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야금야금 점점 더 느려지고 있다.
껐다 켜봐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더니만 며칠 전 급하게 카톡 답장을 하려는데 재전송 표시만 뜨면서 오류가 계속되었다. 용량이 가득 차서일까?
갤러리에 들어가 보니 만 육천 장이 넘는 사진이 떠억 버티고 있었다. 많을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숫자로 마주하니 놀라웠다. 그때그때 뭔가를 기억에 남기고 싶어서 찍었겠지만 원하는 사진을 하나 찾으려 해도 그게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그 어딘가를 찾지 못해 결국 포기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도, 바로 프린트해서 사용하면 딱 좋을 자료가 내 갤러리에 분명 있는데, 찾을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 찾지를 못했다. 찾지 못하니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
사람들은 어떻게 갤러리를 관리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했다.
꼼꼼한 아들은 뭔가 자신만의 방법을 갖고 있을 것 같아서 물어보았다.
아들은 자신도 아직 정리 중이긴 한데 그날의 사진을 그날 안에 자신만의 밴드에 옮겨두고 갤러리 사진은 대부분 삭제한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보여준 갤러리에는 오늘 찍은 사진을 포함해서 200장 정도의 사진이 있었다. 언제든 자신의 갤러리 안에 있는 사진 중 원하는 사진을 찾을 수 있게 정돈된 아들의 갤러리가 부러웠다.
바로 밴드에 카테고리를 만들고 사진을 옮기기 시작했다. 옮긴 사진은 삭제하고, 다시 옮기기를 반복했다. 삭제를 해도 해도 줄어든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진과 영상들을 정리하면서 눈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팠다.
카페나 여행지에서 찍은 음식사진은 왜 이렇게 많은지 지우고 지워도 가득 차있는 사진을 보며, 앞으로 음식은 웬만하면 눈으로 보고 맛을 음미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사진은 찍지 말자 다짐했다.
물건을 비울 때도 그랬지만 사진 역시 비우기 가장 힘든 것은 추억이 담긴 가족사진과 연사로 찍은 털뭉치 사진이었다. 똑같아 보이지만 세밀하게 다른 귀여움이 담긴 사진을 어떻게 지울 것인가?
독한 마음먹고 연사로 찍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한 개씩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비웠고, 가족사진도 같은 날 찍은 사진 중 비슷한 사진은 한 개를 선택하고 나머지를 비웠다.
누군가 설레지 않는 물건은 비우라고 했던가? 그 말을 물건에 대입할 정도의 내공은 아직 없으니 사진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셀렘이라는 기준의 안경을 쓰고 바라본 갤러리 속 사진은 비울 것 투성이었다.
일단 한 번에 16,0000장의 사진을 6,000장 대로 줄여놓았고, 나머지 사진은 틈나는 대로 조금씩 계속해서 비워냈다. 그렇게 며칠을 수고한 결과 지금 내 갤러리에 남은 사진은 다음과 같다.
내가 원하는 만큼 되려면 아직 갈길이 멀지만 며칠 만에 만 사천장 이상의 사진을 정리했다는 게 뿌듯하다.
요즘 이직을 고민하며 결단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나를 한숨 쉬며 탓하고 있었는데 사진을 비우는 내 모습에서 행동력 있는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것 같아서 더 뿌듯했나 보다.
단순하고 가볍게 살기 위해 욕심을 내려놓아야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게 욕심이라는 걸 눈치채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미 내려놓았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다시 붙들고 있는 나를 보기도 한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니 이렇게 주변이라도 비우고 싶은 것 같다. 비울 수 있는 한 비우고 비워진 공간을 봄햇살과 감사로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