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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들 Aug 12. 2022

그림 판매

세렌디피티, 내 그림도 입양되네요.


그동안 틈틈이 습작을 해왔던 펜 드로잉이 꽤 쌓였다. 소품이지만 단 기간에 스케치 북 4권을 꽉 채웠으니  나의 그림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잘 알고 지내던 시니어 모델인  모 대표께서 플리마켓을 열었다. 시니어 모델 여럿이서 뜻을 모아  다양한  물품들을 구비하여 운영하는 행사였다. 이 행사를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해 나에게도 펜 드로잉 소품 몇 점을 출품하도록 권해 왔다. 뭐 내놓기가 부끄러워 한동안 망설였으나 지속되는 제안에 마지못해 슬그머니 그림 4점을 보내드렸었다.  판매 가격은 작가가 아마추어인 데다 행사 속성(플리마켓) 상 비쌀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낮은 가격으로 제시하여 체면 구길 수도 없고 해서 1점 당 5만 원으로 했다. 


스케치 북에서 한 장씩 조심스레 떼어 내는 데 어찌나 안쓰럽던지, 마치 딸아이 잘 키워 시집보내려는 아빠 같은 심경이었다.  네가 이제 내 곁을 떠나는구나! 가슴이 먹먹했다. 사이즈에 맞는  액자를 구하느라 시내를 헤매던 일이 생각난다.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 지상 최고의 미인으로 탄생하듯이 내  그림들도 액자에 담길 때 비로소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가치를 더 부여받았다. 제 옷을 입으니 그림이 달라 보인다.


이렇게 해서 펜 드로잉 작품 16번 21번, 22번, 58번 4점이 출품되었다.


사실 이번 작품을 플리마켓에 내놓게 된 것은 마침 당시에 읽던 책 #세렌디피티 코드의 영향도 있었다.  뜻밖의 행운인 세렌디피티는 우연한 기회와 노력의 상호 작용이라는  주장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작은 움직임이 나중에 어떤 큰 행운을 가져올까? 하는 호기심, 기대감 뭐 이런 사심이 작용하였던 게지.


작품을 보내고 나는 곧  바쁜 일상으로 되돌아와 그런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느새 플리마켓이 끝나고 정산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내가 보낸 작품 중에서 #21#22#58 이렇게 3점이 주인을 만났다.  



사실을 얘기하자면 당초 플리마켓 참여를 제안했던 대표께서 작품이 맘에 들어 직접 2점을 구입하였고, 나는 그것이 고마워 흔쾌히 한 점을  선물한 것이 전부다.  처음부터 그림 한 점은 선물로 보낼 계획이었는 데 잘 되었다. 세 작품은 각각 침대 맡, 서재의 책상, 거실에 놓여 집안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는 후일담을 들으니 세렌디피티의 기적은 없었지만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올 #16 (금강소나무)은 내 서재에서 피톤치드를 뿜으며 나를 지켜보겠지.



통장에 작품 대금이 입금되었다. 뿌듯했다. 나는 이 돈을 매일 아침 달라지는 모습으로 인사를 하는 귀여운 손자의 분유 값으로 딸에게  바로 송금하였다. 손자 분유 값 정도는 댈 수 있는 할아비가 되려는 나의 첫걸음은 이렇게 실현되고 있다. 이 정도면 나이 들어서 잘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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