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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 Sep 10. 2024

신뢰 대 불신 단계

 말 못 하는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배가 고픈지, 어디가 불편한지, 원하는 게 있는지. 다른 사람이 보기엔 똑같은 표정과 똑같은 울음으로 들리겠지만, 뛰어난 관찰자인 엄마들은 꽤나 쉽게 아기의 마음을 알아차린다.

물론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다. 정말 아프거나 불편한 게 아닌 이상, 갓난아기의 표현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알아채야 하는 일이다. 작고 약한 아기들의 울음은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소화가 다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가 고픈 줄 알고 분유를 또 먹이면 구토를 하거나 배앓이를 할 수도 있다. 땀이 난 상태로 그냥 두면 금세 열감기가 올 수도 있고, 기저귀는 세균 감염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늘 체크해서 제때 갈아줘야 한다. 여기서 건강은 비단 신체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엄마의 세심한 관찰은 아기의 심리적 건강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리슨에 따르면, 0~1세는 신뢰 대 불신 단계로, 이때 형성되는 신뢰감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밑거름이 된다. 특히 엄마가 아기의 신체적,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은 신뢰감 형성에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때문에 아기가 무언가 의사를 표현할 때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는 것은 욕구를 해소시켜 줄 뿐 아니라, 사회성까지 길러주는 일인 것이다. 그때그때 필요한 걸 해결해 주는 엄마에게 아기는 무한 신뢰로 보답해 준다.




 일로 만난 사이에도 신뢰가 필요하다. 리더십 강의나 책에서 한결 같이 강조하는 것 역시 바로 이 신뢰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업무 지시나 피드백에 대해 팀원들이 납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갓 팀장이 되었을 때 업무 지시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내 입장에서는 그 일이 팀원이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포함되는 범위라 생각했지만, 팀원은 무관한 업무를 떠맡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결국 나는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한 것이다. 업무 지시뿐만 아니라 피드백을 주는 것도 불안 불안했다. 피드백을 하면서도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말은 점점 길어지고, 논점은 산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혼란스럽기도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다. 이 친구들이 나를 믿을만한 구석을 보여준 적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팀장과 팀원 사이의 신뢰 형성도 마치 영아기의 신뢰 대 불신 단계와 유사할 수 있다. 팀 세팅 초기에 형성되는 서로 간의 신뢰가 그 조직의 앞날에 큰 영향을 미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아기에게 필요한 것을  살피며 충족시켜주는 엄마처럼, 팀장도 팀원들의 세심한 관찰자가 되면 되지 않을까?

팀원들마다 일하는 방식도, 조직에 바라는 것도, 직업관도 다 다를 것이다. 나는 그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과,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팀원 한 명 한 명의 성향을 파악하며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성향과 연차, 일해 온 환경이 다 다른만큼 업무 지시나 피드백 방식도 달라야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A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아직 부족하구나. 수시로 업무를 살펴보고, 잘하고 있다는 피드백도 틈틈이 주어야겠다.’

‘B는 여러 부서와 협업 시 커뮤니케이션에 부담을 느끼는구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엔 개입을 해줘야겠네.‘

‘C는 방식이 나와 좀 다를 뿐이지 여러 방법을 시도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네. 더 자유도를 주고 나아진 점은 놓치지 않고 격려해 줘야겠다.’

그리고 실전에 적용하며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피드백에는 내 의견을 전하기에 앞서, 팀원에 대한 신뢰가 기본으로 깔려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삶의 무기가 되는 쓸모 있는 경제학>에서는, 행동경제학의 신뢰게임을 예시로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오랜 기간 주류 경제학에서 믿어온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다’라는 주장과 달리, 인간은 그렇게 이기적이지 않다고. 신뢰 게임의 참가자들은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상태임에도 그를 믿고 돈을 위탁한다. 믿음을 받은 상대 역시 그에 보답하기 위해 수익을 다시 돌려준다. 높은 확률로 내가 먼저 신뢰를 주면 상대는 그 신뢰에 응답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뢰는 주고받으면서 확장된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이 일의 적임자이고,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낼 자질이 있습니다.’라는 믿음을 주고 지지해 주면, 팀원은 나에게 신뢰로 보답해 주리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이 과정이 꽤나 자연스러워졌다. 그 노력을 알아준 것인지 이제는 팀원들도 나의 업무 지시나 피드백을 항상 믿고 따라준다.

그래도 놓치지 않고 늘 염두하려 한다. 나는 얼마나 팀원을 신뢰하고 있는가. 그리고 팀원들이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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