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_상미 사람들(8)
※<상미 사람들>은 픽션입니다. 현실에 비슷한 일이 있다면 이는 우연입니다.
지하로 내려가 가는 계단은 어두웠다. 두 층 정도 내려왔을까. 문이 보였고,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째깍째째깍 째째깍째깍..
불규칙한 시계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문 안쪽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종류의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벽에 걸린 시계 뿐만 아니라 바닥에서 시계가 쌓여있었다. 거대한 시계공장이었다. 어둑어둑한 가운데 천장에는 꽤나 넓은 간격으로 백열등이 걸려있었다. 예슬이에 대한 걱정보다 이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커질 때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봉준아, 여기 왜 왔어”
엄마였다. 당황스러웠다. 분명 아침에 출근한다고 했던 엄마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던 것이다. 새로운 곳에 출근하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어딘지는 몰랐다. 방송작가였던 엄마는 새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갈 때면 전국 각지를 다니셨다. 지난달부터 새 직장을 간다고 해서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가는 줄만 알았다. 어디냐고 묻는 것은 그동안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가 방송국인가. 카메라 한 대 없다. 온통 시계뿐이다. 엄마 손에는 손바닥 부분만 시뻘건 목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엄마는 놀란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납땜 냄새가 온 몸 가득했다. 낯설고, 불편했다. 어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예슬이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고개를 획 돌려 예슬이를 쳐다봤다. 예슬이는 방방 아줌마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내가 정신이 팔린 사이에 방방 아줌마는 예슬이를 벽에 붙어 있는 간이 침대에 눕혀 놓은 상태였다. “엄마, 찢어졌어?” 본인의 머리 상처에 대해 말했다. “살살 놀지 이 년아, 엎드려 누워봐” 아줌마는 익숙한 듯이 예슬이의 뒤통수를 꿰맸다.
예슬이가 누워있는 침대 주변에는 비디오테이프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잠시 호기심이 생겼지만, 갑자기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신경 쓰지 못했다. “일단 집으로 와” 목장갑을 낀 엄마가 인상을 쓰며 손짓했다. 엄마 뒤를 따라 지하계단을 다시 오를 때, 공포감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찝찝함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화를 냈다. 왜 바로 집에 가지 않고 말도 없이 둥지아파트까지 올라왔냐는 말이 요지였다. 고작 집에서 3분 거리에 놀러 갔다고 화를 내다니. 반항하겠다는 마음으로 빤히 엄마 얼굴을 바라봤다. ‘엄마도 어디서 일하는지 얘기 안 했잖아’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다.
그때 아빠가 집에 왔다. 초저녁인데 술에 취해 계셨다. “한 잔 마시고 왔어료” 혀가 꼬부라지는 말투였다. 정말 한 잔만 했을 것이다. 아빠가 술에 취한 것을 처음 본 날이다. 아침에 말끔했던 정장차림은 없었다. 머리는 다 헝클어졌고, 셔츠는 다 바지에서 빠져 나와있었다. 흰 셔츠에는 해물탕인지 라면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색깔의 얼룩이 군데군데 있었다. 넥타이는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아빠의 우스운 꼴을 보고 있자니 ‘공부 말고 술’이라고 뒷담화를 하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너어~ 엄마 또 화나게 했구나, 엄마 말 좀 잘 들으라뉘까”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방방 타고 놀다가 엄마를 만났을 뿐이야”
“뭐라? 방방을 어디서 타?”
“저기 둥지아파트에 있어”
퉁명스러운 말투로 방방의 위치를 말하자 갑자기 아빠의 풀린 눈이 날카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