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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선 Jul 15. 2024

01. 지관(止觀)이 필요한 때,

멈추어 생각하다



지관



SK 에 다닐 때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사옥이었는데,

사옥 1층에는 '지관'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고 1층 한 켠에 크게 자리잡은 도서관 이름도 '지관'이었다.


처음 그 단어를 들었을 때는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된 지관의 뜻은 이랬다.


(止)는 모든 망념(妄念)을 그치게 하여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기울이는 것이며,

(觀)은 지(止)로써 얻은 명지(明知)에 의해 사물을 올바르게 보는 것을 말한다.



"멈추어 생각하다"


그 단어의 뜻을 알게 된 후로는 그 단어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의문 1


인간은 살아가면서 어떠한 것들을 경험하고 그 경험이 쌓여 자아를 형성한다.

나는 두 회사를 다녔는데 그 두 회사의 경험은 각각 내 자아를 형성하는데 꽤 큰 영향을 끼쳤다.



“왜 일하는가?”


 스물 다섯, 취업준비를 할 때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쓰면서 유난히 신경쓰인 질문이었다. 당시 오랜 아르바이트 생활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월급"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를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얄팍한 답변을 하기가 다소 민망하고 회사는 근로자에게 단순히 따박따박 들어오는 급여 이상의 어떤 원대한 꿈을 기대하고 있다는 일종의 압박감을 느꼈다.


 '왜 일하냐고? 돈 벌려고!'


 이들이 원하는 답변은 그 이상의 좀 더 심오하고 거창한 미션이라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에 그 질문은 더욱이 어렵게 다가왔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부동산학을 전공하면서 디벨로퍼의 꿈을 갖고 이러저러한 경험과 능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귀사에서 진행하는 ㅇㅇ프로젝트에 일조하고 싶다는 식의 상투적인 답변을 했다.


 다행히 그들은 내 포장에 속아주었고 그 어려운 질문을 던졌던 회사에 입사했다.


 일은 적성에 잘 맞았고 그렇게 회사생활에 스며들 줄 알았다. 그런데 바쁘게 회사일을 하는 동안 그 질문은 잊혀지는 듯 하다가도 예고없이 불현듯 나타나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고는 했다. 단순한 호기심과 월급이라는 가벼운 이유들은 일에 이토록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고 있는 현실을 인정할만큼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되어주지 못했고,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에 상응하는 더 원대하고 거창한 이유를 찾아내야 했다.






의문 2


회사를 다닐 당시 하루의 대부분은 ‘일’이었다.


아침 7시쯤 일어나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해서 근무를 하고.. 칼퇴는 저녁 6시지만 자주 회식과 야근을 했고 그렇게 집에서 쓰러져 잠이 드는 반복된 생활이었다.


 대다수의 직장인이 그럴 것이다. 하루 8시간 이상, 그러니까 하루의 ⅓ 이상을 일에 사용한다. 이게 얼마나 큰 비율이냐하면 잠자는 시간 8시간을 제외하고 깨어있는 시간만 생각한다면 ½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일을 하기 위해 씻고, 준비하고, 식사하고, 이동하는 부수적인 시간들까지 포함한다면 하루의  상당수가 일을 위한 시간이다.


열심히 일을 하고 지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다가도 종종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다시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곤 했다.


“이게 맞는거야?”


‘일'이 삶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치 ‘일'이 내 삶을 좀먹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일’이 돈벌이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면 그 보상은 더 커야만 했고,

보상이 클 수 없다면 ‘일'에 투입하는 시간을 줄여야 했으며,

어차피 하루의 대부분을 일해야만 한다면 ‘일’의 의미는 돈벌이 그 이상이어야만 했다.


 셋 중 어느것도 충족하지 않던 그 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어지럽혔고,

그 마음은 피곤함도 고사하고 새벽에 지친 몸을 이끌고 책상 앞 모니터에 앉아 인생계획을 다시 세우도록 지시하곤 했다.






멈추어 생각하다.



그 때 나를 사로잡은 단어가 바로 '지관'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부터 마음은 이미 멈추어 생각할 시간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당장 눈앞의 과제들을 처리하는데 급급하여 그 단어가 끌리는 이유를 알지도 못한채 그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꽤 긴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후에도 이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수십 페이지를 글로 써내려갔는데 끝에는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곤 했다.


 왜 이 의문들의 결론을 낼 수 없는걸까?


그러다가 최근에 번아웃을 겪으면서 당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스스로 어떠한 사람인지 몰랐기에 그 답을 낼 수 없었다는 것을,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외부에서 답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답은 내 안에 있었다.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필요했던 건 새로운 인사이트나 정보가 아니고, 오히려 스스로의 마음과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었다.



그 후로는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을 돌아보고

지관의 시간을 가져본다.



혹시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혹시 무언가 찝찝한 마음을 가진채 살고있다면,

이제는 멈추어 생각해 볼 시간이다.




어떤 일이 됐든 당신은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그 일을 하려고 나서기를 두려워하거나 자기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할 뿐입니다.

(생략) 요컨데 당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면 그 답을 언제라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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