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날 광주에 갔었다.
존경하는 교수님이 살고 계시는 곳.
한번 찾아뵈어야지 하는 다짐사이로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 지금.
95세이신 교수님의 어머님이 낙서하듯 그린 그림을 따님이신 교수님이 모아서 작은 카페갤러리에서 전시를 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최대한 빨리 찾아뵙고 축하해드리고 싶었다.
숙소를 예약하고 딸과 함께 출발.
첫날엔 교수님이 다른 일정이 있으셔서 딸이랑 광주를 둘러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광주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지만 가던 걸음을 멈춰 서게 만든 건 바로 이 작품이었다.
파란색 물감을 풀어놓은듯한 넓은 원형의 공간 위에 크고 작은 하얀색 도자기 그릇처럼 보이는 것들이 둥둥 떠다니다가 잠시 부딪히면서 '창그랑' 소리를 내고는 흩어지고, 또 만나기를 반복하는 모습. 가던 길을 멈추고 우두커니 바라보게 만들었다.
배처럼 둥둥 떠있는 도자기 그릇들이 파란 물빛과 대조를 이루어 더 하얗게 빛났고, 이 하얀 물체들 까리 만나며 만들어내는 맑은 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처럼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듣기 좋은 화음을 여기저기서 섬세하게 만들어냈다.
관람자들을 위해 앉을 수 있는 자리도 있어서 한참을 앉아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둥둥 떠다니는 하얀 물체들이 부딪치고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과의 만남도 저렇게 잠시 마주치고 때가 되면 각자의 길로 흩어져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잠시 마주치며 맑은 소리를 냈음에 감사하고 떠나보냈어야 하는 만남들을 나는 반대로, 만남 자체를 피하기도 했고, 헤어짐이 두려워 떠나가는 누군가를 붙잡기도 했던 것 같다.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저 물살 때문에, 바람 때문에 만나고 헤어질 수 있음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그래도 지금은 조금씩 배워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눈 것처럼 하나의 작품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와 나눌 수 있음이 감사한 시간이었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이렇게 고마운 작품의 작가의 이름과 제목, 작품의도 또한 확인하지 못해 아쉬웠다.
더 많은 알찬 전시들이 많겠지만 이미 이 작품만으로도 내 안에 물음표와 느낌표로 가득해져서 가볍게 돌아보고 밖으로 나왔다. 밖은 눈보라가 아까보다 좀 더 심하게 내리고 있었다. 딸이랑 따듯한 식사를 하며 이야기 나눌 생각에 걸음이 나도 모르게 빨라졌다.
내일은 교수님 어머님의 전시도 보고, 교수님을 오랜만에 뵙는다는 이 설렘을 안고 나는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