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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화답 | 모든 질문에 답할 것

by 드아니



모든 질문에 답할 것


뜸을 들여도 좋습니다. 점점점으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도저히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지 못하겠습니다.’로 말하셔도 좋습니다. 말이 아니라 글로요. 그리고 질문을 변형하는 방법을 써도 상관없습니다. 문제는 글을 빠르게 쓰는 것이지 정확한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모르는 것은 모르지만, '아는 것은 대답하자'입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의 블로그씨 질문


최근 블로그 씨는 신조어에 대한 퀴즈를 내주었지만 글감은 신조어 그 자체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최초의 질문은 연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다섯 가지 퀴즈에 대한 답을 겨우 2가지 밖에 알지 못했고 더 많은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신조어에 관하여
요즘 신조어는 보통 줄임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에이 몰라’ 하며 넘어가지 않고 한 번 맞춰보려 했는데 고작 2개 맞았어요. ‘웃안웃’이 제일 인상 깊었어요. 2가지가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계획하기, 정해진 운동을 하는 것. 뭐 2번째(좋댓구알)는 많이 봐서, ‘댓글’의 ‘댓’으로 시작하는 언어가 잘 없기도 하고… 유일무이하지 않나 싶어요.

오다망에는 ‘망’이 들어가서 부정적인 언어라고 생각은 했는데 모두가 공감이 되는 쉬운 말들이 많이 줄여졌구나 싶었어요. 오늘 알게 된 언어 중에는 ‘오우완’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오목완으로 얘기해도 통용되겠죠? 오늘 목표 완성! 휴, 이번 주 캘박 하려니 ㅋㅋㅋㅋ 재밌습니다.(웃안웃)


출처: 네이버 블로그의 블로그씨 질문 / 수입맥주 4캔 10000원



누군가 운동 왜 안 하냐고 묻는다면

글로 갚는다


이 글은 '운동 왜 안 하냐'는 대중적인 질문으로 시작된다. 만약에 제목을 ‘운동 왜 안 해?’라고 높임말을 쓰지 않고 반말로 했을 경우 연인의 잔소리로 들리거나 친한 친구의 관심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나는 뜨끔 하려다 말았다. n연차 운동관리사가 쓴 것으로 만들지 않았더니 질문이 ‘운동 왜 해? 몸 만들 거야?’라고 들렸다. 건강보다 미의식, 보이는 것들에 취중 했던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매일 줄넘기를 했다. 내 인생에 everyday라고 할 수 있으려면 주 7일 제라는 말인데 한 동안 그렇게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운동이 그저 좋은 의미로만은 안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생각에 의지를 담으면 주최적인 삶을 살 수 있으려나? 요즘은 남처럼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다. 내 생각에 주관적 해석을 할 수 있을 만큼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무 생각이나 행동으로 옮기지 말라고. ‘주최적으로 살아보자!’라고 브레인을 기획하는 거야.”


even if 악마는 신중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말했고 나태를 가장 좋아한다.


사실인지는 모른다. 나태와 신중의 엇비슷한 점은 그저 존재하고 있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나태는 느려 보이고 신중은 믿음직해 보인다.


오래전부터 나는 신중과 더불어 나태의 가치를 왜 이렇게 상장 주식으로 만들고 싶은지. 아직은 비상장일 뿐이지만 기업가치는 1조라고 여기고 싶은지. 나만 그래? 사실 성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만큼이나 나태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 똑같이 진급하더라?


내 주위를 둘러보면 1년 이상 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실업급여의 기준도 낮아졌다. 연애를 그렇게 하기도 한다. 그저 나태하게 옆에 있다 보면 내 사람이 되는 것. 가족이 되는 것. 그런데 그게 사랑이야?


“이제 와서 보면” 연애와 사랑이 달랐던 20대 초반이 있었기에 사랑만큼은 나태해지지 않으려 했다. 나의 같은 경우! 열성적 연애를 하고 나면 한 사람과 어떻게 하면 열성적 연애 같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꿈꾸게 됐다. ‘언니,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돼?’ 헤드라인에 결혼 이야기가 많다.




따라 쓰기에 앞서


영어뉴스 헤드라인을 따라 쓰다가 오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신문사의 위상과 가자라는 전문직 종사자의 권위에서 오타를 봤다는 것은 저에게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오타 인지도 처음에 몰랐다는 것입니다. 철자 하나의 문제였는데 'y'하나가 더 들어간 것입니다.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 그대로 따라 썼습니다. 영어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이 없으니 그랬던 게 아닐까요? 오타가 물론 있지만 그건 사람의 실수인데 내가 그것까지 따라 그대로 쓴다면 바보가 되는 건 저입니다. 그런데도 쓴 제가 우습고 그 탓을 잠시 신문사에 보냈다는 게 우스워요. 그런데 이런 오타야 말로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도 있다는 게 아닐까요? (브런치에서는 맞춤법 검사기가 모바일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다시 초월, 유용한 흑역사


흑역사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글을 쓰고 난 뒤 며칠이 지나 혹은 몇 달이 지나서 보면 내가 왜 이런 글을 썼는가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에서 글을 올렸더라도 부끄러움은 내 몫인데 누군가 볼 수도 있는 곳에 쓴 글들을 다시 보는 일은 그 부끄러움을 초월하게 됩니다. 그것은 성장했다는 증거입니다. 반면에 빛인지도 몰랐던 흑역사도 있습니다.



Black becomes a light!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다 흙이라 하는고야.

두어라 알 이 있을 것이니 흙인 듯이 있거라.

/ 옥에 흙이 묻어, 윤두서


/… 그녀는 훌륭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어떠한 어조를 사용하는지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라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통해 한 사람의 인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그녀는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저는 당신을 이러하다 생각했는데 …” 의 메시지였다. (중략) 화를 내지 않으며 말하는 것이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가식적인 행동이었다 할지라도 그 자신이 *권세가도 아닌데 누가 그런 참언을 대필해 주었겠냔 말이다. <2018, 비록 흑역사라 할지라도>


*권세가: 권력과 세력이 있는 자, 벼슬 높은 나리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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