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들 Aug 10. 2022

그림 주문을 받다.

아직은 부담스럽다고요

형수님은 그림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를 느낀다고 했다. 늘 무언가에 쫓기어 한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모습만 보아서 삭막하고 건조하게만 느껴졌는 데 의외였다. 현직에 있는 형수님이 휴대폰을 늘 만지작 거리는 이유는 행여 고객으로부터 전화라도 오면 놓치지 않으려는 '즉시 대기모드'의 행동이지만 일종의 강박이었다. 습관처럼 만지작거리면서도 틈틈이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본인만의 휴식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형수님이 해바라기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해바라기 그림을 집안에 걸어두면 재물이 들어온다는 속설을 어디서 들은 모양이었다.  그런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는 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사동의 화방에서 해바라기 풍경화를 보았던 게 떠올랐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많은 그림들과 함께 해바라기가 재물을 의미한다는 내용들이 풍성하게 검색된다. 전문작가들이야 얼씨구나 좋다 할지 모르지만 사실 아마추어 작가에게 그림 요청은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창의성을 발휘하기에도 미흡하지만 그림 소재며 그림의 사이즈, 종이의 재질.....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

어찌 되었든 신중을 기울여 해바라기 소품 하나를 완성하였다. 창고에 박아두었던 수채물감을 오랜만에 꺼내어 곁에 두었던 시간이었다. 소품을 완성하고 액자에 넣고는 사진을 찍어 형님에게 보냈다.  사실 이렇게 된 것은 형님의 동생 자랑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취미로 간간이 그림을 그리고 자랑삼아 SNS에 올리곤 했었다. 그 무렵 그림 요청이 온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내세울게 변변찮은 동생을 어떻게든 돋보이게 하려고 포장하여 자랑하셨을게 분명하다. 

그림을 보고 나서도 어찌 된 건지 형님은 이렇다 할 말씀이 없었다.  나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는 데 퇴짜를 맞은 게 분명하였다. 나중에 큰 댁을 방문하였을 때 벽에 커다란 해바라기 농장 풍경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형님 말로는 여러 송이 해바라기 풍경을 원했는 데 그게 제대로 전달이 안되어 중간에서 매우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해바라기 사건은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지금 그 해바라기 그림은 우리 집 거실 한쪽에 걸려있다. 나는 가끔 해바라기 그림을 보면서 재물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이제나 저제나.......


며칠 전에 형님 부부를 멋진 식당에 모실 일이 있었다. 마침 잔뜩 기대하고 오신 형님 부부에게 나는 앉자마자 흥분된 어조로 사나왔던  일진(日辰)을 설명하였다. 무더위와 싸우며 그림을 그린 일과 저녁이 되도록 점심식사를 거른 일 등 에피소드를 거품을 물어가며 얘기하였다. 그날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더니 형님 부부는 토닥이며 멋지다는 칭찬으로 나를 위로하였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형수님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보고 있으면 힐링된다는 풍경사진이었다.

  " 이 사진만 보면 그렇게 마음이 안정될 수가 없어요. 작은 아빠, 이 거 그려주면 안 돼요?"

실로 난감하였다. 일단 그릴만한 실력도 안 되었지만, 얼마 전의 해바라기 그림 사례도 있고 해서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면전에서 거부하기는 더욱 어려워 아내에게 사진을 보내주시라 하고는 슬쩍 넘어갔다.


집에 와 사진을 다시 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노을빛이 짙게 드리운 라벤더 농장에 덩그러니 집 한 채. 평화롭다. 형수님 말대로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이걸 그림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아내에게 수 차례나 어렵다는 뉘앙스로 얘기를 했다. 그런데 나 몰래 아내는 그 걸 다시 형수님께 전달했던 모양이다. 안 그려줘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라는 답이 왔다고 했다.

며칠을 그렇게 더 보내고도 머릿속에서 그림 생각이 떠나지 않아 버틸 수가 없었다. 부담 없이 소품이라도 그려보기로 했다. 정 안되면 말면 되지. 요청사항이 구체적이지 않으니 종이 선택, 그림 사이즈 등은 내 맘 내키는 대로 하였다. 평소 그리던 펜 드로잉 스케치 북에 스케치를 하고 아쿠아 색연필로 채색을 한다.  바탕은 물을 칠해 수채화 느낌을 내고 구체적 묘사는 색연필로 마무리를 하였다. 그림만 달랑 전할 수 없어서 사인으로 마무리를 하고 난 후 액자를 구입해 끼워 보았다.  형식을 갖추니 서재나 책상 위에 두면 소품으로 어울릴 것 같았다.


문제는 주문 당사자인 형수님 맘에 드느냐 였다. 이번에도 조심스럽게 형님께 먼저 보냈다. 동생 바라기 형님은 무조건 오케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다시 아내를 시켜 형수님께 보내고 반응을 보라고 했다.


잠시 후 카톡 음이 울렸다.

 " 와! 대박, 너무 멋있어. 감사 감사하다고 전해줘. 동서 고마워, 힘들었을 텐데 맛있는 거 사 줄게"

이전 06화 가을에 걷고 싶은 산책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