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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고므 변리사 May 23. 2023

자 이제 돈 벌 시간

#4 특허사무소 취업

변리사는 주로 대학 전공에 따른 일을 하게 된다. 기계 변리사, 전자 변리사, 화학 변리사, 바이오 변리사. 간혹 문과를 전공한 합격생은 상표나 디자인을 담당하는 변리사로 일을 한다. 나는 애매한 토목공학과 졸업생이었다. 대학 시절 변리사 시험 진입에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도 바로 이 전공이었다. 토목과를 나와도 변리사가 될 수 있을까? 취업을 넘어서 특허 깡패도 전화기라는 둥, 요즘엔 깡패 잡는 경찰이 컴과라는 둥.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도 토목과는 늘 논외였다. 우리는 첨단 기술과도 영 거리가 멀어 보였다. 토목 특허가 적다고 해도 토목과 변리사도 별로 없을 테니 내가 독점하면 되지 않을까? 차라리 지금 전자과 복수전공을 할까? 니면 변리사 일을 하면서 대학원에 가볼까?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 몸 담기 전의 고민이 모두 그렇듯, 쓸데없는 물음이었다. 변리사에 합격하면 전공에 크게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나는 환경공학을 접했다는 이유로 화학 변리사로, 또는 적성에 맞는다는 이유로 상표 변리사로 지원할 수도 있었다. 전공대로 업무를 선택하는 것이 쉬운 길이긴 하다. 그러나 아닌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기계 변리사의 루트를 타기로 했다. 대학에서 역학을 배웠다는 이유 하나, J가 다니는 특허사무소가 기계부 수습을 뽑는다는 이유 둘이었다.


이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대학 입시 이후로 얼마 만에 써보는 건지. 워드 파일을 열었지만 쓸 말이 없다. 유튜브에 '자소서 쓰는 법'을 검색해 본다. 삼성전자부터 대한항공까지 좋아한다는 자소서 에피소드에 넋을 놓다가 알고리즘을 핑계로 스튜어디스 메이크업 영상에 정착한다. 예쁘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의 26년 성장과정을 되새김질해본다. 노잼 범생이로 살아온 인생, 장점은 성실함이고 내세울 건 공부뿐. 이건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이백 명이 모두 갖고 있는 특성이다. 전혀 차별점이 없다. 반대로 생각해 본다. 범생이 치고 특별한 이력이 뭐가 있지? 나름의 전략 끝에, 꿀 빨았던 과외 경험은 숨기고 손가락 까지도록 일했던 공장 알바썰을 끄적인다. 아침에는 땅콩강정을 만들고 저녁에는 맥콜을 포장했습니다. 인사 담당자가 맥콜의 매력을 아는 미식가이기를 바라며.


그리고 면접 일정이 잡혔다. 대부분 특허 사무소의 면접은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편안한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수습 변리사의 경우 애초에 능력이 다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얘가 어떤 지식을 갖고 있냐'보다는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인가'에 초점을 두는 것 같다. 한편 수습 변리사는 여러 사무소에 이력서를 넣은 뒤 마음에 든 곳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 사무소마다 분위기, 클라이언트, 하는 일이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에 사무소는 면접에서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기도 한다. 따라서 면접은 평가받는 자리임과 동시에 우리가 회사를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한 군데의 특허 사무소에만 이력서를 제출했다. J가 다니기도 했고, 애초에 다른 특허 사무소에 대해서도 별달리 아는 게 없었다. 아는 만큼 욕심이 생긴다고 했던가, 는 방금 내가 지어낸 말이지만, 여하튼 아는 게 없으니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어서 실제로 한 곳만 지원했다.


내가 지원한 특허사무소는 으쌰으쌰 분위기를 중시하는 곳이었다. 나는 '왜 변리사가 되었는지'에 대해 합격하고 처음으로 진지한 고민에 맞닥뜨렸지만 '주량이 얼마냐'는 질문에는 싱그럽게 대답했다. '우리 사무소에만 지원한 이유'에 대해서는 대표님보다도 커다란 애사심을 장착한 채 수가지 이유를 읊어댔다. 삼십 분의 면접이 끝나고 건물을 나오는 길. 여름 냄새가 코 끝에 닿을락 말락 한 계절이었다. 열변을 토한 내 콧잔등에도 땀이 맺혀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가 면접을 잘 봤냐고 물어봤다. 잠시 숨을 내쉬고 대답한다. "붙을 듯?" 실제로 붙었다.


어느새 무더운 여름에 접어들었고 첫 출근날이 왔다. 삼십도가 넘는 날씨지만 신입사원 티를 내고 싶어 정장 재킷을 꺼내 입었다. 긴장한 탓에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 재킷 속으로 흐르는 땀을 훔쳐 대며 태연한 척 자리에 앉았다. 모닝커피로 팀원들이 스타벅스에 데려간다. 닉네임이 쓰인 아메리카노에 종이 빨대를 머금고 있노라니 커리어우먼이 된 것만 같다. 점심으로는 팀장님이 비싼 갈비집에 가자신다. 나의 중대한 첫 업무가 시작될 순간이다. 그것은 바로 수저 세팅. 곁눈질로 인원수를 파악하고 서랍통에서 수저를 꺼내 센다. 긴장한 탓에 팀장님의 젓가락을 떨어뜨린다. 쨍그랑! 순간의 정적과 이어지는 팀장님의 말씀. "에이 쫄 거 없어요 백고므 변리사" 그 말에 다시 심장이 떨어진다. 째앵그랑 와장창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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