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내 위치는 어디인가

단편소설_상미 사람들(6)

by 글쓰는 백구

<상미 사람들>은 픽션입니다. 현실에 비슷한 일이 있다면 이는 우연입니다.




학교에 있는 내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집에 잘 들어갔냐고 묻는 영진이가 낯설게 느껴졌다. 최근 뉴스에서는 한 여자 연예인의 섹스스캔들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TV를 볼 때만 해도 ‘섹스스캔들’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연예인이 우제희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앵커는 “이 섹스비디오테이프를 유통시킨 범인을 수배 중이다”라고 말했다.


범죄라는 말이었다. 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범죄는 도덕의 하한선이다”라고 했다. 교실 문을 열고 영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이 뉴스도 함께 떠올랐다. 결국 나는 어제 도덕의 하한선을 지나간 친구와 범죄 피해자인 그 연예인을 만난 셈이 됐다.


아빠는 형법학자다.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한 것도 그 탓이다. 그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후로 대학교 시간강사로 꽤 오래 일했는데 정교수가 되지 못하고 학교로부터 계약을 해지 당했다. MBC에서 다큐멘터리 작가였던 엄마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해고됐다. IMF사태의 피해자였다.


방송국에 다니던 작가아줌마들이 전부 해고됐다고 했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처음 뉴스에 등장했던 시기다. 부당해고라고 시위하는 작가들이 언론인터뷰에 나왔다. 회사는 경영정상화라고 말했다. 엄마가 회사에서 잘렸는데, 그 회사는 그게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 상미로 오게 된 이유는 두 분 다 직장이 없어지면서 빚을 감당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엄마는 아빠를 원망했다. “공부를 할 시간에 교수들이랑 술 한 잔을 더 했어야지” 아빠는 술을 못 마신다. 대출 이자를 내는 날이면 어머니는 내 방에 왔다. 자려고 누운 나를 보며 아빠 욕을 했다. 공부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공부는 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신문은 보라고 했다.


“너가 이 세상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아야 해”


지겹도록 이 말을 들었다. 위치를 알아야한다는 말을 아빠도 자주했다. 공부를 해야 자신의 위치가 바뀐다고 했다. 도대체 내 위치라는 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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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상미에서 내 위치는 알았다. 둥지아파트부터 가장 아래에 있는 영진이네 집까지를 일직선에 놓고 1계단부터 10계단까지로 나누었을 때 우리집은 2계단쯤에 있었다. 한 계단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1계단과 2계단은 차이가 있었다.


그중 1계단은 조금 남달랐다. 2계단보다 더 비싸거나 큰 집이 아니었다. 그런데 단순하게 꼭대기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밑에 사는 사람들을 다르게 대했다. 1계단에는 오로지 둥지아파트 단지만 있었다. 아파트 양 옆으로 같은 높이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고, 아파트 넘어는 낭떠러지뿐이었다.


그 아파트에 사는 예슬이네 놀러 간 적이 있다. 예슬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곳에 살았다고 했다. 한 번도 이사를 가본 적이 없어, 전학 온 나를 부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예슬이를 따라 둥지아파트 근처에 도착했을 때 놀란 점은 울타리도 없는 아파트에 경비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입구 양쪽 끝에는 노란색과 검정색이 사선으로 스크류바처럼 색칠이 되어있는 1m 높이의 기둥이 서있었다. 상미에서 가장 가파른 구간이 2단계인 우리집부터 1단계인 둥지아파트의 그 기둥까지 올라가는 길이다. 이런 언덕을 매일 오르는 예슬이가 왜 뚱뚱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기둥 근처에 가자 경비 아저씨가 나왔다. 햇볕이 하늘에서 화염방사기를 쏘는 것처럼 뜨거운 탓에 아저씨는 바닥 열을 식히기 위해 아파트 입구 주변에 길다란 초록색 호스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까맣게 그을린 피부로 모자도 쓰고 있지 않았다. 하늘색 상의에 파란색 바지는 유니폼으로 보였는데, 내가 입은 교복과 비슷했다. 예슬이는 가파른 언덕빼기가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면서 나보다 늦게 올라오고 있었다.


나를 먼저 본 경비 아저씨는 웃는 것인지 찡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낮게 깐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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