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미 사람들은 다 아는 컨테이너

단편소설_상미 사람들(9)

by 글쓰는 백구

<상미 사람들>은 픽션입니다. 현실에 비슷한 일이 있다면 이는 우연입니다.



퉁명스러운 말투로 방방의 위치를 말하자 갑자기 아빠의 풀린 눈이 날카로워졌다. 아빠는 내가 아는 한 언제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개인의 삶의 위치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공부라며 뇌에 지식 축적을 강조하셨던 분이다. 물론 그 생각은 평생 들어도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공부는 단언컨대 쉬웠던 적이 없다.


오히려 범죄자가 더 살기 편해 보였던 적도 있다. 뉴스를 보면 카세트테이프를 불법으로 리어카에 두고 팔다 잡혀가도 벌금 몇 푼이면 풀려난다고 한다. 불법으로 사람을 고용하거나, 불법적인 상품을 판매해도 벌금이 다라니. 벌금 내고 계속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상미에 이사온 뒤로 아빠는 공부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아빠가 말했다.


“봉준아, 이건 꼭 지켜라. 엄마 일하는 곳에 다시는 가지 않기로 해”


낮은 목소리, 날카로운 톤.. 낯설었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날 밤 잠들 때까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잠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낯선 기분이었다.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왔다. 아빠 욕을 하러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옆에 눕더니 나를 끌어안았다. 아무 말 없이 잠시 흐느끼더니 눈물을 쏟았다. 이 맥락 없는 전개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멍하게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일상으로 돌아왔다.

KakaoTalk_Photo_2019-11-17-18-21-29-65.jpeg

로얄빌라 뒤에는 대영주택이라는 빌라 단지가 있다. 로얄빌라와 건축 디자인이 똑같다. 갈색 직사각형 벽돌로 지어졌고, 옥상 부분에는 벽돌보다 조금 더 진한 갈색의 기왓장이 올라가 있다. 옥상에는 파란색 물탱크가 있고, 빨래들이 널려있었다. 아무런 차이가 없다. 멀리서 보면 같은 빌라 단지로 보인다. 그냥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그것도 단지라고 입구 부근 건물에 간판이 있다.


그곳에는 같은 반 친구 만덕이가 살고 있다. 하루는 예슬이, 영진이와 함께 만덕이를 따라 대영주택 옥상에 갔다. 만덕이는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한 층에 15평짜리 두 세대가 있는 작은 건물의 옥상에서 말이다. 만덕이는 전속력으로 달리더니 옆 건물로 뛰었다. ‘쿵’ 하는 소리가 단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세 명이 한꺼번에 옆 건물로 뛴 만덕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미친놈아!”


상미 언덕배기에 위치한 빌라들은 전부 밀집해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약 2m도 채 되지 않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4, 5층 건물 옥상에서 뛰는 짓은 정상이 아니다. 만덕이는 우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겁쟁이 새끼들아, 빨리 넘어와” 영진이의 승부욕을 건드렸다.


“아씨, 간다”


영진이는 운동신경이 그리 좋지 않은 친구다. 아슬아슬하게 옆 건물 옥상 기왓장을 살짝 밟고 넘어갔다. 그러고는 착지를 한 발로 하는 바람에 바로 넘어졌다. 나와 만덕이는 키득거리며 영진이를 보고 손가락질을 했다. 웃고 있던 사이 예슬이가 사라졌다. 뒤를 돌아보니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육중한 몸에도 불구하고 예슬이는 아주 부드러운 점프로 손쉽게 옆 건물로 넘어갔다. 착지할 때 소리는 더 컸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를 놀렸다.


“봉준아, 상미 사람은 뛸 수 있어야해”

“나는 상미 사람이 아직 아닌가 봐. 계단으로 갈게”

KakaoTalk_Photo_2019-11-17-18-21-29-19.jpeg

그깟 승부욕보다 내 목숨이 중요하다. “에잇, 저 애늙은이” 옥상에서 뛰지 않았다고 애늙은이라 불리는 상황이 유치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칭찬하며 내려왔다. 그 놈에 ‘상미 사람’이 뭐라고. 강남에 살 때도 그랬다. 그때 친구들은 내가 전세 산다고 강남이 아직 아니라고 했다. “그건 전세라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임대차 계약 방식을 탓해야지” 혼자 떠들어봐야 그냥 돈 없어서 남의 집에 사는 애로 취급할 뿐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상미의 로얄빌라는 분명 아빠 명의로 되어 있는데, 이번에는 옥상에서 뛰질 않아서 상미 사람이 안 된다니.


만덕이의 대영주택 투어는 멈추지 않았다. 지칠 줄 모르는 만덕이는 뒷길로 안내했다. 이 뒷길로 나오면 바로 정면에 둥지아파트 언덕이 보인다. 그 언덕 오른편에는 주택가와 산의 경계가 있다. 포장된 좁은 도로를 건너면 바로 가파른 언덕에 갈색 흙 위이 뒤덮혀있고 우거진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그곳에는 파란 지붕이 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있었다. 상미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컨테이너였다.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서인지 경사진 산에 절반이 파묻혀 있다.


우리집 창문으로도 보이는 저 컨테이너를 보고 별별 생각을 다 했었다. 소문도 무성했다. 노숙자가 산다는 얘기부터 사람 시체가 쌓여있다는 얘기까지 상상 가능한 모든 이야기가 친구들 사이에 떠돌았다.


만덕이는 컨네이너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건물 옥상을 날아다니는 만덕이에게 아무리 공포스러운 컨테이너이라도 문을 열어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컨테이너를 정면에서 볼 때 오른쪽 끝에 문이 있었다.


“문 연다”


만덕이는 문을 활짝 열고 문 뒤로 숨었다. 문 안쪽에서 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컨테이너를 보기는 커녕 숨쉬기조차 어려울 만큼 먼지가 쏟아졌다. 한참을 콜록거리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예슬이가 안으로 들어갔다.


“예슬아 괜찮아?”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keyword
이전 08화지하 시계공장에서 엄마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