오히려 전문가가 쓴 글이 아니라 맹신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직접 찾아보고 연구하는 시간들이 반면교사와 집단지성이라는 선생님을 만듭니다.
대화
대화 집단은 열려 있고 자유롭다. 그야말로 비어 있는 공간이다. '여가 leisure'라는 단어도 '빈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가의 반대말인 '바쁘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 'occupied'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공간이 '차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대화 집단에서는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는 빈 공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 데이비드 봄, 대화란 무엇인가
많은 글을 쓰는 만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빨리 걷어내는 방법은 우선, 다 써놓고 다시 수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쓸 때는 신나게 쓰자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쓰면서 지우게 되면 지우는 순간의 새로운 생각마저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더 이상 연필로 글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타자로 생각의 속도마저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정이 쉽고 빠르니 걱정 마시고 대화하는 것만큼이나 편하게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대화가 어려운데요?’라고 하신다면, 어려우니까 글로 표현해보는 것은 또 어떤가요?라고 전달하고 싶습니다. 왜 나는 그때 침묵을 해야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부터요. 침묵의 이유를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저는 벌써부터 설렙니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몇 분을 몇 시간을 누군가에게 침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요. 침묵은 금언으로 재탄생되는 순간을 기약해봅니다.
친구들과 했던 이야기 중에 반응이 좋은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보는 것은 어떤가요.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부끄럽다면 ‘그 또는 그녀’로 시작해 봅니다. 갑자기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데요.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재미를 느끼셨다면 경험 위주의 글쓰기를 넘어 소설의 창작자가 되는 것은 어떨까요? 만들어내는 글쓰기의 장점은 새로운 세상이 현실로 나타날 때 내 상상이 얼마나 유용했는가, 낙천적 생각과 긍정적 행동이 삶의 기틀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침묵의 자리에, 기다림의 시간에, 메모장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 메모장을 켭니다. 말하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지 받아 적습니다. 키워드 또는 감명 깊은 문장을 그대로 씁니다. 기다림의 시간에도 똑같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대화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씁니다. ‘ 오늘 이런 이야기에 사회를 보는 시선이 생겼다.’ 안타깝거나 슬픈 감정이 들 때도 있습니다. 뉴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사는 공간, 같은 나이의 친구,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 그렇습니다.
조용히 나만 볼 수 있는 글이기 때문에 메모장에 옮깁니다. 그리고 다시 그 글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메모를 한 시간과 날짜는 변화했는데 어떤 것이 달라졌는가에 대해 비평의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비평일 경우 빠른 글쓰기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내 마음 안의 분노를 글로 재빠르게 녹여냅니다. 감정이 해소됩니다. 나아가 세상이 더욱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글의 기도’가 됩니다. 당신의 글이 세상을 바꾸는데 자동 기여합니다. 복권 당첨을 염원하는 생각과 똑같습니다. 우리 아이 잘 되라는 마음과 신기하게 일치합니다.
분노를 잠재우는 글
화를 삭이는 글에는 시와 시와 시가 있습니다. 시에는 긴 문장보다 짧은 구성으로 쉼의 자리가 많습니다. 가득 쓰인 여백에 내 감정이 쉬어갑니다. 퇴고가 가장 많은 것이 시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의미를 다양하게 만들어서라고. 그래서 큰 의미를 담지 않도록 글을 쓰다 보면 솔직하게 자기표현이 됩니다. 큰 의미가 없다고 했지 의미 있습니다. 누군가가 읽게 될 나의 글에 큰 의미를 담고 싶다면 글의 무게는 무거워지고 읽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미와 의미의 연속은 그 자체로 큰 것보단 덜 큰 의미가 됩니다. 그런 글을 지양하며 이 글을 씁니다.
자기 계발은 좋지만 강요가 될 순 없습니다. 에세이는 좋지만 깨닫지 못한다면 내가 쓴 일기를 읽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쓴 글을 가장 많이 읽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누군가의 에세이에서 배우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이고, 고유의 창작물을 비난해서도 안되며,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쓴 글이 그냥 가장 재밌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썼지만 재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는 내 생활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 나인데, 내가 쓴 글은 결국 자아성찰이고 그건 자기 계발의 기틀이자 변화의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쓴 글에 마침표가 붙었는가에 대해서도 잘 보면 내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자주 쓰는 오타에 대해서도 고려할 거리가 생깁니다. 그러는 동안 글에 집중합니다. 세상의 고민거리가 아닌 글 자체에 집중하다 보면 감정적인 일이 이성적 기능으로 자리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