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 달 글 | 제목은 당근과 오이로 시작되는데...
글감까지 찾았다면 헬스 복장을 갖춰 입은 사람입니다. 옷을 갈아입은 것이 아까워서라도 운동화까지 신습니다. 신었던 운동화가 귀해서라도 운동장 한 바퀴를 뜁니다. 양말까지 신은 나를 위해서라도 건강한 요가, 스트레칭, 필라테스에 참여합니다. 글감이라는 것은 글을 편하게 쓰기 위해 재료를 준다는 것입니다. 다시 헬스장에서 주방으로 장소가 이동합니다. 당근이 있습니다. 오이가 있습니다. 김밥이 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글감이란 이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의 경험이 있더라도 그것을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제목이 주어집니다.
제목 : 당근과 오이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제목에 대한 불만부터 털어놓으십시오.
제목 : 당근과 오이는 나의 스승님
스승이라고? 생명 없는 것에? 시를 쓰라는 말인가? 일기를 쓰는 아이의 기분이 될 뻔했는데 문학 도사가 될 것 같아! 이렇게라도 흥미롭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제목 :당근님과 오이의 계절에 쓰는 글
계절에 쓴다. 당근에 님까지. 제목을 쓴 이 작자는 신선놀음을 하고 싶은 건가? 아차차 아직도 화가 덜 풀렸다!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강제로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기에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불만으로 시작된 글을 씁니다. 불만이라는 것이 글감이 되어준다고? 아, 여태 내 모든 감정이 글의 재료가 되는구나. 재료로 치면 소금이려나? 아니면 내가 음식을 태운 것과 마찬가진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됩니다. 감정이란, 마인드 컨트롤이 되는 것이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글 쓰기로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이 제목이 주어진 것처럼 내 삶이 주어진 것인데 나는 내용을 채워 넣어야만 한다! 아니 알차게 산다. 내용이 존재하는 것은 제목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노라?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긴다. 정확히 우리는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묻습니다. 빠르게 써야 하나요? 천천히 쓰면 안 되나요? 빠르다는 것은 흰 종이 앞에 멈춰 서 있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빠르다는 것은 지하철만큼이나 정확하게 도착하겠다는 것입니다. 빠르다는 것은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늦지 않는다는 반대의 것을 이끌어 냅니다. 야호! 약속을 잘 지키시나요? 그렇다면 오이의 계절에 잘 도착해 있는 것입니다. 당근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당신님, 사랑합니다.
도넛이 말하는 기분을 애써 지웁니다. 아까 오이와 당근님으로부터 무언가 생명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소중하지 않은 게 얻게 됩니다. 그래도 이상합니다. 식자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과일의 껍질마저 그저 버려지는 것이 없어질 만큼 요리기구가 생겨납니다.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글이 되려면 스토리 텔러의 마음을 가집시다. 종이야 너는 뭐니? 나는 A4다. 그건 크기가 아니니? 나무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 내가 너를 무어냐 물을 때 너를 피와 살이라고 하는 것보다 인간 또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겠니. 160cm라고 한다면 인간의 세상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상형이 키가 큰 사람이니? 키가 아담한 사람이니?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도나츠가 듣습니다. 도넛이 도나츠가 될 때는 엄마와 어머니의 차이점으로 사뭇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도나츠는 시장에서 만납시다. 도넛은 가게에서, 점원이, 1+1의 매대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글 쓰다가 해탈하면 글도 내 생각도 의미가 없어질 것 같다. 모르는 게 낫겠다. 깨달음의 세상은 토스에 현금이 쌓이는 것이다. 도나츠와 도넛의 개수를 고민하지 않고 사는 일이다. 무방무제와 로우 슈가를 사용하는 지구사랑, ESG 경영 이 되는 곳에서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일이다. 슬퍼하지 마라. 슬퍼하라. 슬픔이 없다. 슬퍼해도 된다. 슬프다. 나도 슬퍼.
글쓰기가 상관없는 곳에서의 활동이 경험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글을 잘 쓰는 혜안이 있는 인물로 등재된다. 꿈을 꾸십시오. 현란하게 크게 높게 아름다운 세상을. 그것보다 좋은 일이 없습니다. 왜 사냐건 물을 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알고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힘이 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활자로 만나고 마음속에 자동 하이라이트가 쳐져서 힘이 들 때마다 힘이 들면 드라지! 이것 또한 내 성공 경험담에 불과하니까! 하며 이야기로 만들어지기 때문이거니와.
내가 쓴 글이지만 이해하기 힘들 때
내가 쓴 글이라도 이해받기 힘들 때
또 읽게 됩니다. 고칠 것이 무엇일까? 독자층을 잘못 잡은 것인가? 나를 위한 글 쓰기가 아니라면 무시해도 좋을까? 조금 더 쉽게 쓰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서도 이해받기 쉬운 글을 쓸 수 있다!!! 이 작가의 글 쓰는 방식은 원래 이렇다. 그려려니 한다. 그렇다면 문해력과 상관없는 책 구입이 시작된다. 어려운 책은 어려운 책대로 가치 있다. 쉽게 읽히는 책은 동화책이 아니다. 피카소의 눈코입과, 몽크의 절규에도, 모나리자는 가만히 있는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귀걸이가 녹슬었다.
그럴 수도 있지의 수도는 대전에서 서울로 갑니다. 서울 사람들은 미국인입니까?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입니까? 비공개의 글이 될지도 그럴 만도 그럴 수도 있었지만. 만도의 순서가 위아래 바뀔 때. 아픈 말을 못 할 때 저의 글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됩니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