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간 날 때마다 글을 쓰고 브런치에 올리고 있지만 꽤 오랜 시간 멈추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브런치로부터 받았던 알람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성실한 브런치 작가들은 평생 받지 못할 알람일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바이러스를 만나는 것과 동일시되던 코로나 시기.
하고 있던 일이 갑자기 줄어들더니 다시 돌아올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 불안이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몹시 합리적이었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뭔가를 시작하자는 마음에 일을 하면서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고 자격증 공부까지... 자는 시간까지 아끼고 아끼며 공부했었다.
그러느라 정작 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 글쓰기는 저만치 뒷전으로 밀쳐졌고 브런치 업로드도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낙서를 하다가도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 머리를 흔들며 책을 펴곤 했었다.
그 상황은 내 안에서 날뛰던 불안에게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고 있다는 허세를 부리기엔 충분했지만 정작 나는 무생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를 지치게 만들어서 불안해할 힘도 없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면 초과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방향을 잃고 풍랑에 흔들리는 종이배 같았다. 무언가를 그 안에 많이 실을수록 배는 더 쉽게 젖고 흐물거리며 가라앉기에 딱 좋은 최적의 상태.
힘들지만, 공부를 마치면 보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 하지만 그게 나와 맞는 분야 인가 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만두자니 이제껏 공부하느라 들인 시간과 돈 그 모든 것이 아까워 놓지도 못하고, 맞지 않는 공부를 계속할 끈기도 없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바뀌어 종잡을 수 없던 그때
브런치에서 온 알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신기했다.
브런치는 그저 내가 쓰고 싶으면 쓰고, 시간 될 때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러 오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뭔가 관리받고 있다는 느낌이 새롭고 나쁘지 않았다.
내 글을 기다리고 있을 상상 속 독자들을 떠올리며 혼자서 뿌듯했다가 미안했다가 부끄러웠다가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종이배의 가라앉는 속도를 조금은 늦출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알람이 왔다.
글을 쓰지 않은지 210일이 지났구나...
그럼 그동안 난 뭘 했지?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 후로도 몇 개의 알람을 더 받으며 문득 첫 번째 책을 쓸 때 생각이 났다.
큰 아이가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 나를 보고 깜짝 놀라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엄마, 아직까지 그림 그리고 있었던 거야? 안 깜깜해? "
딸이 거실에 불을 켜자 눈이 너무 부셨다. 딸이 학교 가기 전부터 하던 책 작업을 날이 어둑어둑해진 줄도 모르고 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느꼈다.
한 끼도 먹지 않았지만 배고픈 줄 몰랐고, 얼마나 그리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는지 손목이 아파서 압박붕대를 뚤뚤 감고 다시 그림을 그렸던 그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콩닥콩닥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좋아하는 것을 밀쳐둔 걸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다른 보상이 필요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같은 사람인데 너무 많은 것이 달라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공부하던 컴퓨터 속 자료들을 새 파일에 모두 모아 넣었다. 파일명을 '욕심'이라고 적어 저장했다. 그 후 몇 달을 더 고민하고 나서야 그 욕심꾸러미를 비울 수 있었다.
.
계절은 어느새 가을이 되어있었다. 남은 가을을 틈나는 대로 털뭉치와 산책하며 걷고 뛰며 보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낙서를 시작했고 브런치북을 만들고 글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흠씬 젖은 종이배가 마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더디 가더라도 나에게 맞는 길을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길에 뿌렸던 과자처럼, 브런치 알람은 내가 좋아하는 세계로 돌아올 수 있게 뿌려준 바삭하고 달콤한 과자였다고 생각한다.
그 바삭하고 달콤한 길을 천천히 따라 걸으며 덜 헤매고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비슷한 고민과 불안을 느끼고 있지만 나의 집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이젠 나 스스로 과자를 뿌려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